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유명 여배우가 어린 시절이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며 말했다. 자신은 자신의 아빠에게 무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그러니까 미움도 원망도 없고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말이다. 미움이라는 것은 달리 말해 애정이 있다는 말일 것이다. 원망이 있다는 것도 그만큼 기대한 바가 컸다는 것일 것이다. 아빠라는 존재에게 그러한 감정이 전혀 없다는 여배우는 남편이 자신의 아이를 사랑스럽게 돌봐주는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날 것 같다고 말하는 중 울컥해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아이와 남편의 아기자기한 모습을 보며 치유된다고 했다.
그녀가 말하는 아버지에 대한 무감정. 나도 그랬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아빠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생각했고 아빠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우리 아빠는 술을 좋아하셨다. 평소에는 말없이 조용한 아빠였다가 술만 먹으면 돌변했다. 아빠가 술을 먹고 들어오는 날이면 부모님의 부부싸움으로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날이었다. 어린 시절 그런 날들을 보내며 나는 늘 긴장했고 불안을 넘어 공포를 느꼈다. 부모님의 싸움은 내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되었다. 다만 싸움의 강도와 횟수가 조금 줄어들었을 뿐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부부싸움으로 느꼈던 공포는 성인이 되어가며 퇴색되었고 그저 지긋지긋한 일상이 되어 있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결혼을 했고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었다. 부모님은 결국 이혼했다. 그리고 나에게서 아빠라는 존재는 지워져 갔다.
불안과 공포를 느끼며 어린 시절을 보낸 이력은 내 삶에 언제나 영향을 주었다. 나는 감정 기복이 심했고, 불안도가 높았다. 이런 요소는 아이를 키우며 더 도드라졌다. 그렇게 싫던 부모님의 모습을 고스란히 답습했다. 나의 불안도는 극을 달렸고 결국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공황장애로 삶의 위기 정점을 찍었다. 십 분을 걷고 나면 네 시간을 드러누워 있어야 하는 생활 속에서 나는 본격적으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의도적으로 심리학 서적을 독파하며 나의 내면에는 '너는 쓸모없는 존재야.'라는 수치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걸 알았다. 상처받은 내면 아이 치유의 기적을 경험하며 내가 늘 감정적으로 힘든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이는 진부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나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에는 어떤 흐름이 있었다. 가장 먼저는 내가 어떤 상태인지, 지난날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알아차림이 있었다. 이후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는 연민의 마음이 올라왔다. 언제나 스스로를 지적하고 비난하고 경멸했던 나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지난날 나에게 참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에게 사사건건, 매일매일 끊임없이 경멸의 말을 쏟던 나는 얼마나 악독했던가. 나에게 연민을 느끼는 시간은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아픈 날들의 기억, 상처들을 눈물로 씻어 내는 날들이었다. 누군가 나를 사랑하는 게 어떤 거냐고 물어 오면 나는 자신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나 연민의 과정이 끝나갈 무렵 진정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연민을 넘어선 사랑이라는 걸 알았다. 연민을 넘어선 사랑이란 자기 믿음을 갖는 것이고 자신을 격려할 줄 아는 것이다. 나의 장점은 알아주고 단점은 안아주는 것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기적 같은 내면 치유를 경험한 나지만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바로 남편과의 관계 문제. 휴일 공황발작으로 극도의 공포를 느끼던 날, 나는 남편에게 응급실에 가자고 했다. 하루에 벌써 두 번째 발작이었다. 남편은 그런 나에게 소리쳤다.
"지금 응급실에 가 봐야 해 주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남편의 말 한마디 한 마디는 내 가슴에 비수로 와서 꽂혔다. 더 자세히 표현하자면 한 영혼의 우주가 산산 조각났다고 할까. 그때 이후로 나는 남편에게서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았더랬다. 그 마음의 문을 여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면 치유에 대해 공부하면서 알았다. 내가 공황발작을 일으킨 날 남편이 나에게 소리치던 모습은 다름 아닌 어린 시절 나의 엄마가 나에게 보여준 모습이었다는 것을. 나는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서 엄마를 투영하고 있었다. 남편의 말이 비수가 되고 나의 마음의 문을 굳게 닫히게 한 건 어린 시절 내가 받은 상처가 건드러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용서하지 못했던 건 남편이 아니라 나의 엄마였다. 엄마를 용서하고 나서야 비로소 남편을 용서할 수 있었다. 이것은 내면 아이 치유 과정 속에서 가장 큰 깨달음과 치유가 되었던 부분이다.
그렇게 남편을 용서하고 마음의 문을 열고 지냈지만 가슴속 응어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음을 느꼈다. 나는 여전히 남편에게 다정하지 못했고, 반항심 같은 게 올라왔다. 엄마를 향한 용서가 남편을 향한 용서로 이어진다는 큰 깨달음을 얻은 뒤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나와 아빠와의 관계 또한 지금 내 남편과의 관계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남편에게서 우리 엄마뿐 아니라 아빠의 모습까지도 투영하고 있다는 것을. 아빠와 화해해야 남편과도 진정 화해할 수 있다는 것을.
