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은 계절처럼 돌아온다

-봄햇살 아래 피어난 오래된 이야기,일산에서

by 안명옥

봄날 친구가 왔다. 초등학교 동창생이다. 시간을 건너 다시 만난 친구다. 사계절을 한번 돌고 환갑을 맞아 달마다 한번 그동안 놓치고 산 사람들을 만나러 왔단다. 아직도 여전히 사업을 하며 짱짱한 현역인 친구지만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려는 기획을 한 모양이다. 첫 번째로 3월은 고향집을 보살펴주고 있는 친구를 만났고 나와는 두 번째 만남이란다. 내가 왜 두 번째인지는 묻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정년퇴직했다고 올린 초등학교 단톡방을 보았으리라.

잠실로 약속을 제의했지만 일산 외곽에 사는 나로서는 한번 나가려면 왕복 다섯 시간 정도 소요되는 거리다. 게다가 전날 광풍이 불고 건조하고 연일 산불 소식이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고 있었다. 북한산 스타벅스 풍경 좋은 곳에서 보자고 두 번째 장소를 알려왔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서는 채비를 하는데 차를 몰고 차라리 우리 동네로 온다는 것이다. 나를 배려해주는 친구 마음이 와 닿았다. 어린 시절의 나를 마주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친구를 집에 초대했다. 그동안 문우나 제자들은 집에 온 적이 있지만 고향 친구는 처음이었다. 둥글레 결명자차를 우려놓고 기다렸다.

“여기가 시인의 집이구나.” 하고 친구가 한마디 했다. 오랜 우정을 기억하고 인생의 전환점에서 특별히 나를 찾아준 친구가 그 자체로 깊은 감동과 어떤 상징으로 다가왔다

우리 집은 친구의 상상과 비슷하다고 했다. ‘큰 창이 있는 곳에 글 쓰는 책상이 놓여있고 그 옆에 통기타가 서 있고 그 옆으로 책들이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다니 역시 친구는 다르다. 내 시화 작품들과 그림 사진들 액자를 함께 감상했다.

원래 아들 방이었다. 아들이 결혼해 나가고 햇살이 깊게 오래 들어오는 통창 있는 이방을 다시 나의 취미 방 겸 미니 서재로 만든 것이다. 거의 일 년간 책 정리 시간을 가졌다. 서재 책장은 처분하고 책들은 중고 서점과 시인박물관 혹은 제자들이 가져가서 남은 책은 많지는 않았다.

“책과 음악 씨디와 그림, 사진을 사지 말고 차라리 그때마다 주식에 투자했다면 내 노후가 좀 더.... ”

하니 친구는 돈보다 이런 것이 더 소중한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래도 후회는 없어. 충분하게 책과 음악과 그림들이 나를 풍요롭게 해주었어.”

라고 나는 대답했다. 뮤지컬, 연극, 사진전들 다니면서 영혼이 성장하는 시간을 가졌으니 말이다. 친구는 우리 집 거실을 보는 순간 ‘요가를 하는구나.’ 펼쳐진 요가매트를 보고 중얼거렸다. 우리집 뷰가 좋다며 거실을 지나 베란다로 나갔다.

난 지하철도 없이 마을버스를 오래 기다리는 변두리를 떠나지 못하는 마음을 드러냈다.

“저녁이 되면 제2자유로 너머 불빛이 지상의 보석처럼 반짝거려. 노을 지는 하늘의 풍경은 날마다 다른 신이 그린 산수화 같아.”

대낮이라 보여줄 수 없어 아쉬웠다. 베란다 화초가 나의 반려 식물들이라 소개했다. 딸 직장이 멀어 이사를 생각했지만 다시 눌러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직 자연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딸아이는 내가 화분을 사랑하는 걸 질투한다. 그 자리에 말없이 있어 주는 식물들이 나에겐 또 다른 녹색의 우주였다.

친구도 기타를 오래 배우고 있다. 친구 어머니가 있다는 요양원에 일 년 두 번 내려가 기타치며 노래 봉사도 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 고향의 자랑인 홍난파 선생의 ‘고향의 봄’을 연주하며 노래를 불러 드린다고 한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노래 부를 즈음 모인 노인분들의 눈시울에서 눈물이 흐른다고 한다. 기회가 되면 나도 봉사나 재능기부를 하고 싶어 며칠 전 자원봉사 신청을 하고 온 터였다. 친구가 통기타를 보더니 기타를 쳐달라 요구한다. 난 즉석에서 <내 고향 충청도>를 연주했다.

