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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경심 May 22. 2021

5-2 부부 사이에도 적정한 거리가 필요하다

 

 나는 그야말로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다)였다. 금사빠인 만큼 또 금방 사랑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니 제대로 된 연애를 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의 연애 패턴을 두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었다.

 첫 번째는 내가 상처 받기 전에 떠나기다. 상대가 조금만 나에게 신경을 덜 쓰는 것처럼 느껴지면 불안했다. 내가 싫어졌을 까 봐 나를 떠날까 봐. 그럼 애초에 큰 상처를 받기 전에, 내가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지기 전에 관계를 정리했다. 도통 이유도 알 수 없이 떠나버리는 나로 인해 상대는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두 번째는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받으려다 버림받는 것이다. 어떤 만남에서는 내가 먼저 상처 받기 전에 떠나는 시기를 놓칠 때가 있었다. 아마도 내가 상처 받을 까 봐 두려운 마음보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강했기에 그랬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상대가 나에게 조금이라도 소홀해지는 것 같으면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받으려 했다. 자주 토라졌고 작은 일에 의미를 두었다. 그럼 상대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몰라하며 도망갔다. 조금의 틈도 주지 않는 나로 인해 상대는 얼마나 숨이 막혔을까.      

 이러한 나의 연애 패턴 안에는 언제나 상대에게 버림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상처 받은 내면아이를 치유하면서 이것 또한 어린 시절 환경과 관계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는 내가 어떤 성과를 냈을 때에만 나를 인정해 주었다. 나의 부정적인 감정에는 엄마 또한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이런 엄마의 결과 중심적인 양육태도는 나도 모르게 엄마가 나를 버리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을 가지게 했다. 그것은 훗날 내가 성인이 되어서도 인간관계에 계속해서 영향을 주었다. 연인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혹시 상대가 나의 단점을 보고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나를 버리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술을 먹지 않았을 때는 천사 같지만 술만 먹으면 돌변하는 아빠, 불같이 화를 내고는 너무 깊이 사과하는 엄마. 어떤 상황 속에서 자주 일관되지 않은 부모님의 반응과 양육 태도들. 이런 환경 속에서 나는 나의 감정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사소한 것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고, 결정을 하고 난 뒤에 후회하는 일이 태반이었다. 타인의 말에 자주 휘둘렸고, 나의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 조차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마치 자아가 없는 사람 같았다.


 버림받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과 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 나. 이런 나의 모든 결핍을 충족시켜주는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이 바로 지금의 우리 신랑이다.

 사회 초년생 시절 아무것도 모를 때 신랑을 만났다. 신랑은 나와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났다. 당연히 나보다 아는 것이 많았고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굉장히 꼼꼼하고 합리적이었다. 나는 어떤 결정사항이 있을 때마다 신랑에게 물어보았고 그때마다 신랑은 정답 같은 말을 해 주었다. 또 어른다운 조언을 자주 해주었다. 그런 신랑에게 나는 많은 의지를 했고 자연스레 결혼까지 이어졌다. 무엇보다 중요했던 건 신랑은 나로 하여금 단 한순간도 버려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 년 반이라는 짧지 않은 연애기간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만났고, 단 한 번도 신랑이 나에게 소홀해졌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신랑은 나의 결핍을 완벽히 충족해주었다. 우리는 싸울 일이 없었고 행복했다. 그러다 아이를 갖게 되면서 우리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아이를 낳고 푹 퍼져버린 나의 몸을 보며, 어떤 옷을 입어도 태가 안 나고 아줌마스러운 나의 모습을 보며, 질끈 하나로 묶은 촌스러운 머리 스타일을 보며 나는 버려질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언제나 신랑에게 수용받고 싶어 했고 무조건 내 편에 서 주기를 바랐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그저 신랑에게 서운했고 화가 났다. 끊임없이 신랑에게 볼멘소리를 했고 투정 부렸다. 누구라도 이런 나의 반응에 기분 나빠하는 게 당연한데도 신랑이 기분 나빠하면 나는 버림받은 기분을 느꼈다. ‘아, 이 사람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구나. 이 사람도 결국 나를 버리는 거구나.’ 끊임없이 신랑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화가 났던 것이 버려질까 봐 두려운 마음에서 나오는 건지 당시에는 몰랐다. 내면아이 치유를 하고 난 이 시점에서 보니 나는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받지 못한 욕구 충족을 신랑에게서 끊임없이 갈구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수년 전 같이 일하던 직장 상사가 우리 부부와 저녁을 먹고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다음 날 직장 상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부부는 부부 같은 느낌이 아니에요. 마치 남편분이 보호자 같다랄까?”

