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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경심 Apr 19. 2021

아직 아물지 않은 아이의 상처

    

 어느 날 아이가 물었다.

 “엄마, 스파게티 맛이 나는 똥을 드시겠어요, 똥 맛이 나는 스파게티를 드시겠어요?”

 내가 다 안 먹겠다고 하니 꼭 골라보란다. 그래서 똥을 먹느니 똥 맛이 나더라도 스파게티가 낫지 했다. 나의 대답에 만족했는지 아이가 웃으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과거를 바꾸시겠어요, 미래를 살짝 보고 오시겠어요?”

 나는 미래를 살짝 보고 오겠다고 했는데 아이는 과거를 바꾸겠다고 했다. 궁금해서 물었다.

 “00 이는 어떤 과거를 바꾸고 싶은데?”

 “1학년 때 안 좋은 기억을 다 바꾸고 싶어요.”

 어느새 아이 눈이 촉촉해져 있었다.

 2년이란 시간이 지나 다 잊은 줄 알았는데 1학년 때의 안 좋은 기억들이 아직도 아이 마음 한편에 상처로 남아 있다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내가 친구들에게 그랬다는 게...”

 아이는 덧붙이며 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따돌림당한 상처가 아니라 친구들에게 했던 문제행동의 기억을 힘들어하고 있었다. 자책으로 괴로워하는 아이에게 내가 말했다.

  “우리 00 이가 그때 기억이 아직도 많이 속상하구나. 그건 엄마가 전에도 말했듯이 아빠, 엄마가 00 이를 잘 돌봐주지 못해서 그런 거야. 아이들은 힘들다고 표현을 말로 잘 못하거든. 발달 상말이야. 그러니까 그건 00이 잘못이 아니야.”      


 지난날의 기억으로 아파하는 아이를 위해 나는 어떤 말을 해 주면 좋을까.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이렇다 할 위로를 받아 보았거나 조언을 들어보지 못했거니와 나 스스로 위기를 잘 대처하는 사람도 아니었기에 아이가 아파하거나 힘들어할 때 어떤 말을 해 주어야 할지 난감한 날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번엔 나도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었다. 가장 먼저 김미경의 <엄마의 자존감>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이 떠올랐다.


 ‘힘든 시절을 겪은 아이들은 깊이가 곧 높이가 된다.’


 저자 김미경은 아들이 학교를 자퇴하고 방황하다가 다시 일어선 일을  깊은 지하로 들어갔다가 지상 2층으로 올라왔다고 표현했다. 겉으로 보아서는 2층이지만 지하층까지 합치면 12층이라는 것이다. 깊이는 곧 높이라는 말. 손으로 깊이와 높이를 가늠해 보여주며 아이에게 말했다.

 “00 이가 상처 받은 깊이가 이만큼이라면 그 깊이만큼 높이가 높아져. 그 높이가 네가 성장한 정도인 거야. 00 이는 깊이가 깊었기 때문에 이제는 뿌리가 더 튼튼한 사람이 된 거지.”

 그러자 아이가 공책에 깊이와 높이 그림을 그리며 내가 해준 이야기를 정리했다.

 “자, 그러니까 내가 1m 깊이의 상처를 받았다고 치면 높이가 이만큼 높아진 거네.”

  나는 거기에 더해 지난해 내가 겪은 인간관계에서 힘들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엄마는 작년에 일하면서 아주 힘든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엄마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해도 받아치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다가 병이 났거든. 그런데 이번 직장에서도 또 그런  사람을 만난 거야. 그런데 이번에는 엄마가 상대가 상처 주는 말을 하거나 부당한 말을 하면 논리적으로 말해 다 받아쳤거든. 그러니까 더 이상 엄마한테 상처 주는 말이나 부당한 말을 안 하더라고. 그러더니 결국 그 사람이 일을 그만뒀어. 작년에 힘든 사람을 만났을 때는 왜 이렇게 힘들까만 생각했는데 이번 일을 겪고 나니 그게 그저 힘든 일만은 아니었더라. 엄마는 그 일을 통해 엄마를 지키는 힘을 얻은 거 같아. 엄마도 상처만큼 높이가 높아진 거지.”

 아이는 내 말이 끝나자 다시 공책에 이야기를 정리했다. 우선 엄마라며 대충 단발머리 여자를 그리고 난 뒤, 이렇게 적었다.

 ‘처음에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 만남. 반박 못함. 저번 일을 경험 삼아 이번에 힘들게 한 사람을 빡치게 해서 회사를 그만두게 함.’

 ‘힘들게 한 사람을 빡치게 해서’라는 부분을 읽으며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이게 그렇게 해석되는 이야기인가. 그런데 아이가 쓴 마지막 문장을 보고 웃음이 멈추었다.


 ‘경험은 마음에 똑같은 일에 버팀목이 된다.’


 나는 놀란 표정으로 아이에게 엄지를 추켜세웠다. 아이가 잠시 뿌듯해하더니 시무룩해져서는 그래도 1학년 때를 생각하면 기분이 좀 많이 상한다고 했다. 그러더니 이내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또 그럼 나는 그 높이가 높아지고 높아지는 거지.”

지난날을 생각하며 어두워졌던 아이이 표정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처럼 맑아졌다. 끝이 안 보이던 터널에 갇힌 것만 같은 지난 시간들을 통해 내 아이에게 조언을 해주고 위로를 해 줄 수 있어서 기뻤다.      


 아이에게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알게 된 날 똥 맛 스파게티 질문으로 시작한 대화는 인류가 멸망한다면 어떻게 될지까지 나오면서 장장 두 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다. 아이와 이렇게 오랜 대화를 나눈 건 처음이었다. 인상 깊은 날이었기에 밤에 블로그에 모조리 적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며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는 엄마가 내 엄마라는 게 자랑스러워.”

 그토록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나에게 단비와 같은 말이었다. 지난날들의 고통이 모두 씻겨 내려가는 말이었다.

          

 부모라면 누구나 아이들에게 위로가 필요할 때, 조언이 필요할 때 어떻게 말해 주어야 할지 고민된다. 이때 필요한 것은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부모인 내가 고난을 이겨낸 ‘경험’ 그리고 ‘책’이다. 그러니 나에게 고난이 왔을 때 힘들어만 하거나 신세 한탄만 할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 헤쳐나가야 한다. 그 경험으로 얻은 힘은 훗날 우리 아이가 인생을 살아갈 힘이 되어 준다. 그리고 경험은 한계가 있으므로 나머지 부분은 책에서 얻으면 된다. 지식을 쌓고 지혜를 얻어야 한다. 부모란 아이보다 몇십 년 먼저 살아 본 경험으로 용기와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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