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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뢰렉신 Jul 13. 2017

관능적으로 살아가기

묵은 욕망은 버리고 새 욕망으로 거듭나는 삶

인생이란 묘한거야.

한 때는 엄청나게 찬란하고
절대적으로 여겨지던 것이,

그걸 얻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버려도 좋다고 생각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혹은 바라보는 각도를 약간 달리하면 놀랄 만큼 빛이 바래 보이는 거야.

내 눈이 대체 뭘 보고 있었나 싶어서
어이가 없어져.

<무라카미 하루키, ‘여자없는 남자들’중에서>




그럴 때가 있다.

주변에 붙잡고 있는 모든 것들이,

어느 순간, 확~ 하고 헛되고,

허무하게 느껴질 때 말이다.


굉장히 친숙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굉장히 열정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그리고 완벽히 믿고 있다는 것들,


따지고 보면,

내 집착과 욕망에 사로잡혀 그 모든 것들을

내 주변에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것들이 진정한 나를 대변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것들을 통해 나를 완성하려 했을까?





나는 얻고 싶은 것이 좀 많은,

인생에 해보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은,

진한 인간 관계에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어찌보면 인간 관계에서는 나이브하고

어찌보면 내 삶에 대해서는

욕심이 돼지 같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일이든, 사람이든

그 대상에 열정을 보일 때는

앞뒤 안가리고 주변의 눈치 봄 없이

순진하게 질주하는 본능이 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동력은 딱 하나이다.


'지금'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


일이든 사람이든 '지금'이란 타이밍이

내 인생에서 최고의 가치를 만들어 줄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이나 나중에, 또는 신중하게 이런 거 없다.


그러다보니 실수가 생기기도 하고

감정적 앞서 나감이 더 큰 실망감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인건 성공이든 실패든,

그 사람의 마음을 얻든 못 얻든,

이미 내가 결정하고 진행한 것들에 대해서는

후회를 절대 안한다라는 것이다.


의욕적으로 시작한 일들이 잘 안풀리고

생각대로 결과가 안나왔을 때나,

정말 믿고 모든 걸 순수하게 챙겨줬던

사람에게 쌩깜과 배신을 당했을 때,


지금까지 들인 공은 그냥 경험이라 생각하고

실패의 결과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실망감을 준 사람은 다시는 안보면 된다.


특히 나는 '사람' 에 대해서

정말 모든 걸 내려놓고 최선을 다한 후,

상대의 열정이 나와 같지 않음을 느끼면

바로 감정과 생각을 차단하는

단박함을 가지고 있어 정말 다행이다.


미련이나 후회를 되새길 만큼 나는 고여있는

내 모습이 싫었다. 사람에 대한 실패감에 빠지지않게 바로 눈을 돌려 다른 사람으로 욕망의 재설정을 해버렸다.


그런 반면, 기대하는 사람에게

더 큰 무언가를 받고있다라는 생각이 들면

또 그걸 가만히 받고만 있지 않는다.

어떻게든 그 사람과 더 잘 될 수 있다면 
내 팔이라도 잘라줄 기세로 아낌없는 사랑과 신뢰, 그리고 무언가 깜짝 놀랄 선물을 준비했다.




앞서 인용했던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한 내용처럼

인생에 찬란한 뭔가를 갈구하다

시간이 지나고 관점이 바뀌어

그것이 허접하거나 하찮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이 추구하던 인생의 목표일 수도 있고,

함께하던 사람이 그 대상일 수도 있다.


절대적이라 여기던 그 대상이

사실 내 욕망이 끊임없이 만들어 낸

허상이란 것이 문득 느껴져 허무와 허탈의

파도 아래 한 순간 잠재워 버리기도 한다.


그 원인은 무엇 일까?


사람의 욕망이란 것은

단방향의 정성과 열정으로는 완성되기 힘들다.

미약하게나마 결과가 계속 드러나야하고

적당하게 간간히 피드백이 돌아오지 않는 이상,

갈구하는 동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 동력이 떨어질만한 시간적 흐름과

다른 것에 대한 관심이 시작 될 무렵.

추구하던 목표와 관심을 갖던 사람에 대한

씁쓸한 민낮을 마주하게 된다.


하던 일이 하찮고 가치없게 느껴지고

갈구하던 사람이 갑자기 못생기게 보이고

시시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욕망에 질주하던 두 다리가

각성의 임계점에 도달한 후 스스로 풀려버리는

인간이 드러낼 수 있는 보편적 본성이다.


스스로 그런 본성을 읽고 있다면

각성의 시점에서 자책감이 들기보다는

때가 왔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욕망의 줄기를 다른 곳에

대버리면 그뿐이다.


하찮아지고 빛이 바랜 목표나 사람은

그 자리에 놓아두고 돌아서면 된다.

어쩔 수 없다. 그러게 있을 때 잘하고

노력할 때 피드백이 왔어야 했다.

이것은 인지상정이기도 하고 상대적이기도 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동안 들인 열정과 노력은

써버렸다고해서 없어진 것이 아니다.


그만큼의 경험치와 임계점을 스스로

측정해냈으면 다음 목표와 다음 사람에게

고스란히 인계되어 이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도달해낼 수 있다라는 자신감으로 쓰면 된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어차피 인생에서 후회는 아무 쓸모없는 생각 낭비다.

인생이란 길은 돌아갈 수도, (죽음 외에는)멈출 수도 없다.

돌파의 고통이 있어야 번뇌에서 벗어 날 수 있다.

그걸 받아들이는 관성적 사고를 일깨워야한다.


지금의 불충분한 각성된 욕망을 버리고

새로운 희망적 욕망으로 다시 채우는 것

변심의 죄책감이나 끈기없음을 자책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보편적인 솔직한 삶의 자세이다


사람은

그렇게 살아가는거고

그렇게 삶이 숙성되어 가는 것이다.


까짓꺼

버리고 시작되는 욕망에 휘둘려

관능적으로 살아 보는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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