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경심 Jun 05. 2021

5-9  ‘메멘토 모리’를 온몸으로 겪은 날

 공황장애를 이겨냈지만 몸이 피곤하거나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시면 마치 교통사고 후유증처럼 약간의 증상이 나타난다. 그럴 때면 까무룩 잠이 들자마자 심장이 팡하고 튕겨지며 깜짝 놀라 잠에서 깬다. 공황 증세가 심했을 때는 그렇게 되고 나면 엄청난 속도로 심장이 뛰었다. 심장 박동수가 빨라짐에 따라 극심한 불안감이 몰려와 약을 먹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약을 끊은 지금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심장 박동수가 줄어들 걸 알기 때문에, 절대 죽거나 미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좀 더 빨리 안정을 찾게 되었다.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신 날에는 영락없이 심장 튕김 증세가 나타났다. 공황장애 환자들에게 커피는 독이라는 걸 안다. 그러나 그윽한 향과 쌉싸름한 맛, 잠시지만 피로가 풀린 듯이 맑아지는 기분을 주는 커피를 완전히 끊을 수는 없었다.      

 최근 내가 가장 존경하던 최복현 작가님이 돌아가신 지 며칠 안 된 어느 날 오랜만에 공황 증세가 나타났다. 오전에 커피 한잔을 마셨는데도 불구하고 직장 동료가 사준 스타벅스 바닐라 라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한 날이었다. 잠이든지 두어 시간 지났을까. 갑자기 심장이 팡하고 튕겨지며 또 깜짝 놀라 깼다. ‘아, 또 시작이구나.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생각하며 다시 잠을 청했다. 팡! 또 심장이 튕겨졌다. 팡! 팡! 팡!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어 일어나 앉았다. 두방망이질 치는 심장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불안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만약 눈앞에 호랑이가 나타나면 인간의 심장 박동수는 빨라진다. 큰 근육으로 피를 순환시켜 빠르게 도망갈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공포의 순간 심장이 빨리 뛰고, 맥박이 빨라지고, 땀이 나고 긴장되며 요의를 느끼기도 한다. 이렇게 살기 위해 위험한 상황에서 생명 유지를 위해 인간이 하게 되는 본능적인 반응을 ‘투쟁 도피 반응’이라고 한다.

 나는 아주 평온한 집에서 고즈넉한 새벽에 아무 이유 없이 심장이 두근대고 있었다. 꽤 오래전 친척분이 퇴근길 본인 차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 채로 발견된 일, 지인이 화장실에서 쓰러지고 30분 동안 방치된 뒤 발견되어 반신불수가 된 일, 40대의 돌연사 뉴스들. ‘투쟁 도피 반응’으로 인해 나의 머릿속에서는 자동 반사적으로 심장이 뛰어야 할 상황이 된 것처럼 무서운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떠올랐다.      

오늘따라 신랑이 회를 먹고 싶다고 혼자서 포장을 해 먹었지. 너무 맛있다며 행복해했어. 같이 먹지 않으면 절대 혼자 사 먹지 않을 사람이 왜 그랬을까?

아까 신랑이 와서 나를 왜 안아주고 갔지?

항상 코를 골고 자는 사람이 코 고는 소리가 안 나네?     

 이런 생각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들처럼 떠올랐다. 혹시 이 모든 게 죽기 전의 신호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그렇게 전개되고 나자 불안감은 식을 줄을 모르고 급격히 치솟았다. 급기야 나는 안방 문을 열고 조용히 신랑이 자고 있는 소파로 다가갔다.

 옆으로 누워 있는 신랑이 보인다. 어두워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는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심장은 계속해서 두방망이질을 친다. 신랑을 깨울까 싶다가도 괜스레 잘 자고 있는 사람 피곤하게 할 거 같아 망설여진다. 불안감으로 가득 찬 나의 머릿속 한쪽 구석에 겨우겨우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성’이라는 아이가 ‘깨우지 마. 잘 자고 있잖아.’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정말 그런 걸까?

 두방망이질 치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안정을 취하려 우리 집 반려견 초코를 쓰다듬었다. 크게 효과는 없었다. 다시 신랑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코 고는 소리가 안 난다. 깨울까? 아니 살아 있는 걸까? 극도의 불안감이 몰려와 나는 신랑의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아~ 뭐 하는 거야~”

 잠이 깬 신랑이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랑의 생사를 확인 한 나는 안도감에 그만 눈물이 주르르륵 흘렀다.

  울음을 머금은 목소리로 내가 말했다.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그랬어.”

 “어휴, 얼른 가서 자.”

 공황 장애로 인해 잠에서 깨는 것이 극도로 예민해진 이후로 신랑은 몇 년째 소파 신세다. 그런 신랑에게 너무 미안했다. 안쓰러웠다.

 “이제 안방에서 자. 중간에 자러 들어오더라도 그냥 안방에서 자.”

 이날은 최복현 선생님이 늘 강조하던 ‘메멘토 모리’를 온몸으로 겪은 날이었다. 어쩌면 최복현 선생님이 나에게 주고 가신 선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멘토 모리’는 라틴어이다. ‘기억하다, 생각하다’는 뜻의 ‘메멘토(memento’)와 ‘죽다’라는 뜻의 ‘모리(mori)’가 합쳐진 말로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 ‘죽는다는 걸 생각하며 살라’는 말이다. 로마 공화정 시절에는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들이 행진할 때 함께 타고 있던 노예가 장군의 귀에 대고 ‘메멘토 모리’를 계속해서 속삭이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위대한 장군이라도 결국 언젠가는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살라는 것이다.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 우리는 모두가 언젠가 죽는다. 나도 죽고 너도 죽는다. 나이가 많다고 먼저 가는 것도 아니고 나이가 적다고 나중 가는 것도 아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아무도 모른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알지만 살다 보면 잊히고 만다. 언제까지라도 살 것처럼 작은 일에 매달리고, 섭섭해하고, 성을 낸다. 당장 내일 우리가 죽는다고 생각한다면 그 일들은 얼마나 하찮은 일일 것인가. 너의 죽음을 생각하라. ‘메멘토 모리’를 마음 깊이 새겨 넣으면 자연스레 지금 현재에 충실하자는 ‘카르페 디엠’이 따라온다. 과거는 바꿀 수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는 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선택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다. 지금에 충실하다면 다가오는 미래는 선물이다. 너의 죽음을 생각하며 현재에 충실하라. 최복현 선생님이 강조한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을 조화롭게. 그것이 무엇인지 이제는 알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5-8 나의 영원한 선생님, 최복현 선생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