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을 싣고 비는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사라짐에 대하여 혹은 남겨짐에 대하여

by 안명옥


나는 비 오는 날이 좋다. 차분해지는 공기도 좋고 사람이 그리워지는 것도 좋다.

비가 내리면 이상하게 내 휴대폰의 밧데리가 더 빨리 방전되곤 한다. 촉촉해지는 대지 때문인지도 모른다.

젖은 공기 속에서 누군가를 그리다가 ‘비가 오는 데 힘내.’ 라고 쓴 문자를 받는다. ‘비에 지지 말고 살자.’ 라고 응원을 보내기도 한다.

창 너머로 흐르는 시간, 향수는 빗소리를 닮았다. 어린 시절, 뒤란 댓잎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 들으며 낮잠을 자고 나면 비에 대한 꿈을 꾸었다. 대숲에 자라는 칡넝쿨을 타고 올라가 구름사다리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곤 했다. 오디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면 오디를 먹고 싶어졌다. 입술이 까맣게 변해도 좋았다.

고춧잎에 빗물이 다녀가고 나면 풋고추가 더 단단해져 갔다. 어떤 고추는 붉어졌다. 다른 찬이 없어도 고추장에 찍어 먹는 풋고추 점심은 입맛이 살고 하루가 화끈했다.

비 오는 날, 엄마는 들일을 쉬고 집 안에 있었다. 농촌에선 비가 오는 날은 휴식이다. 평소엔 방과 후 빈 집에 들어설 때가 많았다. 빈집이 싫어 비 오는 날을 은근히 기다렸다. 엄마는 쑥 개떡도 해놓고 옥수수를 삶았다.

밥 푸는 엄마 손을 바라보면 그렇게 매듭 굵은 엄마 손이 착해 보였다. 배가 아파서 배앓이 때마다 엄마 손은 약손이 되었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 손은 믿음직해 보였다. 비 오는 날 가끔 배앓이 꾀병을 부렸던 것도 엄마 손이 그리웠나 보다.

고향 집 봉당에는 빗물을 받아두는 통이 두 개가 있었다. 우리 가족은 그 빗물을 알뜰하게 사용하였다. 아버지는 빗물로 낫을 갈거나 삽을 씻고 논에 다녀온 장화를 씻어냈다. 엄마는 빗물에 빨래를 하거나 집안 화분이나 꽃밭에 물을 주었다. 나는 학교 실내화나 운동화를 빗물로 빨아 쓰고 한여름이면 빗물로 뜨거운 봉당과 마당 열기를 식히곤 했다. 땅과 숲, 들판이 빗물을 품어주었다.

농촌에서 자란 나와는 달리 내 아이들은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아이들에게 자연은 회색 도시다. 빌딩 나무에서 자라는 잎사귀처럼 수많은 간판이 피어 있다. 비를 기다리는 간판들이 세수하지 않은 얼굴 같다.

아파트에 살면서 허공에 기대어 사는 사람도 늘어난다. 내가 자연에 기대어 성장했던 것과는 다르다. 흙에서 뒹굴고 흙을 가지고 놀았다. 흙내음을 맡으며 빗물에서 물장구치는 즐거움을 알았다. 그런데 도시에 살면서 비 오면 도로가 미끄럽고 막힐까 걱정한다. 뒷골목의 하수도 냄새를 맡으며 조각난 하늘을 보고 산다.

수돗물을 마시고도 꽃이라도 피면 베란다는 떠들썩해진다. 발걸음이 활발해지고 집안이 한바탕 환해진다. 마음이 출렁거린다. 꽃들에게 빗물이 더 좋지 않을까하여 비가 오는 날이면 창문을 활짝 열어둔다. 수돗물을 먹고 피어나는 꽃들에서 소독약 냄새가 난다.

빗소리를 아는 벗이 있다. 아파트에서는 빗소리를 들을 수 없다. 양철지붕으로 만든 카페로 간다. 두두둑 두두두두 세상이 개벽하는 소리가 도시에서 일어난다. 커피향기와 빗소리에 빠지면 이야기가 필요 없다. 눈은 늘 비를 향한다. 비 오는 거리를 바라본다. 비는 벽을 적시거나 통창에 편지를 쓴다. 나는 혼자일 때도 있고 벗과 연주하는 빗소리를 들을 때도 있다.

