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배우며 얻는 새로운 실패
사람은 종종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어떤 상황에 대해서 과장하거나 축소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오래전 10대에 나는 4~50대의 중년들을 보면, 삶이 저물어 가고있는 늙고 힘없는 사람들처럼 느껴졌었다. 그런 나이에 기운도 없고 생각도 흐려 무엇을 해낼 수 있을까? 여생이나 준비하고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즐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하고 부정적인 생각들을 했었다.
그러나 막상 내가 중년이 되어보니 그때 생각했던 무기력한 늙은 인간 사람이 아니더라. 오히려 삶에 완숙함이 배어있고 생각과 사고의 폭이 넓어져 정신적으로는 굉장히 젊고 스마트한 사람이라고 나 스스로를 인지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것이 중요한 거 같다. 내가 나 스스로를 어떻게 인지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방향과 크기가 정해져 버린 다는 것이다.
같은 일을 계속 반복해 왔던 사람들은 색다른 실패를 경험할 일이 거의 없다. 나는 오랜 기간 동안 게임을 만들어 왔다. 사실 비슷한 게임의 룰을 기반으로 해서 한두가지 특화된 시스템 접목과 새로운 그래픽 리소스를 통해 늘 다른 게임인냥 출시를 한다.
사실 누가 장르를 잘 선점하느냐 누가 좀 더 마케팅 비용을 많이 써서 유저들을 더 많이 안착시키느냐에 따라 거의 성패가 결정 나고, 게임 론칭 초기 정해진 기간 내 누적된 게임 유저의 잔존율과 구매율 데이터를 통해 우리는 이번에 론칭한 게임의 성공할 지, 실패할 지를 그리 늦지 않은 시간에 판단해 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전혀 다른 형태의 색다른 실패를 할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뒤늦게 프랑스 빵을 배우기 시작하고, 독일의 식육가공의 기술을 배우면서 나는 몇십 년 만에 드디어 색다른 실패들을 경험해 보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대체 얼마나 가슴 뛰고 설레는 실패의 연속이었는지, 마치 평생을 물속에서 수영만 해오던 물고기가 어느 날 작은 날개를 얻어 하늘을 날 수도 있다는 거대한 설레발을 품고 끊임없이 땅에 떨어지는 실패를 하면서도 바닥에 누워 하늘을 보며 하하 웃을 수 있는 희망찬 실패였다.
이러다 결국 하늘을 날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새로운 기회의 속삭임이 나를 매료시켰기 때문이다.
내가 제빵을 처음 시작한 동기가 된 사워도우빵을 배우고 1년 간 무려 60회 차 넘게 만들어보았다. 20kg짜리 밀가루를 3포대 넘게 썼고 매번 온도와 습도 그리고 공정 간의 시간과 상태 등에 대해 꼼꼼히 기록하면서 만들어보고 있지만, 내가 이쯤이면 됐어 할 정도로 만족하는 완벽한 한덩어리의 빵으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밀가루와 물에 대한 다양한 변수들과 내가 알지 못하는 미묘한 발효와 숙성의 차이를 내가 정확하게 파악 못할 뿐더러 왜 실패했는지에 대해 정확한 이유를 찾지 못해 나는 수없는 반복된 실패를 거듭하고 말았다. 어쩔 때는 나는 사워도우 만드는 것, 아니 빵을 만드는 자체에는 소질이 없는 걸까? 하는 한탄마저 나올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베태기(베이킹 권태기)가 오기도 했지만, 나는 사워도우빵이 너무 좋았고 너무 잘 만들고 싶었다. 내게 색다른 맛의 경험을 주었던 이 빵을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하여 내가 느꼈던 이 아름다운 경험을 주고 싶었다.
딱 이 한 가지의 목표를 가지고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으로 수없이 만들어 볼 준비가 되어있고 결국은 해내는 나의 모습을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의지와 목표 하나로 나는 계속 실행하고 도전하고 또 도전하였다.
그래 딱 100회 차까지 만들어보자
그 정도 만들어보면 결국 나도 모르게 맛있는, 멋있는 사워도우 빵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막연함이 잔뜩 끌어안고 무작정 100회 차까지 만들어가기 시작했고 다양한 시행착오를 거쳐 어디서 배우지 못했던 나만의 방법들이 차근차근 쌓여나갔다.
'그 어리석은 막연함이' 결국 성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딱 1년 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