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 생각에 짜증이 난다.

#12

by 분갈이

"아버지, 술 좀 끊으세요!"


"한 번만 더 그 소리 해봐...!"


내 아버지는 이틀에 한 번 저녁 식사와 함께 소주 한 병을 마신다.


"아버지, 근육을 만들어야 해. 근력 운동을 해야 해. 단백질도 드셔야 하고. 스쿼트 하고, 슬로우 조깅을 해. 그리고 먹는 것도 잘 해야 해. 끼니마다 계란이나 참치, 고기로 단백질을 30g씩은 먹어야 해."


"배드민턴 치잖아."


"그건 근력 운동이 아니야. 근육을 만드는 운동을 해야 한다니까? 운동이라고 다 같은 운동이 아니야. 배드민턴은 심지어 회전 운동을 해서 허리에 안 좋아."


"시끄러. 내가 다 알아서 해."


내 아버지는 근력 운동을 하지 않는다. 이틀에 한 번 배드민턴만 친다. 그 튼실하던 종아리 근육은 팔뚝처럼 얇아졌고, 오리 궁둥이였던 엉덩이 근육도 다 빠져서 걸음걸이가 어그적어그적 이상해졌다.


고모 한 분에 육 남매 중 다섯 째로 태어난 아버지는 20리(약 7km)를 걸어서 국민학교를 다녔다.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프니 길가의 밭에서 이런저런 농작물을 몰래 서리해 먹었다고 한다. 그러던 2학년생의 어느 날 하교해 집에 돌아왔는데 목을 맨 당신의 아버지를 보았다. 사기를 당해 화병으로 고생하시다가 그렇게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어떻게든 살기 위해 육 남매를 데리고 산자락 움막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자식들에게 학교에 가면 뭐 하냐며 밭에서 일을 하라고 나무랐다고 하신 것을 종종 비난했다.


아버지는 국민학교만 간신히 졸업했다.

그 시절엔 일자리도 없는데, 국민학교만 나온 어린 아버지에겐 더더욱 일자리의 기회는 없었을 일이다.


그러다 아버지 나이 스물셋에 내가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2년 후엔 내 동생이 나왔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처음의 아버지 모습은 회색 H 영문자가 인쇄된 어깨끈이 하나만 있는 검은색 가방을 메고 일자리를 구하러 갔던 거였는지 뭔가 일이 잘 안된 분위기였고, 단칸방에 돌아와 문턱에 걸터앉아 있던 모습이다. 아버지는 양화점에서 기술을 배워보기도 했는데 그게 돈벌이가 별로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그렸던 구두 그림이 내 기억에도 있다. 막막한 형편에 아버지와 엄마는 종종 다퉜다.


아버지는 때가 되면 새 공책을 사 오셨다. 나와 동생에게 일기를 쓰도록 하셨다. 나에겐 그때 그렇게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이 참 스트레스였다. '나는 오늘', '오늘 나는' 으로 시작하는 일기의 첫 마디를 매일 반복하는 것이 지겨워 어떻게든 다르게 시작해 볼 노력을 했다.


아버지와 엄마는 이혼했다.

엄마가 떠난 것이니 아버지 입장에서는 이혼을 당했다고 해야겠다.

아버지는 많이 힘들어했다.

때마침 방학이었는데, 국민학생인 나와 동생을 할머니에게 맡겼다.

나중에 들었는데, 아버지는 차에서 스스로 죽을 생각도 했다고 한다.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와 엄마는 재결합했다.

자식들 때문에 억지로 재결합한 것이다.

그러다 나와 동생이 군에 있을 때 다시 이혼했다.


전역하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집안의 모습은 썩 좋지 않았다.

커다란 가족사진에서 엄마의 얼굴이 칼로 도려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는 분께 소개받아 어떤 여자를 집으로 데려왔다.

나에게는 이렇다할 설명이나 준비 없이 아버지는 새 아내를 그렇게 집으로 들였다.

나는 아버지가 혼자 외롭고 어둡게 사는 것보다 새로운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즈음에 나는 아버지 곁을 떠나 서울에 가기로 마음 먹었기에 내게도 그편이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10년 정도가 지나 아버지는 또 이혼했다.

그렇게 올해 칠순의 나이가 됐다.

만나는 여자가 있지만, 합치지는 않고 지낸다.


*


국민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산자락에 들어가 살았으니, 아버지의 존재, 가정을 지켜주는 든든한 아빠, 미래를 걱정해주는 어른 없이 몸만 컸으리라.


학교에 간다고 쌀이 나오냐며 밭에서 일이나 하라고 했던 할머니의 그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비난하는 아버지에게 나는 지난 설날에 '갑자기 남편 자살해 버리고 여자 혼자서 육남매를 키운다는 게 말이 돼? 자식들 버리고 도망가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지!'라고 했다.


아버지의 카톡 메시지는 맞춤법이 많이 틀린다.

아버지는 허리 디스크 수술을 4번을 했다.

평생을 버스 운전기사로 일하며 아들 둘 학교 보내고, 먹이고, 입히고 하셨다.

이제는 당신을 위해 쓰는 돈은 고작 이틀에 한 번 홀로 마시는 소주 한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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