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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경심 Apr 16. 2021

절망 다른시선으로 보기

무거움과 가벼움

  

 나는 앞에서 공황장애를 겪고 나를 많이 돌아보게 되었고 또 알게 되었다고 했다. 특히 나에 대해 알게 된 점 중 가장 임팩트 있던 부분은 무언가 잘 안 되면 그동안 해 왔던 모든 것을 잊거나 의미 없는 일로 치부해버린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1학년 때 자신은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우리 아이를 보며 나처럼 자존감 낮은 아이로는 절대 키우지 않겠다며 해온 그간 나의 노력들이 모두 소용없었다고 생각했고 그로 인해 순식간에 절망에 빠졌었다. 부분적인 일을 전체로 확대해 스스로 어두운 동굴로 들어갔다. 그런데 밀란 쿤데라의 <자크와 그의 주인>의 머리말인 변주 서설을 읽으며 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절망한 적이 있었다는 걸 알았다.      

 밀란 쿤데라는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의 유명한 소설가다. 가장 많이 알려진 그의 작품으로는 <농담>과 <불멸>이 있다. 그가 쓴 <자크와 그의 주인>은 18C 프랑스의 작가 드니 디드로의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을 모티프로 해서 쓴 희곡 형식의 소설이다. 그가 체코슬로바키아에 살던 시절 러시아의 침략으로 그의 책은 모조리 금서가 되었다. 게다가 생활을 꾸릴 합법적 가능성이 하나도 없게 되는 등 많은 고생을 했다. 그 절망의 시간들 속에서 그는 드니 디드로의 시종일관 진지하지 않고 큰 소리로 떠들어 대는 대화와 다름없는 작품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으로 큰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1968년 러시아 침략을 비극으로 체험한 것은 박해가 너무 잔인해서가 아니라, 이젠 모든 게(다시 말해 나라의 본질까지, 그 서양적 특성까지) 영원히 끝장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절망 속에 빠진 체코 작가가 본능적으로 이렇게 자유롭고, 이렇게 진지하지 않은 디드로의 소설 속에서 위로를, 지지를, 숨 쉴 여유를 찾았다는 사실이 많은 걸 얘기해 준다고 생각한다. -<자크와 그의 주인> 변주 서설 중에서-     

 러시아가 침략한 상황에서 밀란 쿤데라는 나라의 본질까지, 서양적 특성까지 영원히 끝장났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다 디드로의 그야말로 가벼운 소설 속에서 위로와 지지와 여유를 찾았다고 했다. 이 부분을 읽고 나는 생각했다.

 ‘아! 쿤데라는 모든 게 끝장났다고 생각하는 무거움으로 힘겨워하다가 디드로에게서 가벼움을 깨달았구나. 숨 쉴 여유를 찾았구나.’

 이것은 커다란 역사 속에서 어느 한 작가의 깨달음이지만 나의 깨달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찌감치 떨어져 나의 과거를 돌아보았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진지하고 무겁게만 살아왔는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TV를 보다가 이렇게 상황을 무겁게 바라보는 또 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 바로 개그맨 이동우다. 나와 비슷한 세대라면 개그맨 다섯 명이 가수로 활동한 틴틴파이브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동우는 그 멤버 중 한 명인데, 십수 년 전 ‘망막색소 변성증’이라는 희귀병을 얻어 정상인 시력의 5%밖에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는 힘겨운 시간들을 잘 이겨냈고, 이제 중학생이 된 딸도 있다.

 어느 날 이동우는 수년간 해 오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하차하게 되었다. 그는 그 일을 굉장히 슬프고 무거운 마음으로 딸에게 전했다. 그러자 딸은 아주 가볍게 말했다.

 “그래서?”

 딸의 의외의 반응으로 이동우는 조금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그러고는 자신도 모르게 ‘쿨’하게 답했다고 한다.

 “아니, 뭐, 그렇다고.”

 그는 그때 딸의 ‘가벼운’ 반응은 그 어떤 위로보다 큰 위로가 되었다고 했다. 당시 어떤 마음으로 아빠에게 그렇게 답했냐는 질문에 딸은 아빠가 직업을 다 잃은 것도 아니고, 라디오 말고도 강연을 하거나 다른 재주도 많은데 뭐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동우는 수년간 해 오던 라디오 프로그램 하차를 세상이 다 무너질 것처럼 커다랗고 무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면 딸은 그저 그럴 수도 있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런 이동우 딸의 반응이 참 인상 깊었다.      

 밀란 쿤데라, 개그맨 이동우 그리고 나. 이 세 사람이 당시 공통적으로 느낀 건 ‘절망’이었다.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절망이 언제나 자신에 대한 절망에 불과하다고 가르쳤다. 쉽게 말해 절망은 내가 나이기를 원하지 않는 것, 지금과 같은 자아이고 싶지 않은 마음 상태,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욕망이다. 예를 들어 ‘1등 아니면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라는 목표를 세운 사람은 1등을 하지 못하면 그 때문에 절망한다. 1등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1등이 자신이 아니라는 걸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받아들일 때 무겁게 받아들일지 가볍게 받아들일지 절망할지 희망을 가질지 선택할 수 있다. 1등이 아닌 자아가 싫어 절망에 빠졌다면 또 다른 나를 선택하면 된다. 1등을 하지는 못했지만 ‘건강한 몸을 가진 나’를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작가 밀란 쿤데라가 그랬던 것처럼, 개그맨 이동우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그간 받아들인 무거움은 어쩌면 내가 그렇게 선택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앞으로는 무거움을 택할 때마다 나 자신에게 이렇게 되물어야겠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그럼 난 이렇게 답하련다.

 “뭐, 그냥,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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