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그 사람을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아진다

사랑이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지 않은 채로 두는 일이다

by 소원

그런 말을 봤습니다.


사랑이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지 않은 채로 두는 일이다.


어떠신가요, 동의하시나요?





저는 사랑을 하면 가장 먼저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애쓰게 됩니다.

'왜'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 사람을 끊임없이 관찰하며, 질문하고, 파악하려 노력합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을까, 어떤 감성을 가진 사람일까, 이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할까 등- 그 사람을 알려고 하는 일이 저에게는 사랑의 증거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이란 그 사람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라는 말에 동의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 사랑 아닌가. 이해를 포기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깨닫게 된 것입니다.


아, 이런거구나.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런 뜻이었구나.






충청북도 청주시에 사는 오소리씨는 유약한 사람입니다.

오소리씨는 상처를 잘 받고, 감정적이에요.

저는 어린시절부터 오소리씨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네, 저는 어린시절부터 저희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저도 자라서 어른이 되고, 엄마도 더 어른이 되었을 때, 우는 엄마를 보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참 엄마는 유약하다니까."


저는 그때, 엄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유약해도, 상처를 잘 받아도, 감정적이어도, 기복이 심해도 상관 없었습니다.

그냥 그런 사람인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도 괜찮았고,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냥 그런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때 깨달았던 것입니다.

아,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왜 저렇게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나,

왜 저렇게 남의 말에 상처를 받나.

더이상 '왜'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런 사람이었고, 저는 곁에 있을 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적이게도 그 사람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야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이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지 않은 채로 두는 일이다'라는 말은 사랑의 정의가 아닌 귀결에 대한 서술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타자에 대한 이해를 멈추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닌, 불완전한 상태를 수용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이죠. 어쩌면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을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아진다.'라는 문장이 더 정확할 것 같네요.


네가 어떤 감정을 느끼던, 어떤 생각을 하던 그 어떤 의문도 품지 않을게. 너는 그런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