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_2025년 12월 5일

사소한 것들의 무게에 관하여

by 재현가능성

1. 아버지는 틈틈히 사소한 행복들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다. 중간층 아파트에 살며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무시무시한 성취를 좇아 살아가야 하나, 망중한에서 뿌리채 솟아나려는 사소한 행복들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셨다. 이는 가르침이기보다는 인간으로써의 소양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당부에 가까웠다.


2. 대학교 동아리 시절, 회의를 하다 주홍등도 꺼져버린 밤이 되면 잔디밭으로 갔다. 돗자리도 없이, 다리가 몇 개인지도 모르는 풀벌레들을 치운 자리에 앉아 치맥을 시켜 먹었다. 사회생활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 서로 기분 나쁜 회의만 해왔던 우리들. 다음 날 배탈이 나는 저렴한 닭튀김과 산패취가 나는 뻑뻑한 맥주을 나눠 먹으며 고개를 들고 하늘로 시간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눈동자와 입을 맞추고 싶을 정도로 서로를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손을 잡아줄 정도의 아련함은 있었다. 작은 피로사회를 겪은 후 느끼는 소소한 행복이 좋았다.


3. 김한길의 눈 뜨면 없어라라는 책에는 값싼 행복을 무시해버린 댓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필자는 아내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게걸스럽게 일하며 성공을 꿈꾸었다. 본인은 신문사 지사장이, 아내는 변호사가 되었으나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어 이혼을 택하게 된다. 책에 충분한 단어가 적히지 않아 깊은 사연을 알 턱은 없으나, 성취달성에 중독된 부부는 아침에 서로가 어떤 옷을 입고 출근하는지조차도 모르고 살아왔을 것이라고 냉큼 짐작을 해버렸다.


4. 나는 아직도 하늘이 맑아지는 날에는 고개를 들어 시간을 보는 걸 좋아한다. 예전처럼 먹지 않아도, 빈속도 괜찮다. 새를 보는 것도, 그려보는 것도 좋다. 일기와 시를 쓰고 친구들과 나누는 것 또한 좋다. 스티커 모듬을 사서 자랑하는 것도 빼놓을 수가 없다. 이리 작은 것들로도 넉넉할 줄 안다면, 감히 어떤 것을 앓고 염려할 수 있겠는가? (少慾知足 少病少惱)

작가의 이전글일기_2025년 11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