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깁스하고 간 힐링 캠프,고비사막
내인생이 사막일 땐 진짜 사막으로 간다.기브스를 끌고 고비까지 가보는 거다. 기브스와 사막과 나 셋이서 어떤 겸험을 하게 될 지 설레인다.
발목을 다쳐 깁스를 한 채로 비행기를 탔다. 3시간 걸려 오후 5시에 몽골에 닿았다. 울란바토르(몽골의 수도)는 아파트도 자동차도 많고 여느 도시와 비슷하게 복잡했다.
몽골인 한국어과 비지아 교수가 두 대의 버스로 우리 일행을 숙소로 안내했다. 5층까지 계단을 걸어 올라가고 더운 물도 없고 물도 조금 나와 겨우 손만 씻었다. 여기가 사막의 나라구나 실감이 났다. 가이드로부터 사막여행 중에 조심해야할 문화의 차이를 들었다. 겔에 들어갈 때 사진을 찍을 때 손가락을 조심해야 하는 등 주의사항이다. 몽골은 우리나라와의 시차가 여름엔 없지만, 겨울에는 한 시간이 늦다. 몽골은 6월에서 8월까지 3개월 동안이 여름이고 그 나머지는 겨울이라 한다.
여행은 낮선 풍경과의 만남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들뜨게 하나 나를 만나는 매력이 있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어스름이 내리고 11시가 되니 깜깜해져 낮이 참 길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우리가 타고 온 미아트항공 본사 근처 환전소에 들렀다. 화폐는 우리돈 500원이면 500투그릭이다. 기본적인 인사말은 나눌 수 있었다. 생 밴오(안녕하세요?), 바야를라(감사합니다)외 발음을 따라 하기가 어려웠다. 풍요로운 여행을 하려면 의사소통이 중요한데 아쉽다.
바람이 스산하게 뒷골목을 어루만지고 지나가는데 긴팔옷을 입어도 끈적이는 더위는 느낄 수 없다. 몽골은 바람의 나라다. 그 바람이 사막의 생활을 견디게 해준다는데 사막에 빨리 닿아 바람을 마음껏 맛보고 싶어졌다.
러시아산 버스 두 대에 나눠 타고 가는데 봉고차만하다. 휘발유 냄새가 심했지만 버스 차량번호판에 몽골 국기가 그려져 있어 인상적이었다. 버스 운전석 머리 윗부분에는 ‘하닥’이라는 파란 천이 둘러져 있다. 몽골인들은 차를 사면 무사하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하닥을 사서 두르고 다닌다고 한다.
비가 내렸다. 석 달에 한 번 내리는 ‘감우’라며 기사들은 우리가 비를 몰고 온 사람들이라며 비가 내려 에델바이스 들꽃의 장관을 볼 수 있다고 해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서서히 초원의 모습이 드러났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아 자연 그대로다. 풀 뜯는 소떼가 한 폭의 그림 같다. 번아웃된 영혼에서 탄성이 나왔다. 초원길을 가다보니 돌무더기가 있었다. 중앙에는 파란 천이 꽂혀 있었다. 비가 오는데도 기사들은 내려서 왼쪽으로 세 번 돌며 돌을 집어 얹고 다시 초원길을 달렸다.
만달고비까지 비포장도로로 400km로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다. 비가 오니 흙먼지가 없어 앞차를 따라가던 우리들에게는 다행이었다. 차가 하도 흔들리니 금방 배고파왔다. 언덕에 오르면 뭔가가 있을 것만 같은데 끝없이 이어지는 평원뿐이다. 시간이나 장소의 노예에서 벗어나는 곳이다.
길거리 식당에 들러 몽골 칼국수를 먹었다. 감자와 당근이 든 양고기 칼국수다. 음식 나오기 전 수테차라는 양젖이 보온병에 담겨 나왔다. 바람에 시달린 몸은 추웠다. 식물들이 바람에 시달려 사막에선 자랄 수가 없는 것이다. 바람이 내 안의 나쁜 감정을 날려버릴 듯 불어댔다. 수테차는 마음까지 녹여주었다.
우연히 목동도 만났는데 ‘우르가’라는 양떼몰이용 나무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선 남녀가 사랑을 나눌 때 우르가를 꽂아두면 방해를 받지 않고 돌아가 준다고 했다. 가도 가도 아무것도 없는 허공뿐, 바람이 땅도 풀도 인간도 다스리는 곳이다. 바람이 허공을 꽉 채우고 있다. 새도 날개를 접고 낮게 날아다니고 도마뱀이나 메뚜기 역시 보호색을 띄워 잘 구별되지 않는다. 모든 생명체는 자연에 적응해 가는 것이 본성인 듯 했다. 한참을 가다보면 구름 그림자가 한 산을 다 뒤덮을 때도 있고 뜨겁게 달궈진 벌판을 그늘로 식혀주고 있다. 마치 검은 물감을 쏟아부은 듯하다. 거대한 땅거미가 기어가는 것 같다.
