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창밖 풍경은 나였다.
일요일 아침, 베란다라는 이름의 작은 우주에 나가 화초에 물을 주고 들어오는데 엄마 혼자 두고 외출하는 딸이 미안한지 내 품을 파고 들며 애교를 부린다.
"엄마, 오늘 뭘 할거야?"
하고 묻는다. 연어 초밥을 점심으로 시켜줄 거라 한다. 난 단호하게 거절한다. 난 딸이 나간 후 통창너머 하늘을 덮은 생각 한장을 꺼낸다.
24년 전 일이 생각난다. 고층과 저층 두 개가 남아 있던 미분양 아파트에서 난 5층을 택하고 직장 동료는 12층을 택했다. 나는 땅과 가까이 살고 싶었다. 아파트 나무가 창을 통해 보이는 것이 좋았다. 또한 계단을 걷는 게 좋았다. 그런 이유로 저층을 택하자 동료는 날보며 詩를 쓰더니 세상 물정 모른다고 웃었다. 그 후 그 동료는 아파트가 가장 고가일 때 팔고는 역세권으로 이사 갔다. 나는 20년 넘게 이곳에 그대로 살고 있다. 마을 중심에 작은 산이 있고 산을 중심으로 도서관이 있다. 사람들이 고층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지만 난 여전히 흙냄새 올라오는 땅과 가까운 층에 사는 걸 좋아한다. 투자가 아닌 진짜 살 집으로는 괜찮다.
한 번은 스승의 날이었다. 동료 교사들 서넛이 스승의 날 행사 뒤 우리 집에 왔다. 중국집 음식이 오길 기다리는 동안 한 선생이 우리 집 베란다로 가더니 전망이 좋다고 감탄했다. 앞으로 나무들과 멀리 들판이 보이는 탁트인 경치라서 그런 것 같다. 살기에 바빠 창밖을 바라보지 못하고 살던 나는 그날 저녁 베란다에 오래 서서 밖을 바라보았었다. 베란다 창 너머로 저 멀리 노을이 지는 모습을 보았다. 아름다웠다. 하늘에서 누군가 사랑을 하는지 붉은빛으로 물들었고 탐스런 대형 홍시가 박혀 있었다. 천천히 아래로 떨어지는 붉은 해를 한동안 불멍을 하듯 바라보며 심장이 충만해졌었다. 어느날의 창밖 풍경은 나였다. 통창을 통해 깊게 거실과 방으로 들어오는 햇살도 사랑했다.
딸은 직장이 멀다. 새벽에 일어나 일찍 나가고 저녁 늦게야 돌아오니 창밖을 잘 보지 않는다. 그런 딸에게 나는 눈이 오면 나뭇가지마다 모자를 쓴 설경을 바라보며 호들갑을 떤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우중 산책을 조른다. 산비둘기 울음소리에 마음이 온통 가 있을 경우도 많다. 오래된 아파트 나무들과 화단에서 사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살게 되는 것이 정겹다.
사는 동안 늘어난 것은 화분과 책뿐이다. 베란다가 화분들로 가득하다. 반려 식물이 되어간다. 주말이면 나무 손질도 하고 풀도 뽑고 물주며 떨어진 낙엽도 쓸고 대화도 나눈다. 거실에 앉아 가끔 침묵의 식물들을 바라보는 게 즐거움이 되었다. 그런데 아직 자연이 가까이 다가오지 않을 나이에 있는 딸은 못마땅해한다. 이번 집 리모델링 할 때 화분 때문에 앞 베란다를 새로 칠하지 못했다. 딸은 화분을 조금만 키우면 안 되냐고 한다.
화분은 지켜냈다. 사연과 추억과 정이 서린 화분들이다. 천리향을 준 사람과 남초를 준 사람과 군자란과 행운목, 산세베리아 인연들이 생각난다. 특히 몇 년 전 돌아가신 엄마가 유품처럼 남겨준 염자나 알로카시아를 비롯한 화분들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 이 화분들이 우리집 베란다 전경을 녹색으로 물들인다.
산이 둘러싼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서해가 있는 마을에서 자란 것이 시인의 감성을 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연 도서관의 혜택 아닐까.
