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먹을 수 없는 책이었습니다.
까맣게 언 고기를 던져보고, 다른 손으로 차려진 음식들을 입에 욱여넣어 보고, 가장 여린 살을 거친 입으로 찢어 피를 할짝거렸지만 저는 채식주의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선택적 섭취를 택해 뿌리를 내린 영혜와 달리, 저는 무차별적인 섭취를 추구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족의 진술서를 바탕으로 존재를 기록하고, 섭취를 포기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2. 진술서
[1장] 채식주의자
“......냄새가 나서 그래.”
“냄새?”
“고기냄새. 당신 몸에서 고기냄새가 나.”
나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못 봤어? 나 샤워했어. 어디서 냄새가 난다는 거야?”
그녀의 대답은 진지했다.
“......땀구멍 하나하나에서.”
- ‘채식주의자’ 중에서
영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영혜에게 특별한 단점이 없어보였고, 잘 보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결혼을 결정했습니다. 결혼 5년차, 영혜는 꿈을 꾼 후 냉장고 문을 열어 육류와 해산물들을 처분하고 동물이었던 것들을 먹지 않게 됩니다. 꿈에서 기인한 선택적 섭취에 화가 난 남편은 이를 영혜의 가족들에게 알리게 됩니다. 영혜가 선택적 섭취를 고수하자, 영혜의 아버지는 폭력을 가하고 강제로 입안으로 탕수육을 짓이겨 넣습니다.
그리고 영혜는 칼로 손목을 그어 피를 내뿜습니다.
영혜는 병원으로 이송됩니다. 어머니는 흑염소즙과 울분을 내뿜지만, 영혜는 먹지 않습니다. 남편이 잠이 든 사이, 영혜는 자리를 비웁니다. 분수대 옆 벤치에서 상의를 벗고, 거친 이빨자국 아래로 혈흔이 번진 동박새를 움켜쥔 채로 발견됩니다.
[2장] 몽고반점
자신은 정상적인 인간인가. 또는 제법 도덕적인 인간인가.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는 강한 인간인가. 확고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 질문들의 답을 그는 더이상 안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 ‘몽고반점’ 중에서
영혜의 형부는 예술작업을 합니다. 영혜의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있다는 사실이 각인되자, 예술적이고 성적인 욕망을 느낍니다. 영혜에게 자신의 작업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하고 영혜는 수락합니다. 작업을 위해 후배 J를 불러 영혜와 성(性)작업 지시하나, 후배 J는 이를 거부합니다.
형부는 영혜와 성행위를 시도합니다. 그러자 영혜는 꽃을 요구합니다. 전 애인의 도움을 얻어 자신의 몸에 꽃을 피운 후 영혜와 성관계를 가집니다.
둘이 잠든 사이 영혜의 언니는 교미의 장면이 담겨있는 영상을 시청하고 입술을 파들거립니다. 병원에서 그들을 포획하기 위해 접근하는 동안 영혜는 자신의 나체를 햇빛과 일치시킵니다. 그러나 광선을, 영혜를, 꿰뚫지 못합니다.
[3장] 나무 불꽃
영혜의 음성은 느리고 낮았지만 단호했다. 더이상 냉정할 수 없을 것 같은 어조였다. 마침내 그녀는 참았던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네가! 죽을까봐 그러잖아!
영혜는 고개를 돌려, 낯선 여자를 바라보듯 그녀를 물끄러미 건너다보았다. 이윽고 흘러나온 질문을 마지막으로 영혜는 입을 다물었다.
……왜, 죽으면 안 되는 거야?
- ‘나무 불꽃’ 중에서
영혜의 언니는 남편과 이혼합니다. 폐쇄병동에 있는 영혜를 만나려 하는 사람은 언니 밖에 없습니다. 열아홉살에 집을 떠나 서울생활을 해온 그녀는, 사는 것이 벅차게 느껴집니다. 지우(자녀)를 보며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생각해봅니다. 하혈했던 기억과 서늘한 생명으로 가득한 나무들을 떠올립니다.
의사는 정신분열증 및 신경성 거식증 판정을 내린 후 생명을 장담할 수 없다고 합니다. 영혜는 물구나무를 서서 나무가 되길 기다립니다. 언니는 영혜의 선택적 섭취를 이해하지 못해 아버지와 같은 방법을 택하려 했으나, 그 대신 영혜가 토해낸 더운 피를 받아내게 됩니다.
그러나 영혜를 놓아주지 못합니다.
영혜를 데리고 서울로 가기로 합니다.
모든 것이 꿈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3. 이제 그 사람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모든 모습들이, 역설적으로 자연스러운 행동의 결과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냉장고 같은 남편의 매정함, 개고기 같은 아버지의 폭력, 흑염소 같은 어머니의 울분, 꽃과 같은 형부의 성욕, 나무 같은 언니의 완강함은 각자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이는 고목(枯木) 같은 영혜의 탄생으로 이어집니다.
저는 나의 인생은 나의 것이며, 신체, 욕망, 감정 등은 나 그 자체이며, 당당하게 표현하고 성취하라는 사상을 적지 않게 들었습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 배웠습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결과만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던 표현과 성취의 과정은 폭력, 혐오, 배제, 억압 등으로도 나타났으며, 이는 일상 속에서 직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었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그 사상을 현실에서 여실히 보여줬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광경은 왜 이리 부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일까요?
아이는 개고기를 먹지 않고 자랄 수는 없었을까요?
남편은 아내에게, 부모는 딸에게 어떤 염려가 있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는 없었을까요?
형부는 일찍 집에 돌아가 가족을 돌볼 수는 없었을까요?
언니는 여동생을 놓아주지 않을 수는 없었을까요?
이제 그 사람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답을 찾고자 연구자료와 서평들에 눈과 손을 대보았으나, 영혜의 살과 가죽을 뜯어 육포로 만들고 가지를 뜯어 꺾꽂이를 하려는 시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영혜를 태운 차가 병원이 아닌 실험실에 도착해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은 박제된 생물 표본이 되길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모두가 자연스러운 일만을 하려는 사실을 견디기 힘들어 모아둔 자료들을 전부 폐기해버렸습니다.
그리고 한강 작가님이 하셨던 것처럼 질문만을 남겨두고 답변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답변은 죽어버리지만, 질문은 언제나 살아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저는 이 소설이 질문이라고 생각했어요. 대답이 아니라. 우리가 식물이 되어야 한다는 대답도 아니고 우리가 뭔가를 영혜의 언니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이런 어떤 사람이 있다. 이렇게 인간이기를 싫어한 사람도 있다. 이것 자체가 질문이 아닐까? 불편한 이 질문 속에 견디며 머물러 보는 게 어떨까"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ycsBdzxySpg [한강 작가 인터뷰 ft.김창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