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당신의 아들 올림

by HW

연필로 편지를 쓰는 일이 저에게는 쉽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컴퓨터를 다루는 직업 탓에 키보드가 더 익숙하기도 하고, 글씨를 쓸 때 세밀한 필압을 신경 쓰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필을 잡고 글을 적는 것은, 무의식적으로나마 노력의 흔적을 표현하고 싶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손끝으로 눌러쓴 글씨에 제 마음이 조금 더 담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습니다.


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어떤 이야기를 적을까 고민하다가, 단순한 축하 메시지보다 이번 기회에 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마도 지난 가족여행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사과와 반성, 그리고 느낀 회고에 대한 내용이 주가 될 것 같습니다. 그 여행에서 아침과 저녁 식사를 결제한 날, 식사 중 아버지께 왜 고맙다는 말을 해주지 않느냐고 했던 일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때를 돌이켜 보면, 섭섭한 감정이 컸습니다. 하지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단순한 감정 문제가 아니라 저 스스로의 기준과 기대에서 비롯된 일이었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원래 소비에 대해 보수적인 편이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자취하면서 생긴 태도인 것 같습니다. 그때는 경제적 여유가 많지 않았기에 소비를 할 때는 그 금액으로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을지를 따져 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진솔하게 표현하자면 돈을 씀에 있어 실패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어요. 같은 종류의 과자라도, 먹어본 적 있고 맛있다고 느꼈던 것을 선택하는 것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보다 더 안전한 선택이었습니다. 안전함에서 오는 확실성, 감정과 소비에서의 예측 가능성이 저에게는 중요한 기준이었습니다. 저에게 가성비는 가격 대비 성능이 아닌 감정적 만족의 기대치를 통해 계산되었습니다.


이는 아무래도 제가 인정욕구가 큰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이 미숙함을 저는 요즘 인정하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제 미숙함을 가지고 당신의 탓으로 돌려버린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더 성숙해지기 위한 연습을요. 무의식적으로 이 잣대를 들이밀며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다는 투정을 부린 저는요, 단순히 맛이 있거나 없다는 평가의 문제가 아니라, 제가 기울인 경제적 선택이 아버지에게도 감정적으로 보답받길 바랐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원래 그런 방식으로 표현하는 분이 아니셨지요. 그게 틀렸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사랑을 주시는 분임을 이해한다는 겁니다. 사랑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고, 아무래도 긴 기간 떨어져 살면서 점점 더 표현하는 방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도 같은 방식을 기대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제게 익숙한 방식이라 해서, 아버지께서도 그 방식을 따르셔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완벽한 저의 오만이었습니다.


그 상황에서는 결국 서운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만, 아버지는 놀랍게도 변화하려고 노력하셨습니다. 형이 밥을 샀을 때 아버지가 형에게 "잘 먹었다"라고 말씀하신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때 정말 기분이 좋았고, 지금 떠올려도 울컥합니다. 그건 비단 단순한 감사의 표현이 아니라, 저를 위한 배려의 행동이었습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아버지께서는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저와 다를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너무 경솔했습니다. 직접적인 말보다 행동으로 마음을 전하는 것이 더 익숙하셨을 수도 있겠지요. 감사라는 감정이 꼭 언어로 표현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요구를 듣고 표현하려고 애써 주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일이 단순한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익숙하지 않은 것을 받아들이고 변화하려는 모습을 보며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옵니다. 익숙한 것을 고수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이고 변화하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저도 변화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이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행 내내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순간들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시간을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 당신이 나의 아버지라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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