 당시에는 그저 웃고 넘어갔지만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이제는 너무도 잘 알 것 같았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많이 신랑에게 의지했던가. 부부싸움을 하고 나면 하루 종일 괴로웠고, 신랑의 행동과 말에 따라 나의 기분이 좌지우지되었더랬다. 내가 공황발작 증세로 힘들어하며 응급실에 가자고 했을 때 걱정하기는커녕 윽박지르며 응급실에 가 봤자 특별할 게 없다고 말하던 신랑에게서 엄청난 상처를 받았었다. 그때 나는 완벽히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그때 이후로 신랑에게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았다. 어떤 결정 사항이 있어도 신랑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내 스스로 결정했다. 위로받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않았다. 신랑에게 그 어떤 의지도 하지 않았다. 홧김에 이혼하자는 소리를 해 봤지만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사람과 내가 끝까지 함께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참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신랑이 나에게 잘해주기 시작했다. 안 하던 집안일도 많이 했고, 다정한 말도 자주 했다. 내가 너무나 가까이에서 신랑의 사랑을 갈구하던 걸 멈추고 멀리 물러나자 이번엔 신랑이 나에게 바짝 다가온 것이다. 그런 신랑을 나는 계속해서 밀쳐냈다. 그 과정에서 또 다툼이 생겼고 우리 부부 사이에 적정한 거리가 생기기까지는 내가 마음을 닫은 때로부터 이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신랑과 수도 없이 싸우면서 부부 사이를 좋게 유지하는 핵심은 다른 인간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적정한 거리 두기’라는 걸 깨달았다. 고슴도치가 서로 너무 가까워지면 서로의 가시에 찔리듯이 부부관계에서도 너무 가까워지면 서운해지고 섭섭해지고 상처 받기 쉽다. 난로가 따뜻하다고 너무 가까이 가면 데이는 것과 같다. 난로로부터 적정한 거리에서 적정한 열기로 몸을 따뜻하게 데우듯이 부부 관계에서도 적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는 걸 알았다. 그러려면 각자가 홀로 설 줄 알아야 한다. 정신적으로 독립해 혼자 설 줄 알아야 한다. 나는 부모에게서 얻지 못한 결핍을 신랑에게서 얻으려 했었다. 내면아이 치유를 한 지금은 그러지 않게 되었다. 내가 힘들 때 외로울 때 신랑의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나를 위로하고 안아줄 수 있게 되었기에 신랑에게 너무 가까이 가지 않아도 되었다.

 부부관계에서 적정한 거리두기의 핵심은 홀로서기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부모에게서 얻지 못한 것들을 타인에게서 얻으려 하지 않아야 한다. 나를 돌아보자. 혹시 내가 지금 타인에게 서운해하는 이 감정이 그들에게 너무 가까이 가서 그러는 건 아닌지 돌아보자. 나의 결핍을 남편에게서, 아내에게서, 자식에게서, 친구에게서, 지인에게서, 애인에게서 채우려 하지 말자. 그것은 그 누구도 대신해주지 못한다. 어린 시절에 생긴 나의 결핍은 오로지 나 자신이 나에게 채워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홀로 설 수 있을 때 타인에게 서운해하지 않고 오히려 타인을 위로해 줄 수 있다. 이제는 홀로 서자. 우리도 진짜 어른이 되어보자.              

                    


브런치에 연재한 글이 감사하게도 종이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제 글이 여러분께 공감과 위로를 주고 나아가 치유까지 이어지는 시간을 드리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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