너는 어디에 사니? 사는 곳이 부를 알아보는 경우가 있다. 거부들은 고층 뷰가 좋은 넓은 집에서 산다. 기생충이란 영화를 보면 지하에 사는 사람들은 핸드폰을 본다. 지하를 달려가는 지하철에서도 사람들은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책 대신 핸드폰으로 대체되었다. 고개를 들어 눈으로 바라보는 풍경을 포기하는 대신 고개를 숙여 카톡이나 미디어를 본다.
비밀이 많은 권력층일수록 최고층을 원하나? 꼭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현대는 고층일수록 아파트 가격이 비싸다. 고층을 선호하는 이유는 창을 통해 바라보는 경관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엘리베이터는 점점 높아지는 게 아닐까. 엘리베이터가 고층을 극복해주고 경쟁하듯 세계는 고층 빌딩과 고층 아파트를 지어대고 있다.
그런데 나는 고층 건물에서 화재가 나는 영화를 보고 고층에서는 살지 말아야지 다짐한 적이 있었다. 만약 정전이라도 된다면 50층에서 계단을 어떻게 내려올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하늘을 가까이해서 좋을까? 바벨탑처럼 하늘과 신에 도전하려는 행위가 고층을 낳는 건 아닐까? 높을수록 권력이나 부를 상징한다고 여기는지도 모른다. 아파트 계단을 오르며 생각해보면 고위층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자리나 상사의 자리나 선배들의 위치가 높았다. 높이에서 속을 내려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었다.
시집살이 4년하고 분가한 곳이 정릉 청수장 반지하였다. 시야라곤 빌라 마당이었다. 집안에 들어오지 않는 햇살이 결핍이었다. 나는 집을 벗어나 주택에 살던 정릉 고모댁에 자주 가곤 했다. 저녁 무렵 귀가하면 옆방 소리가 났다. 영화 상영하는 소리였다. 하루는 궁금해 물었더니 옆집 새댁은 남편이 날마다 비디오를 빌려와 영화 한 편씩을 본다고 했다. 한 편의 영화가 반지하를 견디게 해 준 ‘뷰’였으리라. 우리는 그곳에서 일 년 반을 살고 신도시로 입주했다.
나는 현재 뷰가 최고인 집에서 살고 있다. 저녁이면 임진강 노을이 베란다에 들어온다. 거실 가득 들판마다 심은 곡식이 거실에 사계절을 들여놓는다. 밤이면 제2자유로 불빛들이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어디 그뿐이랴. 봄부터 가을까지 통창으로 들어오는 나무들이 내 눈동자를 물들게 한다. 나의 능력으로 이런 경치를 어떻게 누리고 살 수 있다는 말인가. 88층 사는 펜트하우스 최고급 뷰가 부럽지 않다. 우리 마을 도서관 경관은 백만불짜리다. 3층 도서관 창가에 앉아 노트북을 켜는 주말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내가 좋아하는 화가는 고흐다. 그는 생전에 그림 한 점을 판 화가였다.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겨우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었다. 예술가들은 불행을 먹고 사는 사람들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그래도 사후 고흐의 그림은 수천억이 간다. 희소가치 등이 적용된 가격일 테지만 그보다 인상파를 탄생시킨 고흐가 후세에 인정받는 것은 그만큼 시대를 앞서간 것이 아닐까. 우리 아파트의 푸른 녹지나 마을 도서관도 희소가치를 품고 존재하는 곳이라 생각한다.
통창의 투명함은 사유의 여백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콘크리트 안에 갇혀 살며 자연과 단절되어 사는 내게 자연과 하나 되고 싶은 본능적 회귀가 나의 베란다요 통창너머 들판들과 화단들일 것이다.글을 쓰다 막히면 고개를 들어 나무를 바라본다. 간혹 강아지 끌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들 내 몸에서도 광합성이 일어난다. 막혔던 상상의 수맥이 물꼬를 튼다. 창박에도 마음이 있다. 정지된 풍경사이로 마음이 흐른다. 풍경을 실컷 바라보니 점심을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
- 엄마의 지혜 한마디는 "너무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