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천천히 열리던 라오스를 다녀와서
2016년 여름, 번아웃 증후가 나타날 때 라오스가 나에게 왔다. 홍콩 마카오를 6월 말에 다녀왔지만 느림이 건네는 말들을 듣고 싶었다.
52세 뜨거운 여름, 느림의 미학을 라오스에서 경험해보고 싶다.
이번 생에는 경험에 투자하며 살기로 한다. 군부대 독서 코칭을 다니고 학교 방학 레슨을 준비하던 나에겐 천천히 흐르는 마음이 간절했다. 특히 화요일 대구 문학 특강을 하고 와 이틀간 아이들 밑반찬을 만들어 냉장고에 넣고 여행 짐을 쌌다. 대구강의로 알게 된 분들이 잘 다녀오라는 밴드에 들어가 감사 인사도 남겼다.
드디어 목요일이 왔다. 아들이 대화역까지 가방을 들어준다. 공항은 늘 붐빈다. 떠나는 사람들의 가방은 무엇을 담았을까. 떠나려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다. 지치면 떠나고 싶어지는 법이다. 해마다 여행객이 늘어난다는 건 지친 자들이 그만큼 늘어난 탓도 있을 것이다.
진에어 저녁 기내식이 주먹밥 두 덩이와 약간의 야채볶음이다. 물 이외는 모두 돈을 지불해야 했다.
라오스는 우리나라와 두 시간 정도 시차가 나고 비행시간이 5시간 정도 걸린다. 비행기 안에서 한 남학생이 라오스 현지 책을 펼쳐 읽으며 적는다. 대학 1학년인데 혼자 라오스 배낭여행을 간단다. 난 엄마 같은 마음이 발동되어 물 그리고 음식 특히 끓인 음식을 먹으라고 일러주었다. 우비나 우산도 준비하라고 당부하니 밝게 웃는다. 노랗게 물든 머리에 순한 미소를 띠던 학생이었다.
현지 가이드와 다른 일행과 미팅 후 숙소로 향했다. 우리나라가 연일 폭염이 이어지는데 라오스는 27도라 시원하게 느껴졌다. 비엔티엔이 라오스의 수도였다. 싱글 차지 20만 원추가 그리고 가이드 경비 40달러를 냈다. 그 외 물값과 옵션비용이 더 들 수 있다. 여행을 다녀보면 옵션 선택 고민을 할 때가 있다. 패키지 경우는 안 할 수도 없는 경우도 생기고 정말 중요한 것은 꼭 경험해봐야 할 것이 옵션으로 있다.
세계에서 가장 여행하기 좋은 나라가 라오스라니 기대가 된다. 공산주의국가니까 얼마 전 신문에서 북에서 라오스에 공작원을 내려보내 피랍을 지령 내렸다는 기사를 보고 살짝 긴장도 되었다. 모기를 조심하려 뿌리는 모기약과 버물리도 준비했는데 이번 여행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모기는 돌아오는 라오스 공항 대기실에서 한 방 물렸을 뿐이다. 비좁고 면세점도 작은데 열기가 후끈하여 모기가 살기 좋은 환경이다.
당시 라오스는 1960년대 우리 한국이라 생각하면 된다. 특히 배급사회이다. 그래서 급하게 서두르는 법도 없고 더 남아서 일하는 사람도 없다. 중국만큼 소수민족이 많은 나라다. 아직 민족 통일이 안 된 나라라고 가이드가 일러준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이다. 라오스에 오면 라오스 법을 따라야 한단다. 안전사고 안내 종이를 받았는데 석회물이니 절대 먹지 말고 차에 비치된 생수나 호텔에 비치된 생수만 마시라고 당부했다.
호텔가서 짐부터 풀었다. 열두 시가 넘었는데 모닝콜 7시 반이다. 이곳 열대과일부터 실컷 먹어야지 하고 라오스 말 여러 가지도 외우고 적어둔다. 여행은 고생길이라지만 유목민의 피를 가진 나는 늘 설레인다. 설레임은 낯설다는 것이다. 낯선 것은 두렵기도 하나 새로움이 더 기대된다. 새롭다는 것은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 아닐까. 편한 복과 운동화를 꺼내놓고 침대에 누웠다.
