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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경심 Jun 08. 2021

5-10 좋은 엄마는 자신을 사랑하는 엄마

     

 아이가 아직 유아였을 때 비행기 안에서 있던 일이다. 유아는 비행기를 이용할 때 성인 요금의 약 10%만 낸다. 대신 좌석은 따로 없고 부모 무릎 위에 앉히거나 베이비 바스켓이 있는 비행기라면 바스켓에 태울 수 있다. 우리 아이는 바스켓을 이용할 나이는 진즉 지났으므로 내 무릎 위에 앉혔다. 승무원이 이륙하기 전 승객들의 안전벨트 착용 여부와 의자 등받이가 바로 되었는지 창문 덮개는 모두 닫혔는지, 짐칸은 잘 닫혔는지 등을 확인하며 다녔다. 어느 승무원이 우리 자리에 멈추더니 아주 심각하게 말했다.

 “어머니, 안전벨트 그렇게 착용하시면 안 됩니다.”

 나는 영문을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승무원을 바라봤다.

 “그렇게 착용하시면 아이는 엄마의 충격 완화장치가 되어버려요. 굉장히 위험합니다.”

 나는 안전벨트를 나와 내 무릎 위에 앉은 아이까지 함께 싸잡아 매고 있었다. 승무원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투로 말했다.

 “어머니, 모르셨어요?”

 모를 수도 있지 뭐. 나는 좀 민망해하며 다시 아이에게까지 했던 안전벨트를 나한테만 둘렀다.

 “만약 위험한 상황이 생긴다면 어머니가 아이를 꼭 잡아주시면 됩니다.”

 사실 전혀 몰랐다. 안전벨트 착용을 이렇게 하면 아이가 위험상황으로부터 보호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것을.

 나는 그제야 비행기 좌석에 비치되어 있는 비상 상황 시 대처 요령을 기재한 지침서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비행 중 가방의 위치, 안전벨트 착용법, 비상구 위치 등이 나와 있었다. 그중 나의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었다.

 사고가 발생하면 기내의 기압이 떨어지는 것을 대비해 상단의 선반에서 산소마스크가 나온다. 영화에서 자주 봐 왔던 장면이기에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산소마스크를 착용하는 순서가 의외였다. 먼저 어른이 착용하고 그 뒤 아이에게 착용해 주라는 것이다. 약한 아이들에게 먼저 착용시켜주어야만 할 것 같지만 아니었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어른이 멀쩡해야 아이를 지켜줄 수 있기 때문이란 걸 알았다.

 비행기는 보통 고도 3만 5천에서 4만 피트 내외에서 비행한다고 한다. 만약 이 고도에서 갑작스럽게 문제가 생겨 4만 피트 상공의 기압에 노출된다면 사람은 30초 만에 정신을 잃는다고 한다. 압력이 떨어지는 속도가 매우 급격할 경우라면 불과 10초 정도에서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급박한 상황에서 아이를 먼저 구하겠다고 하다가 어른이 정신을 잃는다면 본인도 지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이마저도 지켜줄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어른이 먼저 산소마스크를 착용한다는 것이 나에게 굉장히 상징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나를 먼저 살려야 아이를 살릴 수 있다. 산소마스크의 상징은 내가 나를 사랑해야 아이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했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 자신을 사랑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어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던 이유는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산소마스크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육아를 하며 최종적으로 내가 깨달은 점은 좋은 엄마는 자신을 사랑하는 엄마라는 것이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아이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나의 결핍, 욕구, 욕망을 걷어내고 아이 자체를 볼 수 있다. 그래야 아이를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


 나를 사랑하지 않지만 우리 아이만은 목숨 걸고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엄마들이 있다면 이제는 아이까지 싸잡아 맨 안전벨트를 풀어야 한다. 엄마가 안전하게 안전벨트를 매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우리들의 충격 완화장치가 되지 않고 엄마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자. 그래야 우리 아이에게 온전한 사랑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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