“악보를 보지도 않고 치네.” 친구가 칭찬인지 모를 말을 했지만 내 어설픈 손가락 연주보다 그 친구의 기타 연주는 프로급이란 걸 나는 안다. 이 친구가 부캐로 기타 학원을 꾸준히 다니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난 취미는 즐기는 거라고 여겨 스트레스받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기타 연주 실력에서 발전은 없지만 안 보고 치는 노래가 열곡은 된다.

우엉차를 마시고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나의 산책 코스를 소개해주고 싶었다. 마을의 작은 산의 둘레길이다. 산을 오르며 산밑 도서관을 소개했다. 통창이 보이는 3층 도서관에서 앉아 책을 읽다가 눈이 예전 같지 않을 때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산의 푸른 녹음은 시원하다. 예전 40대는 온종일 도서관에서 글을 쓰고 역사 논문 서적을 찾아보고 글을 써도 몸이 끄떡없었다. 연희 문학 창작촌에 2개월 들어가 집필할 때도 난 방 안에서 나오지 않고 오로지 일주일 반찬을 해주러 집에 가고 올 때만 방을 나오곤 했다. 엉덩이가 아프지 않고 다리가 붓거나 눈이 불나지 않았는데 이제는 힘들어진다. 세 시간 정도 아침 와서 책을 읽다가 집밥으로 점심 먹고 다시 산을 돌고 다시 도서관 들어와 마저 읽는다. 화, 목은 근육 운동을 한 시간 정도 한다. 산을 돌 때마다 영어 단어를 외우며 돈다. 그 옛날 시골 십리가 넘는 길 버스비가 없어 통학할 때마다 영어단어장 일본어 단어장을 만들어 외우고 다녔던 것이 떠올랐다.

친구가 “너만의 루틴이 생겼구나.”하고 말했다.

역시 친구가 잘 봤다. 퇴직은 했어도 나만의 일상 패턴과 습관을 만들어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 한다. 어쩔 수 없는 계절을 살고 있지만 나도 자연이니까 자연의 이치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산을 돌고 친구와 그네에 앉았다. 흔들리는 그네에 몸을 맡기고 그 시절 우리가 믿은 것들, 어린 시절 이야기, 딸이라서 차별받던 이야기, 솔방울 솔가지, 약쑥을 해가던 학교 이야기,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득 잊히지 않는 이름 가운데 6학년 담당한 김수임 선생님을 이 친구가 모셔놓고 나를 비롯해 친구들 서너 명을 초대해준 적이 생각났다.

각자가 살다가도 언제든 만나면 이렇게 통하는 향수와 추억이 우리를 연결하게 하고 공감하게 한다. 저울 같은 친구가 아니고 땅 같은 우정을 간직한 친구가 있다는 건 기적이다.

“난 절대 죽기 전에는 철들지 않을 거야. 동심을 지켜 나갈거야.”

친구는 내 말에 약간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넌 시인이구나.”라고 했던가. 아무튼 철들면 죽음이고 동안보다는 난 동심을 잃지 않는 게 더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우린 일어섰다. 내가 보리밥 쭈구미 집으로 안내했다. 밥값을 치르며 집에서 직접 해주지 못하는 미안함을 전하자 친구가 이른 저녁을 먹고 가겠다고 했다.

사업을 크게 하는 모양이다. 해외에도 공장이 있다니 놀랍다. 고향 근처에도 공장을 지었다는 소식은 들었다. 친구도 나처럼 중문과를 나왔다. 장교 출신의 친구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더는 겪지 않으려고 성실과 노력으로 많은 것을 이룬 모양이다. 여러 모임과 단체에 몸담은 친구는 전국구 지인들이 있는 모양이다. 여기 고양시도 모임에서 아는 지인이 있다고 한다. 지인을 잠시 만나고 온 친구에게 푸른 숲이 되어버린 인공호수, 일산 호수공원을 보여주고 싶었다.

