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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뢰렉신 Aug 20. 2019

커피보다 보이차

그렇게 넘어가버린 싱거운 사연


나는 왜 커피를 마실까?

정말 하루에 몇 잔의 커피를 마시는지 모르겠다.

출근해서 한잔, 점심 식사 후 한잔, 오후 회의 시간에 한잔… 누가 불러서 한잔... 다행히 저녁 6시 이후에는  밤에 잠이 안 올까 봐 커피 음용은 자제하고 있다.


출근길에 마주치는 커피 전문점은 줄잡아 10개가 넘고, 회사 근처에도 이런저런 커피 전문점이 4~5개 정도 포진해 있는 것 같다. 스타벅스나 커피 빈 같은 네임드 커피 전문점만 찾다가 점점 저렴한 커피 전문점을 찾기 시작했다. 하루에 2~3잔을 마시는 커피에 1만~2만 원씩 쓴다는 것은 좀 과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즐겨먹는 아메리카노의 맛은 쓰거나 시거나 떨떠름한 맛이다. 내가 촌스러운 것일지 모르지만 나는 커피를 맛있다는 생각으로 먹어본 적이 없다. 그냥 그 씁쓸한 맛을 지속적으로 먹다 보니 그 씁쓸한 맛의 자극에 대한 일종의 기억된 습관이 작용하여 내 하루의 반복된 일정에 맞게 그 쓴 물을 먹어야 한다라는 강박으로 마셨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는데, 커피를 마신다는 행위는 마치 내가 식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담배를 꼭 피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습관적인 패턴에 길들여진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나는 꼭 커피와 담배를 같이 피우는 습관까지 있었다 (지금은 담배를 끊었지만)


아침에 커피를 마셔야 잠이 깨고 정신이 각성이 된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아침 커피는 많은 사람들에게 필수처럼 되어버렸다. 언제부턴가 나도 아침에 커피를 마셔야 정신이 든 하루가 시작되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매일 몇 잔씩 먹어도 그놈의 쓴 맛은 질리지 않았고 달지 않아서인지 왠지 건강에 해롭지는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있는 음료였다.



더 나아가 커피가 취미가 되어 집에서 캡슐 커피 머신을 들여놓고 여러 가지 캡슐 커피를 호기심에 구입하여 마셔보기도 하고, 직접 다양한 품종의 원두를 직접 갈아 드립 커피를 내려 먹을 정도로 커피는 내 일상에서 꽤나 중요한 필수 생활품 및 취미의 한 부분이었다.


그런 커피에 대한 맹목적인 애착이 오랜 기간 이어져왔는데, 언젠가부터 이 캐주얼하고 패스트푸드 같은 쓴 음료에서 느끼지 못한 뭔가 정신과 마음을 힐링시켜주는 음료(?)를 만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차(茶)의 세계.


어느 처절히 흘러내리던 비 오는 저녁,

앨리스가 시계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에 빨려 들어가듯이 나는 이상한 기분에 어느 찻집에 홀린 듯 빨려 들어갔고, 그곳에서 '보이차'를 마시게 되었다. 그 날로부터 나는 보이차에 완전 푹 빠져버리게 되었다.


그 찻집을 나와서 간판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는데,

그 찻집의 이름은 '우차예관'이었다.



보이차(普洱茶)란 무엇인가?

한 때,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와 이상순이 아침마다 장기판(?) 같은 나무 판때기 위에서 찰흙 빛의 주전자에 담긴 차를 거름망에 걸러 먹는 장면이 종종 나왔는데, 그 차가 바로 '보이차'이다.

 

보이차란,               

운남성에서 생산된 대엽종의 찻잎을 쇄청 건조시킨 모차를 원료로 하여 발효시킨 산차(散茶), 혹은 긴압차(緊壓茶)로 정의하는데, 여기서 산차(散茶)는 찻잎을 뭉치지 않고, 우리가 흔히 보는 잎녹차의 찻잎 형태로 그냥 흩어놓은 차를 말하고, 긴압차(緊壓茶)는 찻잎을 공 모양이나 둥글고 납작한 빈대떡이나 도넛(?) 모양으로 딱딱하게 뭉쳐 놓은 차를 말한다.


                                 

긴압차와 산차


또한 제다(製茶) 방법에 따라 생차(生茶)와 숙차(熟茶)로 나눈다. 구분의 기준은 차를 완성할 당시에 발효가 되었느냐 되지 않았느냐에 달려 있으며, 발효시키지 않은 찻잎으로 만든 차가 생차, 이미 발효된 찻잎으로 만든 차가 숙차라고 정의한다.


