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뢰렉신 Jan 10. 2017

언제 들어도 좋은 말

뭐해요?

"딱 읽으시면 좋을 책이 있어요"


덜컹 거리는 퇴근 지하철에서 녀석은 나에게 책 한 권을 추천해주었고 빌려주마 했다. 이 녀석은 근 2년 동안 매 아침저녁으로 내가 앞으로 쓰고자 하는 글에 대 틈틈히 많이 들어주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글짓기 소스와 맥락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이 읽었던 책 중 하나가 내 글짓 소재를 잘 투영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며칠이 지났지만, 녀석은 책을 빌려줄 생각을 안 했다. 잊어버렸나? 난 조만간 글을 쓰러 조용한 시골에 내려갈 예정인데 그전에 뭔가 쥐꼬리만 한 영감을 주위에서 얻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읽으면 좋을 책' 이란 말에 호기심이 쏠려있었는데, 아침 출근길에 만났을 때 항상 빈 손이었고 내게 빌려줄 책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란 놈은 1. 재촉하지 않는다. 2. 눈치주지 않는다. 3. 추궁하지 않는다. 식의 완벽한 '당신 맘 내키는 대로 하세요. 저는 갈구하지 않습니다'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는 쎈 건방짐과 쎈 자존심으로 점철된 성격이었기에 그냥 빌려주기 싫은 부네 흥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었지만... 그놈의 '호기심'은 내 건방짐과 자존심을 한방에 무너뜨리는 유일한 약점이다. 뭔가에 호기심이 발동되면 집요하고 끈질기고 바닥을 기어서라도 그 호기심을 풀어내어야 직성이 풀린다.


"저... 빌려준다는 책은.. 왜.. 아직..?"


뭔가 기억하고 있었다. 뭔가 기다리고 있었다라고 말하는 게 무척 자존심이 상했지만(왕쪼잔), 퇴근길 지하철에서 헤어지기 직전 다른 이야기로 정신없게 만들다가 마지막에 슬쩍 또는 어렵게 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제목이나 지은이를 알았으면 내가 몰래 사서 읽어보았을 텐데 ;;; 그걸 몰랐기 때문에 녀석에게 빌려달라고 해야 했다.


여하튼 그렇게 어렵게(?) 다음날 출근 시 만나 책을 전달받았고 그날 저녁에 굉장한 집중력으로 다 읽어버렸다. 원래 주위가 산만하고 정신없는 성격인데 뭔가에 집중되면 무서울 정도로 정신일도 하사불성 하여 끝을 봐야 한다. 게다가 급한 성격 때문에 아주아주 빠르게 ;;;


내가 그렇게 구걸(ㅋ)해서 빌려본

책은 바로




이석원 님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2015년 作)'이다.




핑계 같지만 다른 사람 글을 잘 안 본다. 내 딴에는 타인의 글 읽기에 대한 트라우마 같은 것이 생겼는데, 오래전 SNS에 잘난척하며 철학적인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근데 그 글에 지인 녀석이 네가 올린 글 '누구'가 쓴 '어떠한' 책의 몇 페이지에 나오는 글과 똑같은데?라고 덧글을 올린 것이다. 나는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그런 글을 읽은 적도 없고 내가 순수하게 쓴 글이라고 정색하며 우겼다.


근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책을 찾아서 보니.. 헐.. 오래전 내가 읽었던 책이었다. 나는 완전히 놀랐다. 100% 내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어 쓴 대견한 글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읽어봐도 그 지인 녀석의 말처럼 문장이 비슷하고 내용도 똑같았다.


그때 잠깐 글 쓰는 거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버렸었다. 내 생각과 감성이라고 쓴 글이 내가 기억해내지 못하는 어떤 책이나 인터넷 글에서 인용하여 내 생각인양, 내 감성 인양 잘난척하며 쓰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정말 그렇다면 그건 정말 내입장에서 너무나 두려운 일이었다. 영혼을 빼앗겨 버린 느낌이랄까?


여하튼 나는 '필사'라고 하여 좋은 글들을 소리 내어 읽으며 손으로 직접 써보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 일을 겪고 나서 그것마저 관두고 말았다. 브런치를 시작하고서도 의식적으로 다른 작가들의 글을 안 읽었다. 내 관심 작가 숫자가 '0'인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음으로 해서 나도 모르게 그 사상과 정신이 내 생각에 포개어지는 것이 두려웠고, 또다시 내 글'표절'이라는 댓글을 듣고 싶지 않았다.



책을 읽는 다는 것은 내 머리 속에서 굉장한 영상 한편이 만들어 진다라는 것



활자로 전달되는 이야기는 독자의 머리 속에 영상적 느낌으로 펼쳐진다. 각자가 상상한 주연 배우들 얼굴과 목소리, 의상 그리고 각자가 생각한 배경과 주변 소품들이 어울어져서 말이다.


