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사람이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 나가야 살아있을 수가 있는 것은 시인도 마찬가지다.
한여름 땀 흘리며 쇼핑백을 만들고 있다가 원고청탁 전화를 받았다. 취업은 내게 독서도, 시도 잠깐 멀어지게 했다. 새로운 분야의 도전은 특히 더욱 그렇다. 낯선 환경을 적응하며 보낸 두 달 사이 몸무게가 3킬로그램이나 빠졌다.
지난 가을, 5번째 시집 <달콤한 호흡>을 낸 뒤다. 그동안 아날로그로 살아오던 내가 디지털 도전장을 내고 학원 전문가 취업반 과정에 등록했다. 아들, 딸 같은 젊은이들 틈에서 컴퓨터와 씨름했다. 2월 3월 4월 오월 중순까지 버텨내며 새로운 기술을 배운 4개월이었다. 디지털 세상이 되어 가는 환경 속에서 살아내기 위한 도전이었다. 힘센 공룡들이 멸망한 이유도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프리카 개발로 초원이 줄어들면서 설 땅이 없어지는 치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젠 아날로그로는 설 땅이 없다고 생각했다. 오전 8시 반까지 도시락을 싸서 등원하고 저녁 6시 학원을 마치면 녹초가 되어 귀가했다. 눈이 아파 인공눈물을 넣기도 하고 작은 가습기를 내 자리에 틀어놓고 일러와 포토샵 수업을 들었다. 약속도 만들지 않고 다른 활동도 접고 몰입했다. 함께 배우던 한 40대 남성은 “쉴 나이인데 왜 생고생이냐며 그만두시고 운동이나 하고 여행이나 다니세요.” 했다. 안쓰러움을 표현한 것이리라. 그럴수록 더 해내고 싶은 오기가 생겼다.
생소한 병원 원무과 근무에서도, 출판사에서도, 학교에서 시를 가르칠 때도 나이로 밀리는 느낌이 있었다. 물론 청년들이 취업이 안 되어 50대 후반 부모들이 취업전선에 나서는 기사가 종종 보도되는 게 현실이나 평생 일을 해온 나로선 50대 중반은 여전히 한창 일할 나이로 여겨졌다.
고생한 보람이 있었는지 공장 지대에 취업이 되었다. 다니던 학원을 나설 때 일러 포토를 가르쳤던 40대 여선생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내는 모습에서 존경스러웠다고 했다. 상장을 받는 기분이었다. 근무 잘하라고 응원을 했다.
오십 중반에 새로운 직업 디자이너에 첫발을 디디었다. 디지털의 세계로 들어선 것이다. 평소 디지털 실력이라면 한글로 시를 쓰고 메일을 보내는 정도였다. 출판사와 병원 근무에서 잠깐 엑셀을 접했고 병영 독서코칭 수업을 몇 년 하면서 파워포인트를 다루는 정도였다. 그러다 회사에선 디자이너보다 마케팅을 더 잘 한다는 걸 알았고 마케팅 팀장으로 발령 했다. 강의경력과 시를 써온 내공이 고객을 설득하고 거래처 확보를 늘게 만드는 힘 같다.
시인은 온몸으로 밀고 가는 사람이다. 중국어 강사, 논술 강사, 학교 방과 후 글쓰기 지도, 기자, 광고 카피라이터, 직업 멘토 강사, 금연 강사, 독서 코칭강사, 예고 문창과 선생님, 출판사, 병원 원무과까지 새로운 일을 접할 때마다 나와 함께 해준 건 시였다. 그래서 늘 당당할 수 있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온몸을 밀고 나아가는 시처럼 시정신으로 밀고 나아갔다. 상처도 실패도 불행도 실수도 포착해서 시를 썼다. 예술가들은 원래 뭉크나 고흐처럼 불행을 먹고 사는 사람들 아니던가.
다양한 직업의 환경을 경험하다 보니 세상 공부를 하는 점이 좋았다. 많은 일터를 거치는 동안 깊게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그 세계에 대한 애정이 생기고 탐험을 한 셈이다.
짧은 정신 요양 병원 근무였지만 삶과 죽음, 병들고 늙어가는 것에 대한 사유를 날마다 했다. 특히 정신이 아픈 학생을 만날 때는 아팠다. 알콜 중독자가 된 엄마를 남겨두고 돌아가는 자식들의 뒷모습도 안쓰러웠다. 기저귀를 차고 다니는 노인들의 풍기는 냄새들에서도 늙어가는 고통을 느꼈다. 한 보따리 우울증 약을 받아 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각종 이야기와 사건들은 그곳을 살아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내밀한 것들이었다. 출판사에서 일할 때 출판사의 분위기와 돌아가는 일들과 하루 일상을 알게 되었다. 교정을 보는 일에선 노안이 깃든 두 눈에서 불도 났다.
잡지사에서 일하던 기자 시절은 다양한 맛을 접했다. 맛, 멋 기행은 즐거웠다. 그러나 업체 탐방은 비슷한 업종이 많아 늘 카피에 대한 고민을 했다.