초가지붕에서 양철 지붕으로 지붕을 바꾼 후 빗소리 연주는 일개 오케스트라를 집에 초대하였다. 빗소리의 연주는 걸작이었다. 댓잎에 떨어지는 빗방울과 양철지붕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가끔 소가 되새김질을 하고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가 더해지면 환상적인 하모니를 이루었다. 그렇게 오래 내 귀속엔 빗소리와 빗물이 흥건하게 고이곤 했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격음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격음을 구별하는 청력 세포 하나가 영원히 빗물에 떠내려간 걸까. 그 대신 <개코>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냄새를 잘 맡는 코를 가졌다.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더 얻는 법을 배운다. 후각과 촉각이 다른 이들보다 더 발달 되어간다. 그것도 빗물이 준 축복이 아닐까.

특히 빗물을 나는 <구름 모유>라고 불렀다. 빗소리를 듣고 자면서 나는 키가 자라고 꿈도 자랐다. 빗물은 마당에 살던 개밥그릇에도 고이고 닭 모이통에도 고였다. 빗물을 먹고 텃밭 오이는 넝쿨을 뻗고 꽃밭의 맨드라미나 백합도 꽃봉오리를 맺었다. 각종 푸성귀 잎이 넓어지고 감자밭에선 감자알이 굵어졌다. 빗물을 머금은 흙은 더 부드러워지고 논에는 빗물이 찰박이며 양수기도 휴가를 얻었다.

봉당에 판 우물은 빗물이 스며든 물이리라. 모든 생명이 빗물을 받아먹고 자라고 성장하고 생기를 찾았다. 풀마저도 비가 오고 나면 더 무성했다. 그냥 버려지거나 쓸모없는 빗물이란 내 고향 농촌에서는 없었다.

비가 오는 날에도 아버지는 비옷을 입고 논에 가신다. 논의 벼들은 농부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라고 익어가며 튼실해지는 거라던가. 거머리가 종아리를 뜯어도 논 안을 누비셨다. 가뭄엔 논물을 대고 비가 많이 오는 날엔 물꼬를 터주며 피를 뽑아내고 지극 정성으로 논을 가꾸었다. 한평생 농부 아내로 산 엄마가 텃밭을 일구며 식물을 닮아가듯 비가 와도 평소처럼 논에서 허리 굽혀 일하던 아버지는 빗물을 닮아간다.

아랫집 할머니가 홀로 살다 돌아가셨다. 도회지에 살던 장남이 내려와 조상 대대로 다니던 둑 옆길마저 밭으로 편입시켜 갈아엎는 일이 일어났다. 아버지는 토지 경계에 관한 다툼을 하지 않고 이웃으로 가는 길을 막아버린 것을 빗물처럼 품었다. 그리곤 우리 논둑길을 넓혀 새로운 길을 텄다. 사막에서야 길이 없다면 가는 발자국이 길이 된다지만 고향은 사막도 아닌데 길이 사라진 것이다. 자본주의에 따른 농촌 인정이 실종되는 것이 우려되었다.

그런데 비가 오지 않아 논이 타들어 갈 때 다른 이웃이 양수기로 퍼 올린 금쪽같은 물을 우리 논에 슬쩍 넣어 주는 일이 일어났다. 역시 아직은 농촌의 공동체는 튼튼하다고 생각했다.

비는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도시에 내리는 빗물은 어디로 갈까. 하수도관을 타고 바다로 가면서 억울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언젠가 빗물을 찍어 먹어본 적이 있다. 짜지 않았다.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고 비로 태어나고 싶다. 붉은 구름이 나의 전생이 될 것이다. 구름처럼 어딘가에 매이지 않는 삶으로 살고 싶은 가보다.

가끔 집 근처 <열린 농장>에 들른다. 그곳은 이름처럼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있다. 머무르다 보면 마음의 여유가 돌아온다. 흙은 어머니 마음을 닮았다. 땅에서 나온 것들은 서로 나누고 품어주는 힘이 있다. 햇살과 빗물, 공기만 먹고도 땅은 풍요롭다. 정직하다. 땅은 노력한 만큼 되돌려 준다.

빗물이란 노래가 집안에 흐른다. 비에 젖은 기억의 책갈피를 닫고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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