아침 일어나니 비가 온다. 우비를 입고 출발한다. 내 우비를 보더니 한 일행이 멋쟁이 우비라고 한다. 자연도 인간도 느릿느릿 호흡하는 평화를 만나러 출발한다. 숨 고르듯 라오스를 걷는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거주지 그리고 불교사원들은 중앙 비엔티엔의 풍경을 압도하며 독특한 그들만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부처님의 가슴뼈가 있는 탓루앙 사원을 둘러보고 에메랄드 불상과 파방을 모셨던 왓 호 파 깨우 그리고 비엔티엔에서 가장 오래된 왓씨사켓 사원도 갔다. 화장실마다 관리인이 현지 돈을 받는다. 현지 돈 준비가 안 된 내게 현지인이 내어준다. “껩싸이” 고맙다고 난 1달러를 줬다.
사진을 많이 찍는 일행들을 기다린다. 나는 여행지마다 사진을 되도록 찍지 않고 눈으로 가슴으로 보려고 한다. 사진도 많이 찍으면 쓰레기가 된다. 혹은 인화한 사진은 훗날 자식들에게 짐이다. 내가 찍고 싶은 건 그 나라 사람들의 눈빛과 얼굴이다. 뒷골목이나 시장의 삶들을 보고 싶다. 라오스를 대표하는 그림엽서 다섯 장을 2달러 주고 샀다. 비엔티엔에서 일정을 선상식에서 한국식당으로 바꿔 방비엥으로 출발한다. 느림의 결을 따라가다가 농원에서 망고스틴이며 망고, 용과 용안을 먹고 옵션에 대해 다들 하기로 일행들과 합의를 본다. 망고 말린 과일을 10달러 주고 샀다. 3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산길을 가는데 마치 대관령 길을 가는 느낌이 난다. 자연 그대로의 숲들이 눈길을 편하게 해준다. 주유소가 있는 곳에서 화장실 가는 시간 나는 코코넛 하나를 사서 마신다.
라오스의 계림으로 불리는 아름다운 방비엥이다. 메콩강을 따라 카르스트지형의 산들과 동굴들을 간직한 곳이다. 방비엥은 감각이 깨어나는 시골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팁을 주고 쏭강에서 신선놀음처럼 롱테일 보트 체험을 했다. 절경이다. 이 멋진 풍경 속 사람살이는 초라하다. 가난하고 허름하다. 헐렁하고 느슨하다. 강이 움직이는 듯하다. 배가 돌아서는데 양 강변 나무줄기가 나를 보고 마중 나오듯 다가선다. 어지럽다. 강폭이 좁아지는 것도 같고 바위가 웃으며 반기듯 내려서는 듯도 하다. 먼 산 위 안개인지 구름인지 한 폭의 산수화를 넋을 잃고 바라본다. 손을 흔들어도 강변에 어망을 던지고 선 라오스 사람들은 손을 흔들어주지 않는다. 지나는 외국 관광객들이 내 손에 답하며 손을 흔들어준다. 우기라서인지 물이 많을 텐데 강물이 황토색이다. 여기서 잡은 물고기를 먹으면 흙냄새가 난다고 현지 안내원이 말한다. 구워 먹으면 맛이 좋다고 웃는다.
저녁은 한식이다. 샤브샤브와 돼지고기 삼겹살로 먹었다. 식후 비가 억수로 온다. 유로피안 거리에서 자유시간을 주고 가이드는 가버린다. 난 낼 방비엥 블루라군 물놀이에서 신을 신발을 5달러 주고 산다. 내일은 6시 기상이다.
3일째다. 방비엥 호텔 조식에서 열대과일 용과와 망고를 먹는다. 달걀 두 개와 식빵 하나 소세지와 라오스 커피를 마신다. 다른 것은 향이 진해서 부담스럽다.
블루라군으로 이동했다. 안개가 산에 그림을 그린다. 높은 산들이 안개로 지워졌다가 다시 나타나곤 한다. 신이 그리는 시연을 하는 것만 같다. 마치 동양화를 보는 것 같다. 그 산 아래서 모를 심는 농부가 보인다. 비가 와서 버기카를 타고 가는 내내 우비를 입었다. 마을 사람들의 사람살이를 구석구석 보며 갔다. 가는 길가 송아지 두 마리가 비켜서지 않고 가만히 서서 명상이라도 하듯 고요하다. 급하던 내게도 조용한 감정들이 스며들었다. 자연도 사람도 동물도 모두 느리다. 느림의 미학의 발견이다. 내가 사는 도시에선 느리게 걸어도 마치 쓸모없는 사람처럼 여겨지고 더 빠르게 걷고 달린다. 버기카로 블루라군 투어가 1인당 60달러다. 두 사람이 한 대에 탑승한다.
