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작은 가게를 해보고 싶었어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은퇴 후에 나는 무엇을 하며 살까?라는 생각은 별로 안 했었다. 아.. 딱 하나 생각해 놓은 게 있긴 했다.
나는 은퇴하면 무조건 1년은 아무 생각 없이 여행 다니고 게임하고
맛집 찾아다니며 탱자탱자 놀 거야.
20년간 회사라는 정글 속에서
돈 버느라 고생한 나에게
1년이란 안식년은 줘야지. 안 그래?
라는 강렬한 희망은 늘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 후에는 내가 뭘 하고 있으면 되지?라는 생각은 사실 늘 바쁜 회사 업무와 일상에 매몰되어 깊게 또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었다. 아니 나는 이 직장을 천년만년 다닐 수 있다는 생각이 더 컸던 거 같다.
어느 날인가 행궁동에 집사람하고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날은 연차를 썼던 날인 거 같았고 아이 학교가 수원에 있었기 때문에 차로 데려다주고 둘이 가벼운 산책을 할 심산이었다. 꽤 아침 일찍이었던 거 같은데 행궁동 골목길을 걷다가 활짝 열린 작은 가게가 하나 보였다. 그 작은 가게 안에서 3명의 사람이 분주하게 뭔가를 치대고 두드리고 만들고 있었다. 어? 무슨 가게일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보니 열심히 밀가루 반죽을 치대고 모양을 만들고 오븐에 넣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 여기는 빵집이구나!
동네 베이커리도 보면 아침 일찍부터 빵을 만드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제빵사들이 이렇게 오픈된 공간에서 반죽하고 빵을 만드는 실재 모습은 처음 본 거 같았다. 유심히 지켜보니 3명이 그 좁은 공간에서 유기적으로 척척 동선이 꼬이지 않고 일하는 것을 보고 꽤나 신기해하며 지켜보다가 혹시 지금 빵과 커피를 먹을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니 가능하다 했다. 그래서 집사람과 나는 작은 테이블에 앉아 주문한 빵과 커피를 마시며 그들의 일하는 모습을 좀 더 지켜볼 수 있었다.
집사람이 워낙에 달지 않고 담백한 빵류를 좋아하기에 깜빠뉴와 치아바트 플레인을 주문해서 먹었는데, 사실 그날의 빵과 커피맛은 기억이 안 난다. 다만 그 작은 가게에서 열심히 일하는 그 제빵사들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멋있어 보였다. 뭔가... 아 나도 이런 작은 베이커리 카페 하나 해보고 싶다? 그런 막연한 생각이 난생처음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집사람에게 넌지시 마음을 떠보았다.
"나 나중에 은퇴하면 아까 그런 작은 베이커리 카페 차려보는 건 어떨까?"
사실.. 평소 장사나 사업에 대해 무척 부정적이었던 집사람이었기에 긍정적 대답은 단 0.0001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응 괜찮을 거 같아"
잉? 사실 그때 내 귀를 의심했다. 이 친구가 이걸 허락한다고?
늘 뭔가 나중에 내가 이런 거 해보면 어떨까? 하는 실없는 의지를 표명하면 그거 하지 마 안돼 너 미쳤니 하던 우리 집사람이... 이런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는 것에 난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와... 나중에 최소 빵집은 차려볼 수 있겠어!'
집사람이 허락했으니 일단 50%는 실행 가능하겠다는 생각에, 이때부터 막연하게 아 빵집은 나중에 해볼 수 있게다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바쁜 회사일과 일상에 빠져 그 생각은 금방 잊어버리고 말았다. 어차피 나는 정년까지 회사를 다닐 거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