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의 무덤에서 만난 하나님

by 일상리셋

작년 7월, 갑작스러운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떠난 뒤 어느덧 7개월째 백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사실 처음엔 자유로운 시간이 반가울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10여 년간 공들여 쌓아 온 커리어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기분을 견뎌야 했고, 마음과 정신에는 생각보다 깊은 상처가 남았다.


주변의 시선은 무거웠다. '성과가 나빠서, 일을 못 해서 저렇게 된 거 아닐까' 하는 자격지심이 나를 괴롭혔다. 아내와 아들에게 무능한 가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괴로웠고, "요즘 뭐 하느냐"는 평범한 안부에도 자신 있게 답하지 못했다. 돈은 떨어져 가고, 한국이 아닌 싱가포르 이주를 앞두고 현지 직장을 구해야 하는 막막함은 가끔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


항상 더 좋은 조건과 연봉을 쫓아 이직에 성공해 왔던 나였기에, 이런 무력함은 생경하고도 고통스럽다. 점점 혼자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깊은 고립감 속에서 나는 비로소 하나님을 일대일로 마주하기 시작했다.


이 광야 같은 시간 속에서 나는 부끄러운 과거의 나를 돌아본다. 참 오만했다. 직장인은 그저 '노예'일뿐이라 치부하며 일은 대충대충 해치우기 일쑤였고, 마음속은 상사와 동료, 회사에 대한 불만과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모든 일과 관계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리였음에도, 나는 그 안에서 단 한 번도 진심으로 감사하거나 기뻐하지 못했다.


특히 뼈아픈 것은 나의 이기심이다. 관계와 업무가 꼬일 때마다 나는 상황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하나님을 원망했다. 환경을 탓하고 부모님을 원망하며 마음속으로 수많은 죄를 지었다. 모든 것은 결국 내 욕심과 판단으로 내가 선택한 결과였음에도, 나는 그 책임을 늘 하나님께 떠넘겼다. 일이 잘 풀릴 때는 내 능력인 양 생색내며 입술로만 감사를 읊조렸고, 일이 틀어지면 어김없이 하나님을 원망하기 바빴던 나의 어리석음을 이제야 낱낱이 회개한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 시간 속에서 내게 새로운 마음을 주신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라"는 말씀이다.


매일 싱가포르 회사들에 이력서를 넣는다. 한국에 있는 외국인을 채용해 달라는 설득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고 피로하다. 하지만 이 답답한 기다림 속에서 나는 지난 10년의 커리어를 냉정하게 되돌아본다. 그 시간은 오로지 나를 위해, 내 생각대로 쌓아온 성벽이었다.


이제 앞으로의 10년, 20년은 완전히 다르게 일하고 싶다.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제는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 하듯' 일하려 한다. 직장 내의 모든 관계와 성과, 심지어 까다로운 고객을 상대하는 일까지도 주님께 하듯 마주한다면, 어떤 힘든 상황도 버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이번 구조조정은 내게 '어떻게 일을 대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준 처절한 수업이었다. 마음과 입술로 부정적인 것들을 쏟아내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도 깨달았다. 사실 나는 은연중에 "구조조정으로 돈이나 받고 나가고 싶다"는 말을 내뱉곤 했다. 나의 그 어리석은 말이 씨가 되었음을 깨달으며 깊이 회개한다.


삶이 벼랑 끝에 몰린 것 같아 점점 혼자가 되어가는 기분이었지만, 이 시간은 하나님과 오롯이 대화할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이다. 내 힘으로 하려던 고집을 꺾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된 것, 그것만으로도 이 고난의 이유는 충분하다.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기에, 나는 오늘도 내 손을 잡고 계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 낯선 싱가포르 땅에서도 내가 있을 곳을 예비하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오늘 내게 주어진 이 시간을 기쁨과 감사로 채워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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