짚라인도 두 코스가 준비되어 있다. 짚라인을 체험하기로 한다. 안전모를 쓰고 산꼭대기로 오르는데 미끄럽고 두려움이 엄습한다. 높이 난다는 것을 경험해보리라. 새처럼 뼛속까지 비울 수는 없어도 순간 새가 되어 보는 것이다. 아찔한 정글 숲을 돌며 올라가서 날아본다. 내 몸이 줄에 매달려 속도감과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온다. 온몸에 땀이 범벅이다. 제대로 스릴을 만끽해본다. 어린아이처럼 줄을 잡아주는 라오스 품에 안겨 착륙한다. 요령도 생기고 탈만 할 때 줄 하나 잡고 수직으로 떨어져 내려오는 것이 마지막 여정이다. 속도감에 아찔하다. 눈을 질끈 감고 바닥의 맛을 체험한다. 곁의 나무도 움찔했을 것이다.
다이빙하는 사람들 틈 속에서 블루라군 물에 들었다가 그만 미끄러져 숨겨진 물속 바위에 왼쪽 다리 정강이를 부딪쳤다. 길을 가다가 넘어지면 부끄러워 얼른 일어서 아파도 태연한 척 지나가듯 아픈 티를 낼 수 없었다. 멍이 금방 시퍼렇게 부어오른다. 시간이 멈춘 곳에서 주변 풍경에 빠져 아픔도 이내 사라지고 있다. 도시락으로 볶음밥과 구운 돼지고기 그리고 바케트와 구운 꼬치를 먹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 같다. 운동 후 야외도시락 맛이 이런 것이구나 알 수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더 늦기 전에 다이빙해본다고 일행들은 다이빙하다가 탁한 물을 마시기도 했단다. 난 무리하지 않기로 한다. 그냥 바라만 보아도 젊어진다. 아이들이 첨벙 뛰어드는 물소리 웃음소리가 사방으로 튄다. 물은 부드럽고 위험하기도 하다.
젖은 옷은 마르다가 다시 비가 오면 또 젖는다. 둘러보니 널어둔 빨래들도 젖다가 마르다가 다시 젖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다니지도 않는다. 황사도 없을 테니 비를 맞아도 걱정도 없다. 한국은 36도란다. 차라리 비 오는 라오스가 여행길에 선선해서 좋았다.
탐 남 동굴로 가기 위해 어느 소수민족 몽족 마을을 가는데 노인들이 춤을 추고 있다. 물 동굴이다. 튜브를 이용해 동굴의 자연 그대로의 재미를 느끼며 줄을 잡고 일행이 들어갔다. 머리가 바위에 닿기도 한다. 머리 보호를 위해 안전모를 착용했지만 줄 당기며 조절하는 것이 힘에 부쳤다. 동굴이 물속에 그렇게 존재한다는 것이 신비롭다. 독특한 체험인 튜빙 탐험을 나와서 가이드가 준비해준 열대과일을 먹으니 몸에 다시 생기가 돋는다.
가이드는 유이폭포를 서비스로 데려가 준다. 산을 오르니 거기 거대한 폭포가 있었다. 웅장한 폭포 아래서 물놀이도 했다. 오르고 내리는 길이 미끄럽다. 물가에서 현지인들이 쥐 고기를 구워 파는 상점이 있어 충격적이었다. 물은 어디든 스며들고 재미있지만 물은 차갑고 긴장하게 만든다. 물은 감싸 안아 주지만 물먹게도 한다. 물은 절대 방심하면 안 된다고 라오스가 나에게 멍으로 가르친다.
호텔 귀환 후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으러 간다. 혼자 방을 쓴다는 건 욕실 사용에서도 여유가 생기고 그날 메모한 것도 정리하기 좋다. 라오스 방비엥 커피숍에서 망고 쥬스를 마셨다. 천원 정도다. 홍콩에서는 육천 원에 마신 기억이 난다.
4일째다. 비가 내내 내린다. 탐 짱 동굴 및 전망대로 간다. 블루라군은 역시 탁하지 않고 제대로 된 블루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다. 한참을 멍때리는 시간을 가져본다. 나무가 만들어내는 색이란다. 소박한 미가 나를 매료시켰다.
