-마당 끝에서 본 우주
마당 넓은 집
안명옥
마당에 들어서면
삽살개가 제일 먼저 달려 나오고
우물이 있던 마당에선
쌀을 씻고 김장을 하고 장을 담그고
하루의 노동을 끝낸 손을 씻었다
마당가 흙을 먹고 아가들은 자라고
마당에선 엉겅퀴 쑥부쟁이 토끼풀들이 움트고
마당에서 아이들은 자치기를 하고
땅따먹기를 하며 놀았다
마당에 비가 내리고
마당으로 구름이 지나가고
마당 꽃밭에선 사루비아가 피어나고
다알리아가 벌나비를 불렀다
마당에 있는 빨랫줄에는 가족들이 나풀거리고
마당에서 깨를 털고 콩을 털고
고추를 널고 벼를 훑고 장작을 패었다
마당에서 잔치를 벌이고
얼씨구, 좋다, 잘한다,
추임새를 서로 나누던 마당 살이들
마당에서 둥근 저녁을 먹고
마당 모깃불 아래서 선잠을 자며
이다음 도회지에 나가서도
마당 있는 학교 마당 있는 집을 꿈꾸고
아침마다 제일먼저 마당을 쓸고
눈이 오면 마당 눈을 치우고
결혼식도 마당에서 올리고
장례식도 마당에서 치르고
마당에 별이 뜨고 달이 뜨고
마당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도회지에 살면서 마당 넓은 집을 보면 걸음이 멈춰지곤 했다. 그 집의 고요는 내 안에 있다. 마당 없는 학교에서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나오는 아이들을 볼 때는 괜히 안쓰럽기도 했었다.
나의 고향 집은 넓은 마당을 가졌다. 대문을 열면 넓은 마당을 지나 이웃으로 통하고 앞산도 바라보며 마당은 소통의 장이요 여유였다. 빈터를 바라보는 것은 마음을 여유롭게 한다. 마당 없는 아파트에서 사는 도시에서는 천천히 살면 쓸모없는 인간 취급당하기 일쑤다.
넓은 마당에는 비어 있는 듯하지만 늘 채워져 있었다. 멍석 위마다 가을 추수한 곡식들을 말리거나 도리깨질하는 소리가 마당을 채우는가 하면 깻단이 세워지고 마당에서 개를 기르고 꽃을 키우고 닭을 길렀다. 텅 빈 마당에는 바람과 햇살이 가득했다.바람이 머물던 그 자리에서 나는 꿈을 꾸었다. 나를 키운 건 마당의 흙과 햇살이었다.
땅따먹기, 자치기, 비석치기, 고무줄 놀이, 줄넘기, 오재미 놀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아이들의 재잘대는 목소리로 마당은 채워지고 또 비워졌다.
얼마 전 딸아이가 아파트 거실에서 줄넘기를 하는 걸 보고 꾸중을 하면서도 안쓰러웠다. 아랫집 윗집 눈치를 보며 아이들은 자란다. 마당 없이 사는 게 싫어 베란다에 화분을 들이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 늘어가는 건 화분뿐이지만 흙냄새가 그리울 때 나는 베란다에 나가 서성인다.
부모가 일찍 돌아가시자 장남인 아버지는 고모 넷과 삼촌 둘을 마당에서 전통 결혼을 올렸다. 얼굴에 오징어를 쓰고 함을 지고 온 친구들은 마당에서 한 발짝마다 돈을 깔게 했다. 함을 진 사람과 그의 친구들 대 신부 측 사람들의 웃음 가득한 밀고 당기기는 풍경이 참 흥미진진했다. 결혼은 힘든 것이구나 어린 시절 그렇게 느꼈던 장소가 마당이기도 했다.
누가 아프거나 집안에 우환이 있어도 넓은 마당에서 굿판을 벌였다. 작두 타는 무당도 보고 칼날 위에서 뛰는 무당도 보았다.
한여름 밤이면 늦게 밭에서 돌아온 엄마가 차려낸 늦은 저녁을 마당에서 먹었다. 우리 집 마당에 가득 내려온 별들이 국그릇에 담기면 나는 별을 떠먹는 기분으로 달게 밥을 먹었다.
우리 고향 옛집은 마음의 첫 풍경 같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마당을 되찾고 싶다. 그래서인지 가끔 마당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광장으로 모인다. 촛불을 들고 한마당 축제나 놀이도 한다. 촛불 시위도 하고 외치기도 한다. 광장은 현대인들의 마당이다.
서울역 광장에는 시계탑 아래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광장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나 서로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현대인들이 익명성을 존중해주는 곳이 광장 같아서 광장은 편하다. 광장은 뜨겁다. 광장에 나무가 들어서지 않는 이유다.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세상에 던져진 느낌이 드는 곳, 마당이나 광장에서 나는 배운다. 어울린다. 침묵한다. 기다린다. 행동한다.
나무 한 그루 없는 광장에는 큰 건물들이 그늘을 만들고 있지만 큰 건물이 나무가 되는 꿈을 꾼다. 건물 벽이 투명창이 되는 것을 기다린다.
마당 가에는 어머니가 가꾼 꽃밭이 계절마다 피고 지면서 장관을 이룬다. 죽은 화분을 가져가면 다 살려내던 어머니가 가꾼 꽃밭은 지나는 사람들 마음속까지 환하게 밝혀준다.
누구나 자신만의 마당과 정원을 가꾸고 있으리라. 산다는 건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길이지만 오늘도 나의 정신의 마당에는 바람이 분다. 나는 살아야겠다가 아니라 내 영혼의 마당에 꽃나무를 심어야겠다. 살면서 꽃 한번 피우고 싶다. 꽃 한번 피운다는 건 스스로 강해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