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찬 인생

by 허경심

수년 전 직장 동료가 어떤 책을 읽고 나에게 물었다.


“이 사람은 이렇게 사는데 우리는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동료가 읽은 책은 저자가 봉사활동을 통해 사회적으로 공헌한 이야기가 나오는 책이었다. 나는 우리 가족 안에서 행복한 기운이 나온다면 그게 곧 사회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우리 자식들 잘 키우고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면 되지 않을까요? 그게 세상에 좋은 일 하는 거라 생각하고.”


동료는 나의 말에 위안을 받은 것 같았다. 사실 나의 대답은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다. 만약 우리 가족 안에서 부정적인 기운만 돈다면 분명 그 기운은 밖에 나가서도 소비될 테고 안 좋은 기운이 주변으로 돌고 돌게 뻔하다. 반대로 우리 가족 안에서 긍정적이고 행복한 기운이 돈다면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기운이 전해질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머릿속 생각일 뿐이었다. 나는 동료에게 번드레하게 대답했지만 사실 실천을 잘 못하고 있었다. 나는 내 가족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잘하려고 더 노력했다. 그들의 구미에 맞추려, 기대에 부응하려 애쎴다. 그러고선 어떤 날에는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에 와서 풀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내가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더 잘하려 노력했던 건 나의 채워지지 않는 인정 욕구를 그들에게서 얻기 위해서였다. 그들의 인정에 어깨가 으쓱해지고, 그들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다. 나의 행복이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지도 모른 채 나는 내가 꽤 좋은 사람이라 여기기도 했다.


그런데 몇 년 뒤, 김형석의 <100세 철학자의 인생, 희망 이야기>를 읽고 그 모든 게 착각이라는 걸 알았다. 그가 말하길 아무리 재산을 모으고 세상에서 자랑스레 살았다 해도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산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인생의 반 밖에는 못 산 것이 된다고 했다. 우리가 이웃과 사회를 위해 무언인가를 남겨 줄 수 있을 때 나머지 절반 인생도 사는 것이라고 말이다.


나의 가족뿐 아니라 나의 이웃, 나아가 사회를 위해 작은 무엇이라도 남길 수 있는 삶을 살라는 이야기에서 나는 나의 실체를 발견했다. 즉 나는 인생의 반도 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가족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한 채로 타인을 위하는 '척'을 하며 살았던 것이다. 내가 진정 사회에 공헌을 한다는 마음으로 타인에게 베풀었다면 거기에서 서운함을 느낀다거나 상처받을 일은 없어야 한다. 나는 타인에게 맞춰 주며 상처받았고, 서운해했다. 그건 진정 베푸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나의 결핍을 그들에게서 갈구하며 매달리는 것일 뿐.


결국은 다시 나로 돌아와야 한다. 나를 먼저 돌볼 줄 알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타인에게서 인정받으려 하지 말고 스스로 나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잘한 건 잘했다고 칭찬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타인이 아닌 나의 가족에게 먼저 사랑을 줄 수 있다. 내 안에 사랑이 우리 가족에게 흘러가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회와 세상에도 흘러갈 것이다. 이 글을 쓰며 다짐한다. 절반이 아니라 꽉 찬 인생을 살아 보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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