*시시한 연애는 있어도 시시한 시인은 없다.
자본주의 속에서 시는 명예도 되지 않고 권력도 되지 않고 부도 될 수 없다. 그래서 유용한 것이 아니니 억압하지 않는다. 유용한 것들은 억압을 한다. 평론가 김현 선생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시를 쓰면서 부러운 게 줄어들었다. 또한 시를 쓰면서 영혼이 부자가 되었다. 다르게 살아도 된다는 걸 알았다. 피할 수 없다면 고통도 즐기려 하고 비가 오면 쉬어가는 법도 터득한다. 실패도 실수도 상처도 스펙이 된다. 일상의 삶 속에서 발견하는 재미를 알아간다. 그런 것들이 모아져 나의 역사를 이루기도 하고 살아가는 힘이 생기게도 해준다.
특히 시를 쓰는 시간은 몰입하는 동안 현실을 잊을 수가 있다. 힘겨운 시절에도 시가 있어 나를 지켜낼 수 있었다. 이슬처럼 사라지는 생각을 붙잡아 쓰려고 시작 노트를 곁에 두고 생활한다. 나에게 시 쓰는 행위는 밥과 같다. 밥을 먹으면 힘 나고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오래전 파주 시립 문화원에서 중국어 초급반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중년의 어느 수강생 여자분이 “선생님은 늘 말씀하는 것이 엉뚱하세요. 그래서 재미있어요.” 했다. 또 다른 제자는 어린아이 같다고 했다. 난 동안 가꾸는 데는 관심이 덜하고 동심을 잃지 않고 사는 노력은 하는 편이다.
소설이 인생이라면 시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小說家에서는 집(家)을 쓰나 詩人에서는 사람(人)을 쓰는 게 아닐까. 소설은 가족을 이룰 정도의 돈벌이가 되어도 시는 돈벌이가 아니 된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는 시인
-사람다운 감정, 삶, 일상 속, 시가 나오는 것, 시인은 시시한 사람이 아니다. 도전하고 모험하는 탐구자다.
시가 나를 충족시킨다. 숲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나만의 보폭으로 나답게 걷는다. 걷다 보면 굵은 나무, 가는 나무, 작은 나무, 큰 나무, 다양한 종들이 어우러져 거대한 숲의 세상을 만들고 있다. 나무도 욕망이다. 서로 햇살을 향한 욕망을 내지른다. 문학도 하나의 욕망이다. 내가 지은 집이 허술해도 나를 살게 하는 집이다. 나만이 쓸 수 있는 것을 쓴다. 나는 내 시 안에서 시와 함께 살아간다. 더 예민해서 더 많이 울고 웃는다. 슬프고 고통스럽고 아프기도 하다. 지금껏 살면서 소외되고 아픈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았다. 그러면서 목마른 나는 탐험자, 아직 쓰이지 않은 시를 찾는 탐험자다. 내시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수없이 많은 미래의 내 세계들의 자궁이다.
한때는 살아가는 게 무섭고 두렵고 불안했다. 그래서 가장인 엄마로만 사는데 몰두했다. 견뎠다. 그때 시가 왔다. 어깨를 내어주었다. 구원처럼 종교처럼 애인처럼 시가 곁이 되었다. 실패를 해도 시는 떠나지 않고 외려 성장하게 해주었다. 시가 나를 살게 했다. 시가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했다. 시가 좋은 엄마로 살게 만들었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시로 써야지 생각하면 견딜만 해졌다.
사람본능에 충실하고자 한다. 마지막 직장에 열정을 쏟고자 한다. 지루한 세상 잘 사는 법이 일과 그리고 악기 하나 연주하는 것이라 생각해 뒤늦게 통기타를 혼자 익혀 간다.
날마다 최선을 다해서 살아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었다. 불공정한 것이 인생이었다. 그걸 위로해준 것이 시였다.
시는 쓸모없음의 쓸모있음이다. 영혼이 말라가는 것 같다가도 시를 읽거나 시를 만나면 영혼이 돌아온다. 촉촉해진다.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시인이 신일 때가 있나 싶지만, 굳이 밝히라 하면.
우주의 기척을 느껴 표현할 때 아닐까. 어떤 상황이나 정황을 예감 혹은 예지한 듯 기록한 경우, 신의 경지라고 본다. 다른 경우는, 시점을 들 수 있다. 전지적 작가 시점의 작품은 대체로 화자가 신이라도 된 것처럼 작품 전체에 관여. 나이기도 너 이기도 그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사물이기도 하다. 간절함이 시가 되는 지점, 위안이 되는 지점, 종교처럼 시인. 천지간에 그리움을 앓는 자. 그래서 신이기도 할 듯. 신은 우리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신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는 자다. 그래서 날마다 뉴스 사건주인공들이며 정치를 하는 국회나 전쟁을 하는 사람들이 이 모양인가 의심을 한다. 전지전능한 신이라면 인간을 이렇게 만들지 않았을 것만 같다. 신도 사람처럼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는 자다.
하늘과 땅 사이에 그리움이 가득하게 하는 자는 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