숙차와 생차


보이차의 효능은 지방을 분해해주고 비만을 방지에 효과가 있다는 이유 때문에 한때 다이어트 차로서도 크게 주목을 받기도 했었다. 그래서 꾸준히 먹는 사람들도 많고 꾸준히 전파되고 있는 차 종류 중 하나이다.


내가 뭔가에 입문하게 되는 계기는 무심코, 또는 우연히 그 영역(?)의 심오함을 알게 되었을 때, 엄청난 전율과 호기심을 느끼어 감동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기어이 그 영역에 대한 탐험을 시작하게 된다. 그냥 단순히 '차(茶)' 종류의 하나였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빠져들지 않았을 것이다.


장비(?) 하나하나를 수집하는 재미... 가 좋다.


마치 무림의 문파와 같이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는 보이차의 종류들, 차 재배 과정부터 숙성을 거쳐 시음에 이르기까지 그 맥락의 다양함이 주는 즐거움. 그리고 보이차 음용 관련 더 좋은(?) 장비들로 업그레이드하려는 끊임없는 소비 욕구. 이 모든 것이 조합되어 보이차와 그 관련 물품들이 나의 카드 명세서의 지분을 엄청 차지하게 되는데...ㅠㅠ






: 번외

우차예관(雨茶艺馆) 이야기

  


나를 괴롭히는 것들 속에서

높게 올라간 빌딩 숲에서 정신없이 일과 주변 사람들에게 치였다. 울컥이며 올라오는 일상의 화(火)를 다스리지 못해 폭발시키고 후회하고, 폭발시키고 후회하는 반복을 하고 있다.  이젠 이렇게 사는 게 평범하다 싶을 정도이다.  


원래 이렇게까지 뾰족했던 사람이 아닌데.. 나 왜 이러지 하면서 자책하고 주변에 미안하고, 막 뭔가 뒤죽박죽 엉망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일상에 작은 우울감이 오기도 했다.


어느 비바람이 불던 퇴근길, 우산을 들고 버스 정류소에서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다가 문득,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내고 싶었다.


'안 되겠어 미쳐버릴 것만 같아'


이대로는 일상의 자잘한 화가 모여 모여 폭발해 나 자신이 흩어져 사라질 것만 같았다. 뭐가 좋을까? 무엇으로 내 정신과 마음을 다스려야 할까? 하염없이 고민에 빠져 있는 내게 버스 정류장 건너편의 작은 가게의 한문으로 쓰인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雨茶艺馆 (우차예관)


한자로 쓰여있는 그 간판을 보고 나는 뭔가에 홀린 듯, 횡단보도를 건너 그 가게 앞으로 다가갔다.



까만 우산 아래 주눅 들어 있는 비루한 내 모습이 그 가게 유리에 비치어 보였다. 그리고 유리 너머 가게 안 차분해 보이는 테이블과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 뭔가 모를 안정되어 보이는 분위기에 나는 무조건 이곳에 들어 가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접어들고 조심스레 그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까만 뿔테 안경을 쓴 어느 중년의 아저씨가 차분한 중저음의 목소리로 나를 맞이했다. 사방에는 온통 고가구 같은 진열장들이 있고 그곳에는 도자기 같은 것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테이블마다 바둑판(?) 같은 나무 상자가 놓여있고 그 위에 몇몇 고풍스러운 사기그릇과 주전자 같은 것들이 놓여있었다.



복고풍 테마의 카페인가?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는데, 그보다는 분명 뭔가를 마시면서 자리를 빌려 앉을 수 있는 공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 여기 카페인 가요?"


"음.. 카페랑 비슷하죠. 여긴 다양한 전통 차를 파는 차관입니다"


"아.. 뭐.. 뭐를 어떻게 주문해야 하죠?"


"차관에는 처음이시군요? 그럼 제 앞에 앉으세요. 우선 제가 따듯하게 우린 차 한잔 드릴게요"



찬 잔 속의 힐링

뿔테 안경의 아저씨는 자신을 차예사(茶睿士)라 소개를 했다.

나는 차예사란 생소한 단어가 궁금하여 구체적으로 무슨 역할(?)의 직업이냐고 물었다.

언뜻 떠오른 한자는 (茶차차)와 예(禮예절 )였기 때문에 차와 예절을 가르치는 직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도(茶道)를 가르쳐주는 사람 정도?