고비사막은 길이 아닌 곳도 길이다. 그저 달려가면 길이 된다. 울퉁불퉁한 길을 달리다보면 흔들리며 울퉁불퉁한 내 삶의 길을 달려온 것 같다. 앞날이 막막해도 다시 길을 만들어 가면 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 하나 지나다니지 않는 사막을 낙타 서너 마리가 지나다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사막의 여행은 그냥 풍경만 보려고 하면 아무것도 없다. 그 속에서 내가 중심이 되어 하늘, 사막, 모래바람, 지평선을 보아야 한다. 일상에서 놓쳐버린 나를 텅 빈 그 속에서 만난다.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차에서 내려 거꾸로 누워보니 하늘이 솥뚜껑처럼 몸을 덮은 것 같다. 지평선도 하늘도 다 둥글다. 여기서 바라보는 자연은 둥근 곡선이다. 날선 마음도 날선 생각도 둥글둥글해진다. 사막 같던 여자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달래의 풋풋함과 허브 향기가 있다. 그녀를 황폐하다고 말하지 않기로 한다. 그녀의 내면엔 푸르름이 있다. 그녀는 바람과 함께 산다. 유목민의 피가 흐른다. 가정을 이루고 직장에 메어 살아도 영혼은 방목하며 자유롭다.
8시간을 차로 달려 만달고비에 도착했다. 광활한 곳을 지나 낯선 마을에 닿으니 내가 작아 보인다. 남루한 이 곳 사람들보다 내가 더 남루해 보인다. 그래도 물끄러미 하늘과 대초원과 양 떼를 바라보며 구름의 풍요로움을 오래 경험한 하루가 큰 의미로 다가왔다.
사막을 한참 달리다가 쇠똥을 모아 태웠는데 나무 타는 향기와 비슷했다. 이 똥을 ‘아르갈’이라 한다. 아르갈의 향기는 고향의 냄새와 어머니의 냄새라고 한다. 길거리 식당 집은 쇠똥을 지붕이나 벽에 발라지었다. 똥이 건축재료도 되고 연료가 된다. 겔 안에 들어서면 어느 겔이나 난로가에 아르갈이 쌓여있다.
며칠째 집 나와 변비에 걸렸다는 한 일행은 마유주를 먹더니 뻥 뚫렸다고 좋아했다. 양고기와 우유, 치즈를 먹고 살아가는 몽골인들이 시력이 좋고 이가 고르고 하얗다. 말 젖을 발효시킨 마유주를 음료처럼 마시면서 체내 체지방이나 독소를 씻어내는가 보다.
네 번째 날 수요일 아침 수만 년 모래알들이 알타이에서 불어와 산을 이룬 모래산을 갔다. 기압이 높아지면 공기 속도가 빨라지면서 노즐현상에 의해 모래산이 만들어진다는데 길이가 700km나 된다. 우리는 차로 300km정도 달리다 모래산을 올랐다. 난 깁스를 한 상태여서 끝까지 오를 수는 없었지만 산이 품은 모래 칼날을 보았다. 물고기 여자들이 누드로 누워 있는 것 같다. 아름답다. 바람에 쉽게 흩어지고 다시 모이고 하는 모래를 바라보며 사람을 생각했다. 생활이라는 반경 안에서 좌충우돌하다보면 마음의 공간은 잡음이 들어찬다. 비워내고 그 마음의 공간에 광할한 초원을 담는다. 침묵과 자연이 있을 뿐이다.
양털 기계로 수공업하는 여인들의 사막 삶을 봤다. 그 여인들의 얼굴에서 살아있는 생명의 힘겨움, 견디고 있는 생활을 느끼다가 문득 <디아워즈>에서 세 여인들의 삶이 떠올랐다. 어디서 살아가든 다 힘겹고 견딜 뿐이다.
고비에서 고비를 넘겼다. 손톱이 많이 자랐다. 방전된 그래서 재충전을 해야 했던 내게 말달리는 소리 같은 활력이 돋는다. 그만두고 싶던 일들도 소중해진다. 여행은 내가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이 여행을 여행답게 만든다. 가족의 부족한 점이 크게 보이더니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리움이다. 사막의 바람을 사랑한다. 도시 유목민으로 질주하다 미칠 것 같은 날이 오면 다시 고비에 와야겠다.

엄마가 전해주고 싶은 말은 "카르페디엠이야. 순간에 충실하며 오늘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