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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경심 Apr 24. 2021

공황장애가 나에게 준 선물

 

           공황장애는 나에게 ‘초코’를 선물해주었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뜬금없이 강아지 키울 생각이 있냐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동물을 엄청나게 좋아하던 나에게는 무척 반가운 말이었다. 그러나 신랑은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특히 동물에게 돈을 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이다. 이런 그가 나와 아이를 위해 강아지를 키우기로 결심했다.

 한참 공황장애로 인해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중, 그야말로 시의적절한 때 ‘초코(갈색 푸들이라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를 만난 건 운명 같다. 첫 주인이 못 키우게 되었다고 새로운 주인을 찾던 중 나에게까지 연락이 왔던 것이다. 약의 효과인지 나는 숙면을 하고 매일 새벽 6시만 되면 눈이 딱 떠졌다. 매일 아침 한두 시간 동안 초코와 시간을 보냈다. 사람이 강아지를 쓰다듬을 때 옥시토신 호르몬이 사람에게도 강아지에게도 동시에 나온다고 한다. 옥시토신 호르몬은 편안한 감정과 친밀감, 애정을 품게 해주는 행복 호르몬이다. 아마도 내가 공황장애를 극복하는 데에 우리 집 반려견 초코의 영향도 분명 있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자주 초코를 보며 생각한다. 지금이 네 살이니까 앞으로 길어야 십수 년이면 우리 초코도 하늘나라로 가겠지. 이 감촉, 무게, 냄새, 따뜻한 온기, 모두 너무 그리울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 서글퍼진다. 강아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시한부 인생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내가 지금 함께하는 우리 가족과도 영원을 기약할 수 없는데 알면서도 왜 이렇게 현실에선 자각하지 않고 사는지 모르겠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 우리 초코가 나의 품에 앉아 따뜻한 온기를 내뿜는다. 문득 신이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고 반려동물의 존재를 선물해 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매일매일 자각시키려고. 너무나 간사한 나이지만 이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나의 유한한 삶을 다시 한번 각성해 본다.      


        공황장애는 나에게 ‘식물’을 선물해 주었다.     

 공황발작을 겪고 나니 나에게 그리고 우리 집에 꼭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 같았다. 이 어둡고 우울하고 무거운 기운을 밝고 활기차고 가볍게 만들고 싶었다. 생명의 힘이 넘쳐나게 만들고 싶었다. 그 일환으로 식물에 집중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죽이려 해도 죽이기 쉽지 않다던 식물마저도 다 저세상으로 보내던 사람이었다. 다시 식물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또 몇몇 식물을 떠나보냈지만 하나하나 정성스레 키우다 보니 노하우가 생겼고 재미도 붙이게 되었다. 괜히 건드려 식물이 죽을 까 봐 엄두도 못 내던 분갈이를 척척 하게 되었고 이런 과정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하루 백 명 남짓이던 방문자수가 오백 명으로 늘었다. 멋진 식물 블로거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에게 꽃 씨앗을 나눔 받기도 했다. 그리고 그걸 키워서 불어난 씨앗을 다음 해엔 내가 다른 식물 블로거들에게 나눔 해주기도 했다. 일상의 소소하고 즐거운 취미가 생기니 점점 활력이 생겼다. 요즘은 죽어가는 식물도 살릴 만큼 식물 키우기 금손이 되었다.

 가지치기를 처음 시도할 때는 아깝기도 하고 마음이 쓰렸다. 그건 마치 바뀌지도 않을 과거에 집착해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나의 마음이 식물에게도 표현되는 것 같았다. 가지치기에서 많이 과감해지는 것만큼 과거를 향한 나의 마음은 훨씬 가벼워졌다.

 식물이 사람의 마음에 주는 효능은 약물치료 혹은 심리치료랑 비등하다고 한다. 식물을 가꾸는 것은 자존감을 높이고 우울증, 불안을 완화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외에도 교도소에서 식물을 가꾼 수감자들의 재범률이 낮아진 사례, 비행 청소년들이 식물을 키우면서 폭력성을 줄이고 자신감을 얻은 사례 등도 있다. 나 또한 공황장애를 이겨내는 데 식물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식물은 반려견과 마찬가지로 나의 감정이 어떻든 상관없이 흔들리지 않고 한결같았다. 언제나 내가 보여준 관심보다 큰 보답을 해 주었다.      

 정신 분석가 위니콧은 사람에게 안전하다는 느낌과 동시에 감시받지 않는 느낌이 굉장히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했다. 그런 느낌을 우두커니 식물을 바라보며 자주 느꼈다. 오후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초록 잎들을 볼 때면 마치 내가 광합성을 하는 것 마냥 안전하고 평온한 느낌을 받았다.

