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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희 Feb 08. 2024

토목을 예술로 말하다

토목이 문명이라는 예술작품을 만든다

 

나는 토목(Civilization)과 관련된 공공의 일을 17년째 해오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도로, 교량, 터널, 댐, 하천, 항만 등 그저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하는 시설물을 건설하고 관리하는 수준으로만 생각했다. 대학에서도 미분, 적분 등 수학적인 지식을 기본으로 각종 힘을 응용하는 역학 과목, 철근, 콘크리트, 흙과 같은 재료, 물을 관리하는 수자원, 상하수도 등 일반 사람이 느끼기에 매우 딱딱하고 재미가 없어 보였다. 그러다 몇 년 전 우연히 여자 화가와 이야기를 하다 예술의 어원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 혹시 예술(Art)의 어원이 그리스어로 Techne(Technology)라는 것을 아세요?


나는 ‘테크네’라는 그리스어를 처음 들었다. 테크네는 영어로 기술을 의미하는 Technology라는 것이다. 즉 예술이 기술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 아,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하고 이야기를 마쳤다.


최근에 들어 예술이 기술에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점점 공감이 가는 것이다. 12년간 그저 내 눈을 스쳐 지나간 토목시설물들에 대해서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토목시공기술사’라는 자격증을 취득하고도 토목을 이해하는 것이 어색하기만 했는데 이제 조금씩 감을 잡은 것이다.


그 이후 나는 예술이라는 것을 조금 더 느끼고 싶어서 시간만 되면 ‘예술의 전당’ 같은 예술작품이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갔다. 평소 관심이 없던 것을 혼자 하려니 어색하고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다 2017년 1월 ‘르 코르뷔지에’라는 건축설계자의 전시회를 보러 갔다. 나만 몰랐는지 그는 ‘현대 건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분이었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내가 생각하는 빌딩, 아파트, 단독주택 같은 건축설계가 아니었다. 그의 철학과 스토리가 녹아 있는 예술작품을 건축설계로 표한한 것이다.

      

그러면 “ 나는 과연 토목으로 무엇을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도로를 관리하고 있는 일이다. 그래서 국민들이 이용하는 도로는 예술작품이고 이를 편리하고 쾌적하게 유지관리 하는 나를 예술가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생각으로 인해 국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하는 도로, 교량, 댐, 하천, 도서관 등의 공공시설물을 예술작품으로 인식하고 있다.


토목으로 예술작품을 탄생시키는 과정은 이렇다. 기획을 하고 설계를 한 후 시공단계를 통하여 작품이 탄생한다. 그 이후에는 박물관에서 사람들을 오랫동안 유물이나 예술품을 관람할 수 있도록 전시하듯 잘 보존되고 사용할 수 있게 잘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토목이라는 것을 통하여 공공의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경우 잘못 그리면 캔버스의 도화지를 찢어내고 다시 그러면 되지만 공공의 예술작품은 한번 만들면 그 기능이 다 할 때까지 계속 사용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토목이 예술보다 더 어렵다고 말한 것이다.

 


교량의 경우를 예를 들어보자. 큰 강이 흐르는 시내 한 복판에 교량을 건설한다고 생각해 보자. 단순히 기능만을 고려하여 디자인하고 시공한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우선은 없었던 예술작품이기 때문에 차량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시민들은 그것에 대한 감동이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토목에서도 디자인이 중요하다. 최대한 미적인 부분과 상징성을 잘 표현하도록 디자인을 해야 한다. 그러면 그것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아가지 않아도 볼 수 있는 최고의 예술작품이 될 것이다. 그 주변에서 휴식을 취하고 사진도 찍어 S․N․S에 올리는 사람들도 생기게 된다. 그러다 보면 유명한 관광지가 되고 다른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할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면 그 지역의 식당이나 상가의 경제가 살아나서 행정기관의 세수도 늘어나게 된다. 지역사회에 엄청난 효과를 발생시키는 일이다.


예술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행위이다. 그러면 토목을 통한 공공의 예술로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준다면 엄청나게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이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인류 문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상적으로 들리는 것을 현실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직까지도 장애인, 노인, 어린이, 임산부 등의 노약자가 이용하는데 구조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시설물이 많고 법과 규정에 있어서 형식적으로 만든 시설물이 많다. 물론 이러한 한계는 더욱 발전하는 과정의 하나이다. 약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누구나 사용하는 공공의 시설물에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는 유니버설(Universal) 디자인 개념 인식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공공기관에서 이런 기법을 해당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도입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여 현실에 적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는 이런 상상을 해본다. 특정 시설물이 완성되어 준공식을 생각하면 테이프 커팅과 각 단체장님들의 인사말로 마무리되는 것이 보통의 일상이다. 생각해 보면 시설물을 건설하는 과정, 그 과정 속에 지역주민들과의 마찰, 해결한 노력 등등 스쳐 지나가는 상황들이 많다. 이러한 과정들을 최대한 영상으로 표현하여 준공식 오프닝에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그 과정을 이해하고 더욱 공감하며 감사한 마음이 들 것이다. 그런 후 가요, 클래식, 국악 등의 음악 공연을 하는 것이다. 꼭 콘서트홀에 가야지만 공연을 보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토목기술로 만들어진 공공시설물에서도 공연을 볼 수 있는 세상이 내가 꿈꾸는 세상이다.  

https://youtu.be/33pzTTQbmgI?si=FuxqJMiM0bFzZsX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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