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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경심 May 21. 2021

5-1 한 달에 한 번 괴물이 된다

  

 눈을 뜨자마자 온 몸이 쑤셔온다. 짜증이 밀려온다. 일어나야 하지만 쉽지 않다. 잠시 눈을 붙였다 떴는데 어느새 시간은 훌쩍 지나있다. 젠장. 일어나니 코 골고 자는 신랑이 보인다. 어제 늦게까지 술 마시고 들어와 여태 쿨쿨 자고 있는 신랑의 모습이 꼴 보기 싫다. 짜증 난다. 학교 가야 하는 아이를 깨운다. 아이가 징징댄다. 짜증이 심하게 난다.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는데 어제부터 역겹던 오리탕 냄새가 코로 훅 들어온다. 순간 미간에 힘이 팍 들어간다. 아이는 내내 징징댄다. 아침 밥상에서 반찬투정도 한다. 어머님이 옆에서 도와주신다고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짜증 난다. 지각할까 싶어 마음은 내내 조급하다. 시간이 없어 아이에게 구강청결제로 대충 헹구고 가자고 한다. 아이는 이 닦는 걸 그리도 싫어하면서 이 와중에 이를 닦겠다고 떼를 쓴다. 나의 짜증은 그만 ‘욱’으로 폭발한다.

 “그럼 이 닦고 할머니랑 가! 엄만 늦어서 먼저 가야 해!”

 아이가 울부짖는다.

 “욕심쟁이!”

 나는 우는 아이를 뒤로 하고 온갖 짜증을 둘러업은 채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근한다.       


 한 달에 한 번 나는 괴물이 된다. 별거 아닌 일에 짜증이 나고 별거 아닌 일에 화가 난다. 만사가 나를 화나게 만든다. 평소보다 예민해지고, 짜증이 늘고, 화가 많아지면 결국 누군가와 다툼이 생긴다. 상대는 대부분 가족이 된다. 그리고 예민함과 짜증, 화가 줄어들고 나면 여지없이 생리를 시작한다. 아차. 내가 또 생리 전 증후군으로 예민했었구나. 언제나 감정이 요동칠 당시엔 모르다가 지나고 나면 깨닫는다.       


 생리 전 증후군은 생리와 관련된 정서 장애로 생리 시작 2~10일 전에 나타났다가 생리 시작 24시간 안에 사라지는 증상이다. 신체적인 증상으로는 피로, 두통, 허리 통증, 유방 팽만감 및 통증, 가스 팽만, 골반통, 체중 증가, 배변장애, 더부룩하고 메스꺼움, 근육통 등이 있고 정서적 증상으로는 불안, 예민함, 긴장, 타인에 대한 적개심, 집중력 상실, 기억력 감퇴, 인지력 장애, 집중력 장애, 정서적 불안, 우울증, 식욕 변화, 성욕 감퇴, 공격적 성향, 파괴적 충동, 자살기도 등이 있다.(삼성서울병원 건강이야기 참고) 아직 뚜렷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가임 여성 10명 중 적게는 2명 많게는 4.5명이 경험한다고 한다. 그만큼 여성에게는 흔한 증상이다.      


 언제나 감정이 요동치는 대로 끌려가던 나는 생리 전 증후군만이라도 조절하고 싶어 달력에 나의 감정을 적기 시작했다. 감정의 강도를 1~10으로 책정해 언제쯤 짜증이 늘고 예민해지고 화가 많아지는지 기록했다. 그 결과 나는 생리 시작 딱 일주일 전부터 예민해지기 시작한다는 걸 알아냈다. 그 뒤 달력에 늘 빨간 글씨로 ‘감정 조절 주의 기간’이라 써 놓았다.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감정을 조절하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렇게 내가 나를 관찰하고 나의 감정 리듬을 알아낸 지 무려 육 년 만에 생리 전 증후군을 다스릴 수 있었다. 생리 전 증후군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은 예민함과 짜증, 화가 없어졌다는 게 아니라 그 감정들이 폭발하지 않게 잘 다독일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감정에 불이 붙어 폭발하기 전에 말로써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감정 조절 주의 기간에 아이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00아, 엄마가 지금 좀 예민해. 너 때문이 아니고. 이해 좀 해줘. 미안.”

 신랑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나 지금 생리 전 증후군이라 그래. 자극하지 말아 줘.”

 (신랑에겐 곧 죽어도 미안하단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감정 조절 주의 기간이 되면 스스로 좀 더 예리하게 내 감정을 관찰했고 그 결과 짜증이 늘면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내 감정을 위에서 관찰하고 있는 또 다른 내가 탄생한 것이었다. 내가 나를 인식하는 것, 즉 인식에 대한 인식. 이것은 다름 아닌 ‘메타인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타인지란 쉽게 말해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메타인지란  내가 나에 대해 스스로 파악하는 것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내가 생리 전 증후군을 다스릴 수 있게 되고 내면아이를 치유한 이 모든 과정들은 내가 나를 파악하는 과정이었다.      

 어린 시절 아빠의 잦은 술주정과 잦은 실업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 엄마는 언제나 삶이 힘들었다. 감정조절에 서툴렀고 우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고 산다는 느낌을 주었다. 아이는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모든 원인을 자기 탓으로 돌린다고 한다. 그래서 그랬는지 우리로 인해 힘든 엄마를 보면서 나는 늘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걸 마음속에 각인시켰다. ‘차라리 내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나는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수치심을 키워나갔다.      


 브레네 브라운은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에서 수치심에 대해 자세히 다루었다. 그녀는 당혹감, 죄책감, 모욕감은 수치심과 별 구분 없이 사용되는 용어들이라며 각각의 감정이 수치심과 어떻게 다른지 알려주었다. 특히 죄책감과 수치심 이 둘의 감정 차이가 인상 깊었다.     


 죄책감과 수치심은 둘 다 자기 평가의 감정이다. 그렇지만 공통점은 그뿐이다. 죄책감은 나쁜 행동을 했다이고, 수치심은 나는 나쁘다이다. 죄책감이 행동에 국한된 것이라면, 수치심은 존재로까지 확대된다. 시험을 보면서 부정행위를 했다. 죄책감을 느끼고 속으로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는 죄책감이다. 반면 부정행위를 한 것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면, ‘나는 거짓말쟁이고 사기꾼이야. 난 바보 같고 나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브레네 브라운은 말한다. 수치심이란 나에게 결점이 있어서 사랑이나 소속감을 누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때 느끼는 극심한 고통을 뜻한다고. 내가 나를 파악할 수 있었을 때 비로소 이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내가 어떤 실수를 할 때 느끼는 감정은 언제나 수치심이었다.

  “역시 넌 바보 같아.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그 깊은 수치심의 수렁에서 벗어난 지금 나는 밝은 곳으로 나왔다. 내가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아, 내가 그래서 이런 감정을 느꼈던 거구나. 이젠 괜찮아.”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너 자신을 알라’라고. 우리는 나 자신을 알 필요가 있다. 내가 왜  외로운지, 우울한지, 슬픈지, 괴로운지, 불안한지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나를 잘 관찰해야 한다. 내 위에서 나를 관찰하는 메타인지를 키워야 한다. 감정의 메타인지를 키우면 나는 나를 이해하고 나에게 연민을 느끼고 나를 사랑할 수 있다.

 오늘 당장 나를 관찰해보자. 감정이 끌고 가는 대로 끌려가지 말고 잠시 멈춰 나를 바라보자. 내가 왜 이런 감정들을 느끼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를 그토록 힘들게 하는 고통스러운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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