논두렁길이 미끄럽고 황토라 노랗다. 각이 진 계단을 오른다. 아차, 한눈팔면 굴러 다칠 수 있는 경사다. 온몸의 세포와 근육들이 긴장한다. 탐 짱 동굴은 석회 절벽 중간에 자리하여 외침시 마을 주민들의 대피처로 사용된 동굴이다. 그래서 ‘견고한 동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쏭강을 포함한 자연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동굴 안은 서늘하다. 에어컨이 실행 중인 듯하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과 아름다운 종유석이 시간의 무늬를 보여준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방비엥 전경은 최고의 스팟이다.
바다가 없는 라오스에서 바다의 수맥이 지나가는 것을 발견했다. 그 바닷물 수맥을 길어 올려 끓여서 소금을 만드는 마을을 갔다. 이곳에서 나오는 소금은 바다에서 채취한 소금보다 순도가 높은 암염이다. 식염 원료나 공업원료로 쓰인다.
현지마을 사람들이 사다리 타기식으로 무슨 놀이에 열중한다. 아이들이 내게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한다. 살림살이는 초라해도 그들의 표정은 밝다. 행복 지수가 우리보다 높을 듯하다. 내 마음이 천천히 열리는 시간이었다. 마침 가방에 한국서 준비해간 간식으로 ‘말랑카유’가 있어 그곳 아이들에게 나눠주니 좋아한다. 60년대 미군들이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초콜릿이나 껌을 주었던 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엔티안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백 나무 공장도 들렀다. 메콩강의 지류인 남능강 탕원 유원지는 비엔티엔 최대 규모의 리조트로 배 위에서 식사하며 노래방 기계가 있어 노래까지 부르며 놀 수 있는 곳이다. 선상에서 닭다리 튀김과 찹쌀밥을 먹었다. 음악은 우리나라 가요무대를 틀어 보여준다. 배가 움직인다. 박수도 치고 다른 배에 손도 흔들고 어깨도 들썩인다. 지쳤던 몸에 다시 원기가 돌아온다. 외국인들은 선상 댄스파티를 한다.
독립 기념탑인 <빠뚜사이> 관광을 했다. 세계대전과 독립전쟁 때 사망한 라오스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것으로 프랑스 개선문을 모티브로 라오스 전통 양식을 가미해 건설되었는데 내가 파리에서 본 개선문과는 확연히 다르다.
라오스의 최고 유적지 불상 공원 왓 씨앙쿠앙도 갔다. 왓(Wat)은 부처님을 모시는 사원을 뜻한다. 라오스 여행은 발걸음이 느려진다. 침묵이 주는 마음의 평화가 깃든다. 시바, 비슈누, 라마, 하누만 같은 힌두교 신과 불상이 전시되어 있다. 시멘트 조각을 했다. 시멘트 수명이 오십 년이라는데 여기저기 부식이 되고 균열이 되는 모습이 안쓰럽다. 바위나 돌에 새겼다면 더 오래 갈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느리게, 깊게 시간을 맛보며 원숭이 신 하누만이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호박탑 내부로 이동했다. 3층 구조로 지옥, 이승, 천국을 상징한다. 탄생부터 열반까지 부처의 일대기를 담은 조각상에도 나의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저녁은 라오 민속공연을 보며 먹는데 미역국이 맛있었다. 배탈이 난 사람들도 생겨난다. 한 그릇 더하면 돈을 더 지불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참 살기 좋은 나라다. 반찬도 리필이 되고 물도 주고 화장실도 모두 공짜이지 않던가. 우리나라가 그립다. 아이들도 그립다. 더 길어지면 안 될 시기에 여행은 끝나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야시장을 둘러본다. 비가 오는 속에서도 야시장에는 방석, 동전 지갑, 원피스들이 진열되어 있다.
공항으로 출발했다. 밤 비행기로 고국으로 돌아간다. 라오스 공항 면세점은 우리나라 편의점 크기만 하다. 게이트도 3개 정도다.
새벽 5시 반 인천공항 아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5일째 우리나라에 오니 행복했다. 광복절이었다. 태국이나 베트남 사이에 끼어있는 내륙 국가 라오스는 천천히 걸을수록 좋았던 곳이다.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살다 온 내게 다시 속도가 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