아마도 하나의 소설이나 이야기들을 독자마다 감독이 되어 실사 영화로 만들어 비교를 해본다면 굉장히 다채로운 영화의 모습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그만큼 '글'이란 것은 필자가 엮어내지만 독자의 성향과 융합되어 읽을 당시의 정서적, 심리적 환경으로 다른 의미와 다른 이야기로 전달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책의 주인공인 이석원님과 김정희님 두분의 실재적 외모와 성격과 달리 읽는이에 따라 그것이 다르게 부여되어 독자 각자의 머리속에서 재연이 될 것이다. 이 말은 곧 작가가 쓴 글을 독자가 완성지을 수 있다라는 그런 의미?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소리 내어 웃었다(현웃 터졌다) 그만큼 다음 페이지가 궁금할 정도로 흡입력이 있었고 가독성이 뛰어났다. 그리고 읽는 내내 감독이 되어 이석원 님 역할은 '정재영', 김정희 님 역할은 30대 초반일 때의 '전도연'의 모습과 목소리를 대입하면서 머리 속 영상을 그려가며 읽어 내려갔다.


나는 특히 소설을 읽을 때, 이렇게 나름대로 가상 캐스팅을 하여 씬과 컷 영상을 그리며 책을 읽어 내려간다. 이렇게 읽으면 뭔가 영화 한 편을 본 느낌도 들고 내 연상력을 키우는 재미도 쏠쏠했다.


여하튼 표지에 산문집(集)이라 쓰여있어 10가지 이상의 에피소드를 옴니버스 식으로 엮어 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읽어가는 내내 이쯤에서 이 에피소드가 끝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예상을 처절히 깨부숴가면서 하나의 이야기 플롯으로 밀고 나가 마무리가 지어졌다.


이 책의 내용은 픽션일까? 논픽션 일까?


'산문'이란 장르로 내세웠는데 뭔가 애매하게 소설보다는  본인의 경험 이야기를 고백 형태로 쓴 것일꺼라는 인상이 강했다. 그렇다면 실화를 기반으로 했을터인데 중간 중간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프라이버시는 모두 동의를 얻은 것일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들었다(뭐 이석원 님이 알아서 했겠지만 말이다) 그만큼 극사실적인 상황과 표현들이 많았다. 당사자들이 이 글을 읽었을 때,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어떤 기분이 들까? 자기의 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이렇게 까발려져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도 될까?


공익적인 내용이 아니라 굉장히 사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이거 100% 실재 내용을 적어 놓은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많았다. 이 감상평을 쓰기전 일부러 다른 사람들의 서평이나 이석원님의 글 쓴 후기를 안읽어봐서 어디까지가 실화이고 어디까지가 가상의 내용 또는 인물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만약 내가 이와 같은 스토리 플롯을 가진 글을 쓴다면 이렇게 적나라하게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를 써낼 수 있을까? 써도 될까? 어디까지 솔직히 써내려갈 수 있을까 등등 머리속이 복잡해 짐을 느꼈다.

 

이야기의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한 여자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내용이고 결과 또한 예상할 수 있는 단순함을 근거했지만 상황 상황마다 이석원 님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누구나 생각하고 공감해 낼 수 있는 내면의 목소리를 읽어내려 가는 게 재미있었다.


아 이런 상황에서 이런 생각과 고민, 그리고 결단을 하셨구나. 어라 이런건 나랑 좀 비슷한데? 그래 나라도 이렇게 했겠어 라든지. 생각과 사고의 보편적인 남 본성과 본능을 들킨거 같아 무릎을 탁치며 읽는 나를 낄낄거리게 만들었다.


그런데 솔직히 나는 이 책의 펼쳐지는 내용들과 등장인물들이 100% 실화일꺼야 라는 전제를 깔고 읽었기 때문에 더 흥미를 가지고 몰입해서 재밌게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것이 가상의 소설로 인지하고 읽었으면 재미가 좀 반감이 되었을 것 같다. 아무래도 픽션은 논픽션의 공감적 정서를 이길 수 없을 테니까.



어쨋든 나는 간파 당한거 같다.


오랜만에 다른 사람의 글에서 나와의 동질적 특성과 인기 있는 글은 이야기를 어떻게 서술해 나가는지 힌트를 얻어낸 거 같아 책을 덮고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책을 빌려준 그 녀석이 왜 이 책을 추천했는지, 왜 이 책의 주인공의 모습에서 나를 떠올렸는지 알 것 같다. 녀석은 내가 쓰려고 하는 글이 어떤건 지 알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형편없는 녀석 같으니라고ㅋ


사실, 이 책을 즐겁게 읽어가면서 나는 속으로 제발제발제발을 외치며 식은땀을 흘렸다.

내가 쓰려하는 그 스토리 플롯과 제발 다르기를 다르기를... 다행히 내가 구상 중인  내용과 비슷한 면이 있긴 하지만 확연히 다름을 느끼고 안도했다.


나는 아직 경험이 부족해 그걸 채우면서 조금씩 써내려가고 있긴 하지만 아직 급진적 글 내림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내 의지와 행동력이 충만하니 그럴싸한 녀석을 써내긴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좋은 표현, 좋은 글귀들이 상당히 많았다. 수사적 표현보다는 담백하고 직설적인(알기쉬운) 표현이 많아 더욱 이 사람은 보 사람들의 머리속에 마음속에 가물가물 떠올리는 그것을 정확히 쉽고 이해하기쉬운 문장으로 표현해주는구나. 그래서 가독성이 좋구나. 그래서 인기 있는 작품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 제목의 의도를 마지막 문단 간파했는데, 그 부분의 전달력이 너무 마음에 들어 나도 베껴본다.



"좋아해요"


(내겐) 언제 들어도 좋은말  :)


매거진의 이전글 심플하게 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