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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경심 Feb 22. 2021

1-9 나름대로가 아닌 너름대로

 아이가 다섯 살 때의 일이다. 아이를 데리고 집에서 삼십 분 거리에 있는 어린이 테마파크에 다녀왔다. 이동시에는 늘 자가용을 이용했지만 이날은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그랬더니 아이는 연신 소리쳤다.

 “엄마, 저기 좀 보세요!”

 “엄마, 저 건물 좀 보세요!”

 자가용을 타면 볼 수 없던 풍경을 보니 신기했나 보다. 아이는 버스 타는 내내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계속 쫑알댔다.

 목적지 근처 정거장에 내려 아이와 함께 지하상가로 내려갔다. 어린이 테마파크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어 지하 백화점 입구 근처에 있는 안내원에게 물어보았다. 안내를 받고 표지판을 보고 곧장 그리로 향했다. 몇 발자국 걷다가 돌아보니 아이가 따라오지 않고 있었다.

 “우와~ 엄마 이것 보세요!”

 아이는 백화점 입구에 있는 분수를 보고 감탄하고 있었다. 나는 전에도 늘 보아오던 것이라 새로운 감흥이 전혀 없었지만 아이에게는 처음 보는 광경이었던 것이다. 발걸음을 돌리고 아이 옆으로 섰다. 한쪽 벽면에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조각상들이 가득했다. 그 밑으로 폭포와 분수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노라니 마치 내가 로마에라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 광경에 빠져있는 아이를 간신히 돌려세워 분수를 배경으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아이는 계속해서 “우와”를 외쳤다. 안경가게에서 재미있는 안경도 써보고, 옷가게 앞에 있는 캥거루 인형도 구경했다. 자가용을 이용했다면 모두 즐기지 못할 일들이었다.

 어린이 테마파크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아이는 또 다른 신기한 것에 넋을 잃었다. 건물 벽 천장에서 물줄기가 내려오는 것이었다. 물줄기는 내려오면서 글씨도 써지고, 하트 등 간단한 모양도 만들며 내려왔다. 또다시 사진을 찍으려 휴대폰을 꺼내 들고 아이를 불렀다.

 “00아~ 뒤 돌아봐. 사진 찍자.”

 아이는 대꾸도 없이 그저 물줄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뒤 돌아봐야 사진 찍지~ 엄마 보라니깐!”

 그렇게 몇 번 소리치고 나는 갑자기 그 말이 떠올랐다. ‘너·름·대·로’. 나는 내가 찍고 싶은 아이의 앞모습 사진을 포기하고 그냥 뒷모습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아이가 지금 보고 싶은 곳을 보며 호기심을 충족할 때까지 기다렸다.

 엄마학교의 대표 서형숙은 책 <엄마학교>에서 이런 말을 했다. 많은 사람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이렇게 꼬였다, 문제가 됐다고들 한다고. 그건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것, 내가 보기에 마땅한 것을 택했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상대방, ‘너’를 위주로 생각해야 한다고. 그래서 그녀는 강의 때마다 나름대로가 아니라 너름대로 하라고 한다고 한다. ‘나’가 중심인 ‘나름대로’ 보다는 ‘너’가 중심이 되는 ‘너름대로’가 옳다고 말이다.

 내가 사진을 찍자고 했던 건 순전히 ‘나’ 중심의 생각이었다. 내가 아이의 사진을 찍고 싶은 ‘나름대로’ 때문에 물줄기가 마냥 신기해 계속해서 보고 싶은 아이의 ‘너름대로’를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내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아이에게, 가족들에게 혹은 지인들에게 그들을 위해서 했다고 생각한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것 역시 ‘너’가 아닌 ‘나’가 중심이 되어 ‘나름대로’가 되어버린 일들이 많았던 건 아닐까. 그래 놓고선 상대방에게 서운해하지 않았나 반성해 본다. 오늘 이 글을 쓰면서 그때 찍은 아이의 뒷모습 사진을 찾아보았다. 아이의 표정을 알 수 없지만 그날 내가 찍고자 했던 사진을 찍는 것보다 더욱 값진 것이 우리 아이에게 남았을 거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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