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춰 경험을 담아요.
평소 나는 호기심도 많고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때가 되어 나온 학교를 떠나 문학촌에 들어간 나는 시를 쓰다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했다. 가르치고 강의하던 지난 업을 바꾸고 싶었다.
기술을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자식 같은 사람들과 섞여 아날로그에서 디지털세계로 들어섰다. 점심 도시락을 싸들고 오전 아홉 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학원에 앉아 있었다. 컴퓨터가 들어찬 교실은 건조해 가습기를 놓고 인공눈물을 넣어가며 버티었다. 여행이나 다니고 운동하시지 여기서 고생하느냐고 한 수련생이 물었다. 100세 시대에 이제 반을 살았는데 앞으로 수십 년 놀고먹는 것도 끔찍하다고 답했다. 70세까지는 노인이 아닌 장년이라고 했다.
서너 달 만에 배운 일러스트와 포토샵으로 취업에 성공했다. 가끔 연락해 오는 제자들에게 선생님은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그렇게 난 공장지대와 만났다. 수가공 쇼핑백과 박스를 제조하는 회사에 들어갔다. 홈페이지에 만든 제품들을 사진 찍어 포토샵 처리를 한 후 올리는 일을 시작했다. 의뢰를 부탁한 업체가 보내온 디자인을 칼선 위에 오시선 작업을 한 후 업체에 확인받는 일도 했다. 처음으로 해보는 행정업무들도 어설펐지만 배우고 견적 문의 고객들을 응대하며 내가 잘하는 것이 마케팅이란 것을 새삼 발견하기도 했다. 모든 게 신기하고 새로운 세계였다. 다양한 종이들과 인쇄, 코팅, 끈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방문하는 고객을 위해 공장 바닥을 쓸고 깨끗하게 대걸레로 닦아두기도 했다, 손님이 오면 집 청소한 후 손님 맞이하듯 실천했다. 눈이 오면 눈을 치우고 아침마다 공장 문을 먼저 열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행한 일들이었다. 아침잠이 없어 일찍 출근해 회사에 오는 조간신문 두 개를 읽고 사무실 책상도 닦고 환기를 시키기도 했다. 한겨울에는 난방을 켜 공기를 데우고 한여름에는 에어컨으로 사무실을 시원하게 해두었다. 그렇게 일 년이 갈 무렵 팬데믹이 덮치고 떠나가는 직원도 생기고 엄마도 돌아가셨다.
코로나19시대를 지나는 동안 문 닫는 공장도 생겼다. 옆 공장은 부부가 하는 재단집이더니 그만 나가고 금박 집이 들어왔다. 건너 공장은 코로나에 문을 닫았다. 방문 고객도 줄었다.
그동안 인문학적인 소양과 강의 경력은 다양한 업체 고객들의 상담에 도움이 되었다. 디자인보다 시나브로 나의 주 업무는 마케팅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은 온라인 견적문의는 꾸준하게 들어왔다. 비대면이 외려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코로나가 잠잠해져도 나라 경제가 살아나질 않는다. 그럴수록 제작을 의뢰하는 업체마다 최고의 친절과 빠른 제작, 좋은 품질로 임한다. 점점 박스나 쇼핑백 거래처가 늘고 재주문도 늘어났다. 납품까지 최선을 다하며 회사에서 인정도 받았다.
어떤 고객은 사장 마인드라고 했다. 하나의 오더마다 성취감을 맛보았다. 열정적으로 일했다. 24시간 카톡을 열어두고 상담을 해주기도 했다.
여기서 일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쇼핑백이 어디를 가든 눈에 들어온다. 쇼핑백 한 장이 나오려면 얼마나 많은 손길을 거치는지 알게 되니 그냥 보이지 않고 다르게 보인다. 보이지 않는 공정속의 노고와 섬세한 손길이 무심한 일상 속 어디엔가 스쳐간다는 것을 쇼핑백 회사에 몸담으려 깨닫는다. 종이는 생명력을 얻어 비로소 누군가의 손에 들리고 감정을 옮기는 생의 매개체가 된다.
화장품과 건강식품을 담은 싸바리나 합지 박스들을 뜯어보며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를 눈여겨보다보니 견적도 낼 정도가 되었다. 뭐든 배우는 것을 좋아하니 고되어도 견딜 수 있었다.
월요일과 금요일까지 일하니 걷는 시간이 부족해지고 햇살 보는 시간도 부족해진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식후 20분 공장지대 걷기다. 배달 온 밥을 먹고 문을 나선다. 걷기 시작하면 바로 시골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다. 뭐하고 드셨나, 봉당 걷고 해를 쏘이라고 말씀드리곤 한다. 안부 전화는 가끔 하는 거지 왜 날마다 하냐고 퉁박을 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엄마가 없으니 아버지가 자꾸 마음이 쓰인다. 명심보감 공부하고 있다거나 혹은 실내 자전거 타고 있다고 하시더니 이젠 노인성 난청이 심해져 통화마저 힘들다.
납품할 제품을 싣고 혹은 원자재를 실어 나르는 화물차들이 연신 드나드는 골목길은 늘 붐빈다. 큰 차들이 많아 살짝 긴장 되나 가장자리로 걷는다. 공장 지대는 수많은 종류의 차들이 연신 드나든다. 기계음 소리를 새소리로 듣고 걷는다.
사람들에게 먼저 웃으며 인사한다. 무표정이나 개의치 않는다. 현대인들의 무표정은 속내를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신호 같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간판들을 둘러본다. 어느 때는 간판이 얼굴 같고 어느 때는 밥 같더니 오늘은 단풍잎 같다. 금박, 싸바리, 박스, 쇼핑백 제작, 목형제작, 금형, 인쇄, 코팅, 도무송, 톰슨, 형압, 표지바리 한 잎의 목숨들이 나풀거린다.
5년을 넘긴 공장지대 생활 속 다양한 공장들에 애정이 생긴다. 어디든 깊게 들여다보면 애정이 생기나 보다. 아프거나 감기 들어도 쉴 수 없이 나와서 일했다는 어느 가장도 만난다. 중학교 나와 공장서 배운 기술로 이제는 외국인 노동자를 둔 어엿한 공장도 있다. 기술만 익히면 목형이든 인쇄든 코팅이든 박스든 표지바리든 평생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공장들이 땀을 흘리고 있다. 기술은 정년도 없고 시간이 갈수록 대접받는 것 같다.
상담실 상자들을 다시 정리도 하고 먼지도 닦는다. 박스를 내리고 싣고 한 먼지들이 코를 간질이고 목이 칼칼해진다. 문을 활짝 열고 다시 대걸레로 닦는다. 공장 안이 깨끗해지면 기분이 좋아진다. 세상에서 젤 숭고한 일이 청소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든 것도 여기서 일하면서 부터다.
쉴 새 없이 오가는 납품 차들이 활기차게 만든다. 5톤 윙바디나 혼적, 호로차, 다마스, 라보, 1톤탑, 3.5톤 등 양에 따라 차를 배차한다. 나무 빠렛트로 보내도 되는지 혹은 빨간 빠렛트 랩포장이나 박스 포장인지도 챙긴다. 납품지 주소를 받고 거래명세표를 작성한다. 쇼핑백 끈과 박스가 언제 들어오는지 체크도 한다. 방금 나온 쇼핑백이 내 손 안에 들어온다. 쇼핑백 한장의 무게는 가볍지만 과정은 무겁다. 잘 나온 쇼핑백을 보면 정성이 느껴지고 뿌듯해진다.
***엄마의 한마디는 "너무 간절해도 안돼.거기 아니어도 갈 곳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