차를 몰고 가면서 난 개벽 같은 일을 목격했다. 호수공원을 네비게이션이 아닌 인공지능을 불러 안내하게 한다. 호수공원을 다 설명해주기도 한다. 비서처럼 친구의 말에 대답하고 요청을 들어준다. 친구 회사 소개도 해준다. 친구가 친구네 회사 소개를 듣고는 “그게 아냐, 너 틀렸어.” 하면 “죄송합니다. 다시 찾아 드릴게요.” 인격체를 가진 사람 같았다. 친구 곁엔 네 명의 비서가 늘 대기하고 있는 셈이다. 나와는 먼 거리에 있는 인공지능 같았는데 이렇게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친구를 보니 충격이었다. 내 이름을 부르며 이 시인에 대해서 말해줘 하니 줄줄 나온다. 우리가 나눈 대화를 다 녹음 기록으로 해주는 인공지능도 보여주었다. 순간 섬뜩했다.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고 녹음 기록하는 거라고 하자 친구는 기록을 삭제했다. 강의실에서도 노트에 적고 하는 것이 사라지는 시대가 된 걸까. 아날로그 속에서 활자 문화가 더 정겹다고 고수하는 고집을 부릴 때 세상에서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난 여전히 종이신문이 좋고 연필이나 볼펜으로 필기를 한다. 공룡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도태된 것처럼 세상에서 멸망하는 건 아닐지 나에게 디지털에 대한 경각심이 생겼다. 유료로 여러 개를 가지고 개인 비서처럼 다루는 친구의 모습에서 나는 나를 보게 되었다. 난 심장이 마구 뛰었다. 디지털 세상에 살면서 키오스크를 식당 주문을 당황해하다가 지금은 적응되니 오히려 편해진다. 여행 가서 그 나라 언어를 모르고 동네 길을 모르니 두렵다. 그와 같은 것인가. 디지털을 모르니까 두렵다고 애써 외면을 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친구가 내 앞에서 뭐든 쉽게 처리하고 도움을 받는 걸 보면서 새삼 인공지능을 다시 알게 되는 느낌이었다.

“독후감 심사 때 챗GPT에서 보고 베낀 잘못된 정보를 드러내거나 문장 토씨 하나같은 것들을 보면서 통탄했었어. 또 인공지능이 써주는 글과 그림으로 작가가 되면 그것도 진짜 작가인가.”하고 부정적 시각을 말하자 친구는 나를 보며 말했다.

“아무리 인공지능 비서가 편리한 혁명 같지만 걸러내고 선택 사용하는 능력은 있어야 된다.”고 했다. 친구가 멋져 보였다. 시골 촌놈이 서울에 건물도 가질 때는 나름 죽어라 산 세월이 근육으로 자리 잡혀 단단해 보였다. 배드민턴을 15년이나 하고 아침마다 새벽 운동을 한다는 친구가 대학원 들어가 늦게 공부도 하고 필리핀 가서 영어 공부도 하고 왔다니 역시 세상 공짜는 없다.

호수공원을 나섰다. 근처 횟집을 인공지능 비서가 추천해주고 주차장 여부와 방문 고객 평까지 말할 때 기가 막혔다. 지금부터라도 디지털을 알아야지 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친구와 저녁을 하면서도 우리의 대화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칡뿌리 캐듯 캐어가며 잘근 씹어 먹듯 이어졌다. 북풍이 없었다면 바이킹도 없었다는 말을 들려주던 친구가 너나 나나 북풍이 없었다면 지금은 없었다고 했다. 내가 친구를 인정해주듯 친구에게 나도 인정받는 느낌이 싫지는 않았다. 나보고 잘살고 있다고 했다. 난 그때 잘 사는 게 나에겐 어디서든 관계가 좋은 건데 앞으로 잘 살려고 노력을 더 해볼 거라며 지금은 잘 사는 게 추억을 많이 가진 거라고 다시 변경했다고 했다. 오늘도 초등 친구와 봄날의 추억 하나 만들었다며 맥주를 마셨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꿈에 몇 번 나왔다는 친구는 자신 안에 부친의 여러 모습이 있다고 들려주었다. 첫째가 새벽형 아버지이고 둘째는 책 보고 배우는 것을 좋아하던 아버지란다. 그리고 이가 튼튼한 아버지처럼 여태 충치 하나 없다고 했다. 아버지의 좋은 점만 배우려고 노력한 것이 보였다. 난 내 평생 농사를 지은 부모가 나에게 물려준 유산이 성실 근면 절약이라 했다.

친구는 다시 서울로 갔다. 먼 길 돌아 나를 향한 두 번째 걸음이 떠났다. 나는 마을버스를 기다리면서 우정은 시간을 견디는 철학처럼 여겨졌다.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지지 않는 마음들이 허공에 벚꽃처럼 피어나 봄밤이 환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기억은 집을 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