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을 용기

나의 글에 사정없이 그어진 빨간 줄

by 허경심

<조커 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는 내가 읽은 동화책 중 손에 꼽히는 책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 샤를르는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을 새로 온 선생님 노엘과 함께 하게 되었다. 노엘 선생님은 나이가 많고 뚱뚱한 아저씨 같아서 아이들에게 첫인상에서는 빵점이었다. 그러나 반전이었다. 노엘 선생님은 그 누구보다 재미있고 기발하며 창의적이었다. 아이들은 금세 노엘 선생님을 사랑하게 되었다.


개학 첫날 노엘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카드를 나누어 주었다. 카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조커', '지각하고 싶을 때 쓰는 조커', '숙제를 하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조커', '방학 기간을 연장하고 싶을 때 쓰는 조커.' 등등. 노엘 선생님은 실제로 아이들이 조커 카드를 내밀 때마다 카드에 쓰여 있는 대로 다 들어주었다.


어느 날에는 아이들이 '떠들고 싶을 때 쓰는 조커'를 한꺼번에 내고 수업 시간에 크게 떠들었다. 이에 페레 교장 선생님은 경악했다. 그녀는 군대식 교육을 강요했고, 아이들 또한 복종해야 해롭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주말에는 홀로 집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이런 그녀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려는 노엘 선생님을 그녀는 끝끝내 받아 주지 않고 학교에서 쫓아낸다. 이런 결말을 보며 마치 <죽은 시인의 사회> 어린이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커 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는 아이들에게 살아가는 데 있어서 때론 조커 카드를 쓸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정해진 대로, 곧이곧대로, 흘러가는 대로가 아니라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라고 말이다. 학교에서 쫓겨나 은퇴한 날, 노엘 선생님은 곧장 쿠스쿠스 루아얄 식당으로 향한다. 이 식당은 일전에 노엘 선생님이 페레 교장 선생님을 초대 하려던 식당이다. 결국 페레 교장 선생님과 동행은 못했지만 그녀와는 다르게 노엘 선생님은 자신을 돌볼 여유를 가진 사람이었다.


내가 이 동화책을 손에 꼽는 이유는 조커 카드를 활용한 기발하고 창의적인 발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교장 선생님의 캐릭터 때문이기도 하다. 상대가 호의로 다가와도 자신의 생각에 갇혀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이 정한 틀만 고집하는 사람. 더 나은 삶으로 갈 수 있는 문을 본인이 막는 스타일. 동화책에 그림으로도 나와 있지만 그녀를 생각하면 왠지 늘 정장 스타일의 단정한 옷만 입고 아무리 발이 아파도 구두를 고집할 것 같은 사람이 떠오른다. 자기 우월감에 빠져 고개가 살짝 뒤로 젖혀진 모습도 연상된다. 바로 이런 사람. 나는 이런 사람을 실제로 만났다! 마치 동화책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너무나 똑같은 사람을!


수년 전 글쓰기 수업을 들을 때였다. 첫 시간에 수강생들은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다. 실사판 페레 교장선생님 S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책을 수십 년간 읽어 왔어요. 이제는 써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왔습니다."

그녀가 '이제는 써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를 발음할 때 나는 손 발이 오그라 들었다. 그녀의 억양과 말투가 마치 나는 이제 글을 쓸 능력을 다 갖춘 사람이다라고 들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덧붙여 말했다.

"제가 시를 몇 편 썼는데, 높이 계신 분이 정말 잘 썼다고 감탄을 하시더라고요."

높이 계신 분이라... 신을 말하는 것인가? 나는 잠시 헷갈렸는데 높이 계신 분은 다름 아닌 직급이 높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높이 계신 분이 글을 잘 쓰시나?


글쓰기 강의는 이론 수업으로 진행되었다. 사주 차 정도 진행되었을 때였을 것이다. 글쓰기 선생님은 이제 우리가 직접 글을 써 오기를 권했다. 아무리 글쓰기 강의를 들어도 쓰지 않으면 글쓰기 실력이 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이론 강의가 아니라 글쓰기를 해 오면 함께 합평 시간을 갖기로 했다. 우리는 수업 시작 전 인원수대로 프린트해온 자신의 글을 각자 한 장씩 나누어 가졌다. S는 시를 써 왔는데 그날 선생님께 많은 지적을 받았다. 기분이 나빴는지 표정 관리가 안 되는 것이 너무나 보였다. S는 이후 글을 써오지 않았다.


다음 시간에도 다다음 시간에도 우리는 자신이 가져온 프린트물을 서로 나누었다. 그날도 S의 책상에 프린트물을 올렸는데 S는 마치 내가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굉장히 못마땅한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수업이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 갑자기 S가 소리쳤다.

"글쓰기 강의 시간에는 강의를 해야지! 수업을 이런 식으로 진행해도 되는 겁니까?"

그녀는 선생님께 그간 쌓아둔 말을 한 보따리 쏘아붙이더니 교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쾅!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교실 안의 모두가 당황스러웠던 기억이다. 그녀를 보며 굉장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무언가를 받아들일 때 사람마다 이렇게도 차이가 날 수 있구나, 무언가를 배우려 할 때는 저런 마음가짐을 가지면 안 되겠구나, 나의 글에 사정없이 그어지는 빨간 줄을 보며 상처받을 용기를 가져야 하겠구나.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나의 글에 그어진 빨간 줄을 보고 상처받고 도망갈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빨간 줄을 없앨 수 있을까에 집중해야 한다. 내 글이 좀 더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려는 호의를 공격으로 받아들이면 절대 발전할 수 없다. 상처받을 용기를 가져야 한다.

만약 펠레 교장 선생님이 조금이라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노엘 선생님을 대했더라면 그녀는 여유롭고 행복한 삶으로 갈 수 있는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상처받을 용기가 없던 거였다. 노엘 선생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자신의 교육 철학이, 자신이 평생 옳다고 생각한 자신만의 틀이 깨지는 상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S 또한 상처받을 용기가 없었던 게 아닐까? 그녀가 지금도 글쓰기를 계속 이어가고 있을까 궁금하다.





이전 03화일기 같은 글이 되지 않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