지인을 통해 상처받은 내면 아이 치유에 탁월하다는 <현존 수업>이라는 명상 책을 알게 되었다. 총 10주간 명상을 하며 내면 여행을 안내해주는 책인데 내면 치유에 정말 큰 도움을 받았다. 명상을 할 때면 생각지 못한 기억들이 떠오르거나 감정이 올라와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어떤 날엔 극심한 공포심이 밀려와 애를 먹기도 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새로운 알아차림, 소소한 치유와 깨달음을 계속 얻었다. 명상을 시작한 지 육 주 차가 된 어느 날이었다. 나는 명상을 하며 남편과 다투며 폭발해 버린 감정 '분노'를 온전히 느끼려 애썼다. 그러자 어린 시절 내가 분노했던 여러 장면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불현듯 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비를 맞으며 걸어가고 있는 일곱 살의 나. 저 멀리 누군가 자전거를 타고 오는 모습.
그날은 이사 가는 날이었다. 나는 유치원 버스를 타고 새로 이사 가는 집 앞에서 내렸다. 일전에 엄마가 새로운 집을 보여 주었기에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비를 피하려 쏜살같이 달렸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열어 보고는 깜짝 놀랐다. 집 안에는 아무도 또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새로 깔린 장판이 구불구불 울어 있을 뿐이었다. 당시에 우리 집에는 전화기가 없었기에 엄마가 유치원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이사를 미루게 되었다는 말을 전하지 못했다. 엄마는 기존에 살던 집 앞으로 유치원차가 지나갈 때를 맞춰 나왔지만 유치원차는 이미 저 멀리 가고 있었다.
엄마가 잘 찾아왔다고 반갑게 맞이 해줄 줄 알았는데 새로운 집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무섭고 불안한 마음에 나는 구불구불한 장판 위에 앉아 목놓아 울었다. 한참을 울었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다시 정적이 흘렀다. 어린 나는 나름 머릿속으로 궁리를 했다. 그러고선 이전에 살던 집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버스로 두어 정거장 정도 되는 거리지만 그쪽으로만 계속 걸어 간다면 내가 살던 집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확한 길을 아는 건 아니어서 불안하고 무서웠다.
비가 오고 있었다. 우산도 없이 나는 옷이 비로 다 젖는지도 모른 채 오로지 예전 집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저 멀리 누군가 자전거를 타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렴풋이 보였지만 성인 남자 같았다. 속으로 생각했다.
'저 사람이 우리 아빠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간절했다. 마치 망망대해에 혼자 조난당한 기분이었으므로.
남자가 가까워진다.
'우리 아빠라면 얼마나 좋을까?'
남자가 더 가까워진다. 비옷에 달린 모자를 쓰고 있다.
'아빠라면 얼마나 좋을까?'
남자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진다. 마침내 나는 비옷 모자로 얼굴이 반쯤 가려진 그 남자를 알아보았다. 우리 아빠였다!
명상 중 아빠가 나를 데리러 온 장면을 떠올리며 눈물이 줄줄 흘렀다. 당시 내가 느낀 감정들이 오롯이 느껴지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살아가면서 아빠가 나를 보호해준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런데 딱 한번 있었던 것이다. 그날 아빠는 나의 은인이었다. 나의 보호자였다. 아빠는 무서웠을 나에게 그 어떤 토닥임도 없었지만 그저 존재만으로 나의 불안은 사라졌다. 알고 보니 나는 아빠에게 너무나도 사랑받고 싶었다는 걸 알았다. 놀라운 발견이자 깨달음이었다. 분노라는 감정 밑에 이토록 사랑받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가 있었다니. 나는 아빠에게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게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아빠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의 내가 어린 나에게 말했다. 이제는 아빠를 보내주라고. 더 이상 아빠의 사랑을 바라지 말라고.
'우리는 그때 그 추억 하나만 간직하고 살아가면 돼. 이제는 내가 너를 보호해 줄 거야. 걱정하지 마.'
나는 상상 속에서 꺼이 꺼이 우는 나의 내면 아이를 안아 주었다. 아이의 슬픔이 뼈아프게 느껴졌다. 그리고 함께 자전거를 타고 멀어져 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빠를 보내드렸다.
명상이 끝나고 나는 그날 하루 종일 울었다. 밥 먹다가 울고, 설거지하다가 울고, 핸드폰을 보다가 울고. 정신적으로 아빠와 이별하는 것이, 독립하는 것이 참 슬펐다. 자각하지 못했지만 알고 보니 아빠의 사랑을 갈구하던 나는 사실 속으로 아빠에게 분노하고 원망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 것들이 결국 남편에게도 투영되었던 것이다. 남편에게서 나의 아빠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부분이 보이면 극도로 싫어하던 나였다. 사실 남편은 우리 아빠와는 전혀 다른 존재였음에도. 내게 남은 숙제를 하고 나니 남편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그간 가족을 위해 배려해준 일들, 알뜰 살뜰 가정적인 면들이 생각났다. 지난 날 내가 나의 부족한 면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장점 조차도 인정 안 해준 것처럼 남편에게도 그랬다. 남편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지 못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잘못된 표현으로 아빠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남편에게서 갈구 하고 있었다. 이런 나와 살면서 남편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함께지만 외로웠을 남편에게 미안했다. 아빠를 향한 무감정을 한꺼풀 벗겨내니 원망심이 나왔고, 원망심을 한꺼풀 벗겨내니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나왔다.
감히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 유명 여배우가 남편과 아이가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린 건 마음속 깊이 아빠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는 내면 아이의 눈물일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