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쓸 때 가장 주의할 점은 일기 같은 글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실제 책 쓰기를 하는 예비 작가님들이 어려워하던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물론 나도 그랬다. 우리는 매일 새로운 하루를 맞이한다. 내일 어떤 일을 할 것이고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예상하고 계획을 세워도 언제나 변수라는 게 생긴다. 그런 변수에서 우리는 글감을 찾을 수 있다.(꼭 변수가 아니더라도 반복되는 일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때도 글감은 생긴다.) 변수는 쉽게 말해 내가 생각지 못한 어떤 경험이다. 예를 들어 멀리 해외여행을 가는데 그날따라 비행기가 연착이 될 수 있다. 그럼 우리는 그로 인해 생경한 일들을 경험한다. 이 경험을 짧은 일기로 쓰면 이럴 것이다.
비행기가 엔진 고장으로 다섯 시간이나 연착이 된다고 했다. 항공사에서 사과의 뜻으로 인당 이만 원권의 상품권을 주었다. 우리는 상품권으로 밥을 사 먹었는데 돈이 조금 남아서 빵이랑 커피 한잔도 사 먹을 수 있었다. 시간이 남아서 공항 안에 있는 박물관도 구경하고 마술쇼도 구경했다. 처음 비행기 연착이라는 말을 듣고 화도 나고 속상했는데 밥을 든든히 먹고 시간도 알차게 보내 좋았다.
일기란 날마다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개인의 기록을 말한다. (국어사전 참고) 만약 독자가 위와 같은 글을 읽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쩌면 독자는 좀 더 디테일한 정보를 원할지 모른다.
"아~ 비행기가 연착되면 항공사에서 그런 배상을 해주는구나. 그런데 박물관은 어디에 있지? 마술쇼 행사시간은?"
비행기 연착 경험을 일기가 아닌 글로 쓰려면 비행기가 연착되었을 때 대처 방법, 연착 시간 동안 공항 내에서 할 수 있는 일 등의 정보를 주는 글로 쓰면 좋을 것이다.
아이가 다섯 살 무렵 늘 타던 자가용이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해 어린이 키즈 테마파크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우리가 가려는 키즈 테마파크는 서울 잠실 지하상가를 관통해 한참 걸어가야 나오는 곳에 있었다. 자가용을 이용하면 바로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과는 달리 대중교통을 이용하니 아이는 처음 보는 광경을 많이 맞이했다. 아이는 백화 점 앞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조각상들로 멋지게 장식한 분수 앞에서 넋을 잃었다. 나는 그런 아이를 돌려세워 사진 찍기에 바빴다. 이후 아이는 천정에서 각종 모양과 글씨를 만들어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고 또 넋을 잃었다. 나는 아이 이름을 부르며 사진 찍자고 돌아 서라고 했다. 몇 번을 불러도 돌아서지 않는 아이를 보며 문득 깨달았다. '아, 나는 지금 아이 입장이 아닌 내 입장만 생각하며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구나. 지금 아이 입장에서는 사진 찍는 것보다 신기한 광경을 바라보며 호기심을 충족하고 싶은 거구나.' 이날의 경험과 깨달음으로 나는 글 한 편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 글은 나의 책 <어느 날, 나에게 공황장애가 찾아왔습니다> 5부에 '나름대로가 아닌 너름대로'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이 일기 같지 않은 글이 된 이유는 아래와 같은 문단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엄마 학교>의 저자 서형숙은 "많은 사람이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도 문제가 되었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건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것, 내가 보기에 마땅한 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대방, '너'를 위주로 생각해야 한다. '나'가 중심인 '나름대로'가 아니라, '너'가 중심인 '너름대로'가 옳다."라고 했다. 내가 사진을 찍자고 했던 건 순전히 '나'중심의 생각이었다. 내가 아이의 사진을 찍고 싶은 '나름대로'의 생각 때문에 물줄기가 마냥 신기해 계속해서 보고 싶은 아이를 억지로 돌려세우려 한 것이다. 살아오면서 아이와 가족, 지인들에게 너를 위해서 한 일이라고 여긴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는 상대방에게서 서운해한 일이 떠올랐다.
대부분 글을 쓸 때 자신의 경험은 어찌어찌 잘 이어나간다. 그러나 경험으로 끝내면 일기 같은 글이 된다. 일기 같은 글을 읽고 독자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일기 같은 글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글을 쓰기에 앞서 이런 질문을 해보면 좋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독자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나는 그 경험을 통해서 무엇을 느끼고 깨달았는가?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해 줄 것인가?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줄 수 있을까?
나는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줄 것인가?
내 생각을 뒷받침 해줄 자료가 있는가?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고민해 보자. 나의 경험을 통해 얻은 인사이트를 깊이 고민해 보자. 고민의 깊이만큼 글의 깊이 또한 깊어진다. 독자는 깊이 있는 글에서 공감과 위로를 받고 깨달음을 얻으며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