 예전에는 누가 어떤 계절을 가장 좋아하냐고 물으면 한 가지 계절을 생각해보느라 골몰했다. 보통 겨울은 추워서 싫고 여름은 더워서 싫으니 봄이나 가을이 좋은데 그래도 칙칙한 가을 보다야 봄이 낫다고 말하곤 했다. 이제는 고민 없이 바로 답할 수 있다. 모든 계절이 좋다고. 각 계절마다 피는 꽃이 다르고 각 계절마다 모습이 달라지는 식물들이 있으니까. 모든 계절이 기대되고 좋다고. 삶의 여유를 가진 사람은 계절이 바뀜을 인지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식물은 나에게 삶의 엄청난 여유를 안겨 주었다.     


    공황장애는 나에게 비행기 공포증을 없애 주었다.     


 언젠가부터 비행기를 타면 불안해졌다. 비행기가 기류를 만날 때면 그만 추락하는 건 아닌지 너무나 무서웠다. 몇 해 전 싱가포르 여행을 갈 때였다. 비행기에 문제가 있어 엔진을 바꿔야 한다며 탑승시간이 5시간이나 연착되었다. 엔진이 문제면 다른 비행기로 바꿔줄 것이지 엔진만 바꾸면 되는 문제란 말인가! 나는 극도로 불안해졌다. 여행을 안 갈 수도 없고 불안한 마음을 갖고 비행기에 탔다. 기내 화장실에 있을 때였는데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렸다. 어찌나 심하게 흔들리던지 문을 열고 나오다가 중심을 못 잡고 넘어졌다. 아픈 무릎을 문지르며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승무원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쪼그려 앉아 승객 의자 손잡이를 잡고 쩔쩔 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더욱 불안해졌다. 다행히 비행은 아무 문제없이 끝났지만 비행 내내 머릿속에 추락하는 상상으로 꽉 찼고 기내식마저 먹을 수가 없었다. 이후 나는 비행기 공포증으로 신경 안정제를 먹지 않으면 비행기를 탈 수 없게 되었다.

 공황장애를 거의 극복해 갈 즈음 보라카이로 여행을 떠났다. 혹시 몰라 신경안정제를 챙겼다. 그런데 웬걸. 비행 내내 나는 전혀 공포스럽지 않았다. 심지어 신경안정제도 먹지 않았다. 10kg짜리 아령으로 운동하다가 1kg짜리 아령으로 바꾼 느낌이랄까. 이미 공황발작으로 죽을 것 같은 극도의 공포를 경험하고 난 뒤 비행 공포쯤이야 하는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공황 장애로 인해 힘들었지만 공황장애는 결과적으로 나에게 굉장히 좋은 영향을 주었다.      


공황장애는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늘려 주었다.     


 공황발작이 심해 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집에 있는 시간, 아이와 함께하는 절대적인 시간이 늘었다. 자주 ‘욱’하던 나는 아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었으므로 상냥한 엄마가 되었다. 게임도 함께 하고 영화도 함께 보고, 산책도 자주 했다. 맞벌이하느라 학부모 상담도 전화로 대처해야 하곤 했는데 2학년 2학기 학부모 상담엔 직접 학교를 방문했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께 처음으로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님, 00 이에게 어떻게 대해 주셨어요? 1학기 때와는 너무나 많이 달라져서 놀랐습니다. 00 이가 참 밝아졌고 잘 지내고 있어요.”

 전학 와서 환경이 달라지면 많이 나아질 줄 알았던 아이는 2 하년 1학기 때도 이따금 문제행동을 보였기에 담임선생님께 이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저 ‘잘 지내고 있다’라는 말이 나에게는 사막에 표류한 사람이 애타게 찾던 단 한 방울의 물과 같은 것이었다. ‘욱’ 하지 않고 아이와 함께한 절대적인 시간이 늘어난 것이 큰 효과를 발휘한 것 같았다. 공황장애가 나에게 준 시간은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절실히 필요했나 보다.      


            공황장애는 내면 아이 치유를 도와주었다.     


 공황장애를 겪고 나는 나를 좀 더 거시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간 나는 너무 진지하게만 살았다는 것, 여유 없이 살았다는 것, 내가 만든 틀 안에서 계속 허덕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 할지라도 이렇게까지 힘들 일일까.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마음의 병들이 자꾸만 생길까 궁금했다. 나란 사람을 알고 싶었다. 이전에도 심리 관련 서적에 관심이 갔지만 이번엔 의도적으로 찾아 읽었다. 그러다 내면 아이를 만나게 되었고 치유의 기적을 경험했다. 그 과정을 <4부 내면 아이와 만나다>에 담았다.      

 나에게 공황발작이 찾아왔을 때 참 억울했다.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벌을 받아야 하나 싶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공황장애라는 위기로 인해 나의 삶이 달라졌다. 위기는 행복으로 탈바꿈되었다. 전화위복이다. 지금 누군가 어떤 위기에 처해있다면 모든 걸 포기하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위기는 더 나은 삶,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고 받아들이면 좋겠다. 삶의 위기에서 얻을 수 있는 건 그 어떤 것 보다 값지다.


 


브런치에 연재한 글이 감사하게도 종이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제 글이 여러분께 공감과 위로를 주고

나아가 치유까지 이어지는 시간을 드리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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