그 대답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뿔테 안경의 차예사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저는 한잔의 차(茶)로 마음을 씻어드리는 사람입니다.


마침 물이 끓어올라 뿔테 안경의 차예사 아저씨는 조심스레 티포트에 물을 붓고, 잠시 우린 차를 내 앞에 놓인 오얏나무 가지와 벚꽃잎이 그려진 찻잔에 따라주기 시작했다. 갈색빛의 찻물이 채워지고 음미를 권하는 손짓을 하고는 그제야 다음 말을 이어갔다.



"똑같은 차를 우려도, 어떻게 우리느냐에 따라 그 맛과 향의 차이가 천차만별입니다. 쓰고 떫어서 못 먹을 맛과 향을 내다가도, 향기롭고 기품 있는 맛과 향을 내기도 하죠. 분명 같은 찻잎으로 우려낸 것인데 말이죠.


사람도 마찬가지라 생각했습니다. 일생을 겪어내 가면서 어떻게 마음과 생각을 우려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의 향기와 기품이 틀려질 수가 있죠. 지금 쓰고 떫은 기분이시라면 마음을 우리는 방법을 달리 해보세.


차(茶)의 약리적 효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가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맑게 하여 자꾸 솟아오르는 뾰족하고 불쾌한 생각들을 다스려 준다는 것이지요.


함양되는 인성을 통해 자기 수양이 자연스레 이루어지니 이 작은 잔에 담긴 음료 한 잔은 어쩌면 누구보다 오랜 기간 사람들을 가르쳐온 스승이 아닐까 합니다"


조금은 기나긴 말을 마친 차예사가 두 번째 차를 우리기 위해 티포트에 물을 붓기 시작했다.



두 손에 움켜쥔 찻 잔에 담긴 차를 후루룩 내 몸속에 흘려보내니, 따스한 기운으로 퍼져 위축되어있던 내 몸과 마음을 팽창시켜주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 마음을 씻어주는 느낌인걸까? 나는 말 못할 평온함과 평화로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잘들어왔다라는 생각을 계속 머리 속으로 되뇌었다.


그제야 궁금한 것 한 가지가 떠올라 차예사에게 물었다.


"아.. 지금 제가 마시는 이 차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푸얼차(puer tea)
 즉, 보이차(普洱茶)입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삶의 기복'이라는 게 있다.


그 기복의 고점으로 치닫고 있는 시기에는 행복한 기분도 들고, 내가 잘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삶의 자신감으로 충만해있다. 이 때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기분에 흠뻑 빠져 누구와도 관계가 좋고, 누구와도 하하호호 즐거운 일상을 보내기 마련이다.


그러나 문제는 삶의 발란스가 저점으로 떨어지는 시기이다. 그게 현재 내게 처해진 상황 탓인지 아니면 내가 근래에 느끼는 기분 탓인지, 아니면 내 천성적인 성격에 또다시 문제가 생긴 건지. 주변의 상황이 불만 스럽고 주변의 사람들이 꼴뵈기 싫어진다. 그렇게 주변 모든게 마음에 안들면서 도통 뭔지 모를 다운된 기분으로 살아가는 구간이 어김없이 도래한다.  


그때 나는 움츠려 들고 동굴 속으로 들어가버려 엎드려 울고불고하다가 결국 이래선안돼 라는 삶의 자각을 느끼면서 어떻게든 이 시기를 이겨내야 한다라는 경이로운 '극뽁!' 버프 스킬을 발동시키고 만다.


이것도 내가 가지고 태어난 패시브 스킬(천성)이겠지. 다행히 나는 바닥에 닿으면 땅을 파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 반동으로 다시 몸부림쳐 솟구쳐오르는 재주가 있었다. 다만 그 모습이 좀 멋지지 않을 때도 있긴 하지만.


이번에는 생각지도 않게 '보이차'로 몸부림치게(?) 되면서 껄끄러웠던 내 주변의 널려져 있는 일상의 스트레스들을 나도 모르게 눈길 줄 틈 없이 자연스레 지나치게 되고 말았다.


결국 해당 삶의 구간의 시점을 스트레스가 아닌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눈길과 관심을 고정한 채 걸어 나간 탓이리라.

 

그래서 보이차를 공부하며, 마시며, 사들이며(?) 나는 기복의 저점을 통과해버리고 말았다.


그런 뭐 대단할거 없는 이유로 나의 보이차 사랑이 시작되었던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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