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항상 기회가 버젓이 있다
"언니 신발 좀 신고 나갈게~"
요조 동생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란다.
그렇게 사진 실기 연습하러 나간 요조 동생은
사고로 죽고 말았다.
요조는 그때부터 삶의 자세가
바뀌었다고 한다.
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인생의
큰 트라우마가 된 듯하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지금 좋아하는 거,
지금 생각난 거, 지금 하고 싶은 거를 하며
살자' 란 틀이 마음속 깊숙이 새겨진 것 같다.
10여 년 전, 내 친한 친구가 죽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쭈욱 같이 놀던 친구인데,
백혈병에 걸려, 생떼 같은 자식도 하나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백혈병이라 처음 진단받은 날,
"그럼 나 죽는 거야?"
라고 천진이 묻던
친구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우리에겐 항상 기회가 버젓이 있다.
내 삶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기회.
내 생각을 이야기 할 수 있고,
내 생각대로 행동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망설인다.
그럴듯한 이유로 타인의 생각을 내가 상상해버리고
내 말과 행동을 그 타인에 빙의된 내 상상에 저당 잡혀,
'아...어쩔 수 없겠지?'라고 나를 꽁꽁 묶어버린다.
내가 나를 움직이는데 왜? 무엇을 망설여야 하는 것일까?
지금 생각났고 주체할 수 없는 꿈틀거림이
나를 재촉하면 주저 없이 나를 움직이는
내 즉흥적이고 돌발적 행동양식은,
죽음에 대한 깊은 고찰이 생겨났었던
어릴 적 교통사고 당시로 돌아가 보면
그 근거를 성찰해볼 수 있다.
달려오는 승용차에 깔렸을 때,
어린 나는 죽음을 느꼈었다.
'이게 죽는 거구나!'
정신이 아득해지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어지럽게 울려왔었다.
정신은 있는데, 내 육신은 나와 분리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그때 느꼈다.
내가 나를 조종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죽음'이구나.
죽음 이후의 내가, 내 육신을 조종하지 못한다면
살아있을 때 열심히 내 생각들을 육신을 통해
행동으로 움직여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 생각에 관대해졌고,
내 이상에 칭찬을 아끼지 않고,
내 판단에 후회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을 최선의 세계라 생각하면서 살아갔다.
때론, 즉흥적이고 돌발적이어서
위험하지 않나?라는 의심도 있었지만,
결국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라는
합리적 타협점을 찾아 삶의 방식을
완성해가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싫어하는 것은 안 할 거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안 만날 거야.'
'좋아하는 것은 누가 뭐래도 지금 꼭 할 거야.'
라는 개인주의적 사고가 더 침전되고,
퇴적 되어지면서부터는
더욱더 삶에 운신의 폭이 좁아진 건 사실이지만,
하루하루 후회하는 일이 줄어들고
지금이어야 돼.라는 신념과 확신을 가진
행동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지금
매 순간 삶의 의미를 찾기보다는
매 순간 나의 솔직함을 마주하여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지금
고독하지만, 자유롭다.
즉흥적이지만, 낭만적이다.
그러면 된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