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통보,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지난주 금요일, 회사 대표는 전 직원에게 중요한 메일을 보냈다. 월요일 오전에 아주 중요한 미팅이 예정되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업무나 조직 개편 등, 구조조정에 앞서 전달될 내용일 거라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월요일 아침, 평소에는 온라인으로 참석하던 직원들까지 이례적으로 일찍 출근해 회의실에 모였다. 그 분위기만으로도 우리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다. 이건 단순한 주간 미팅이 아니다.'
나는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일본이 지난주에 발표를 마쳤고, 아시아 사장의 미팅이 수요일로 예정되어 있었던 터라 한국은 월요일에 정리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런 의문이 생겼다.
'하필 구조조정이 예정된 월요일 아침, 왜 전체 미팅을 굳이 잡은 걸까?'
'같은 공간에 있는 상태에서 구조조정 통보를 받는다면, 그 자리에서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지?'
불편한 예감 속에 온라인으로 참석할까 망설였지만, 결국 월요일 아침 일찍 회사로 출근했다. 회의는 평소처럼 시작됐지만, 어딘가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회의가 길어지는 듯하던 그때 HR 매니저로부터 한 통의 온라인 미팅 일정 안내 메일이 왔다. 그 순간,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체념과 함께 묘한 기분이 밀려왔다.
이미 유럽, 미국, 아시아 지역에서는 구조조정이 시작됐고, 일본은 지난주에 발표를 마친 상태였다. 결국 내가 그 대상이라는 사실을 화면을 통해 확인하는 순간, 내 마음도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마음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실제로 닥치니 처음엔 한국에서는 나 혼자만 이렇게 된 게 아닐까 싶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다행히 나만의 일은 아니었다. 다른 직원도 통보를 받기 시작했고, '이제 한국도 시작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억울했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메일을 받아든 순간은 의외로 담담했다. 그리고 곧, 앞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고민을 회사에서 이어가기는 쉽지 않았다. 그 콜을 사무실에서 받는 건 차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외부 미팅이 있다고 둘러대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몇 시간 뒤, HR과의 콜이 이어졌다. 내 아시아 보스와 본사에서 출장을 나온 HR 매니저는 내가 구조조정 대상자임을 간단히 전달했고, 다음 날 대면 미팅 일정을 제안했다.
그리고 어제, 인사팀 매니저와 회사 대표를 만나 위로금과 퇴사 조건에 대한 협의를 진행했다. 마음을 준비했다고 되뇌었지만, 현실은 예상보다 훨씬 더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 애썼지만, 며칠 전부터 코와 입가에 뾰루지가 하나둘 올라오는 걸 보니, 내 몸은 이미 이 모든 상황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날 미팅에서는 그 외에도 앞으로의 절차와 남은 업무 처리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하지만 구조조정이 비밀리에 진행된다는 말과는 달리, 나와 다른 직원이 대상자라는 사실은 이미 사내에 퍼져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중요한 미팅'이라며 월요일 아침 전 직원을 한자리에 모은 대표의 방식이, 돌이켜보니 꽤 불편하게 느껴졌다. 구조조정이라는 민감한 사안을 전 직원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그렇게 처리한 방식에서는, 당사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R 매니저와 대표는 "직원들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니, 내용이 정리될 때까지는 평소처럼 업무를 하라"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미 대부분의 직원이 알고 있고, 그런 상황에서 업무를 계속하는 게 불편합니다. 예정된 공식 미팅이나 업무에는 더 이상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그는 정말 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누구에게 그런 얘기를 들었느냐”고 되물었다. 이미 본인이 말했던 내용을 다시 묻는 모습에 순간 당황스러워 웃음이 나왔다.
괘씸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든 감정을 지나고 나자 '이게 어쩌면 내게 주어진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희망이 조금씩 마음속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줄곧 올해 12월까지 근무한 후, 그토록 기다려왔던 육아휴직을 사용할 계획이었다. 어쩌면 이러한 계획 덕분에, 이번 구조조정이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도 다른 이들보다 마음의 동요가 덜했던 것 같다. 주변의 몇몇 선배들은 내게 멘탈이 강하다고 놀라워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원래 그렇게 멘탈이 강한 편은 아니다. 다만 오래전부터 마음 한편에 이런 생각을 품고 있었다. 언젠가는 이 치열한 경쟁의 쳇바퀴에서 잠시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어쩌면 이번 일은, 내가 애써 외면하고 미뤄왔던 '멈춤'의 순간을 예상보다 조금 일찍 맞이하게 된 것뿐인지도 모른다.
육아휴직을 하려던 계획이 조금 앞당겨졌을 뿐이라고 생각하니, 현재의 상황이 그리 절망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회사와의 협의만 잘 이루어진다면, 예상보다 큰 금액의 위로금을 받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현실적인 이점 덕분에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지만,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나 앞으로의 내 평판 같은 것들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지난 12년간의 직장 생활을 되짚어보면, 진심으로 편안하게 웃었던 날보다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냈던 순간들이 더 또렷하게 떠오른다. 업무 자체의 강도나 양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은 거의 없다. 오히려 쏟아지는 업무에 몰두하며 성취감을 느끼고, 그 속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즐거움을 발견했던 때가 더 많았다. 내가 진정으로 힘들어했던 것은, 대부분 예측 불가능하고 때로는 부조리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스트레스였다. 그럴 때마다 '가족', '커리어', '생계'라는 현실적인 족쇄는 나를 꼼짝없이 붙잡아 매었고, 나는 억지로 감정을 삼키며 버텨야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느낄 때쯤이면, 어김없이 좋은 이직 제안이 찾아왔다. 덕분에 나는 매번 연봉을 인상하며 회사를 옮길 수 있었고, 커리어 또한 꾸준히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다. 지난 몇 년간은 거의 매년 두 자릿수 이상, 많게는 50%에 가까운 연봉 상승을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몇 년간의 이직과 높아진 연봉은 오히려 나를 더 깊은 혼란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고, 글을 쓰기 시작했고, 술을 끊고, 책을 쓰고, 일상 속에서 여러 변화를 시도했다. 회사에서는 다양한 일을 경험했고, 서너 개의 회사를 거치며 더 넓은 세상을 봤다. 그러면서 서서히 알게 됐다. 남을 위한 삶도, 계속 떠도는 삶도 더는 내 방식이 아니라는걸. 돈을 더 많이 벌지 않더라도, 이제는 진짜 '나를 위한 준비'를 하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은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선명해지고, 더 강렬해졌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은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었고, 선뜻 방향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번 구조조정이라는 예상치 못한 사건을 겪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스스로 멈추지 못하니, 어쩌면 누군가가 대신 멈춰준 것은 아닐까?' 마치 누군가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넌 절대 스스로 멈추지 못하잖아. 내가 대신 멈춰줄게"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복잡했던 마음, 제자리를 찾지 못하던 감정들이 조금씩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멈춰 서는 것이 허락된 듯한 기분이 들자, 나는 이 멈춤을 처음으로 '내가 선택한 멈춤'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이 업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은 여전히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환경에 다시 적응하고 에너지를 쏟아부을 만큼의 의지도, 체력도 내게는 없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는 잠시 숨을 고르며,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려고 한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내 삶의 방향을 완전히 새롭게 틀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일지도 모른다.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선명한 답은 아직 없지만, 불안함 속에서도 이상하게 마음 한편에는 작은 설렘이 피어오른다.
부디 이 힘겨운 과정이 원만하게 마무리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그리고 앞으로의 내 삶은,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기준이 아닌, 오롯이 '나다운' 모습으로 조금은 더 단단하고, 조금은 더 가볍게 채워져 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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