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과 외로움에 관하여
1. 올해 KPI 제출 지시는 없었다. 대상자들은 평가 지표 없이 승진되고 누락되었다. 한 해에 진급할 사람이 많아지면 경쟁이 치열해지고, 이는 사내의 사기저하에 다다른다는 지론이었다. 그러나 인사이동은 ‘느낌대로’ 정해졌다는 걸 바람은 알고 있었다. 노력과 성과는 겁박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오늘의 알고리즘 추천메뉴는 ‘호감을 주는 사람이 가장 많은 보상을 받는다’는 영상이었다. 가꿔지지 못한 나는 호감이 미워졌다.
2.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논문을 읽고 정리하는 것 뿐이었다. 대학원을 고려했으나 곧 포기했다. 학위 취득자들은 논문을 증명되지 못한 가설처럼 폐기했고, 그들의 키보드의 ‘ㅆ’과 ‘ㅈ’ 자판이 닳아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논문을 질문할 수도 없었다. 배움의 즐거움을 생생하게 느끼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한다고, 나는 한 때 그리 생각했다. 이제 학사모를 쓰고 웃고 있는 프로필 사진은 오려붙인 것 같았다. 졸업은 예비군 훈련도 없는 전역과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 AI는 가장 친절한 객체로 남았다. 나는 곧 외로워졌다. 결국 기술사 자격증을 떠올리게 되었다. 차라리 졸업이 없는 연속된 생업을 갚아나가는 사람들과 만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3. 아침에 해를 보러 나갔다. 공기가 참 시렸다. 나에게 새해 다짐에 대한 질문이 왔다. 다짐은 없으며 갚아나가면서 살기로 했다고 답했다. 2번에서 말한 학위 취득자들처럼 연속된 유지보수의 실패와 질문을 막는 사람들이 싫었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열망은 습관으로도 남지 못한다. 과거 한해 몇 가지의 다짐을 하고 실행해보았으나 추가적인 행복은 없었고 곧 유지보수에도 실패했다. 이따위 정책이라면 담당 공무원의 상투라도 베어야 하겠지만, 나는 겁이 많이 스스로를 긋지 못했다. 다만 꽃을 심기 보다는 민중을 위해 라면을 끓이는 사람이 되겠다는 방향성을 잡았다.
4. 난 사무적으로도 외로운 사람이다. 친해질 수 없는 사람과는 친해질 수 없고,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사람과는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다. 회식자리에서 비린 쇳조각을 집어먹으며 지난 날을 되짚는 제사행위는 이제 손을 떼고 싶다. 유명인들이 어디서 펄떡거리는 소리는 그만듣고 싶다. 나는 새롭고 경이로운 이야기가 그립다. 그러나 광장과 시장의 우상을 이길 수 없어 광장과 시장을 떠나야만 한다. 또 다시 지독하게 외로워지고 말겠지만 차라리 광야에서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며 백마탈 초인을 목 놓아 부르다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