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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간인 박씨 Dec 10. 2022

시골살이는 적성이다

시골살이_일장일단

현생을 사느라, 글을 잘 쓰지 못했지만 

끊임없이 미뤄두던 방학숙제처럼 글쓰기는 내 마음 한켠에 남아있었다.


혹시나 오랫동안 글을 못 올리면서 내가 시골살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골의 텃세를 떠나 도시로 돌아갔을 것이라도 추측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치만 여전히 나는 시골에 있고, 뿌리 정도는 어찌어찌 뻗어 내린 듯하다. 


시골에서 맞이하겠다던 다짐처럼 나의 서른은 시골에서 얼렁뚱땅 적응하느라 지나갔고

어느새 서른한 살의 마지막 한 지점을 지나고 있다.


인생은 언제나 계획대로만 되지 않고 또 예측하지 못했던 일들이 생겨나는 법


가족 세컨하우스 화단

일단, 삼고초려로 읍소해서 시골로 내려오시라고 설득했던 본가 가족들은 작년 8월 인접한 시골로 세컨하우스를 마련했다.


한번 올라갈 때마다 왕복 6~8시간이 걸리는 여정에 매번 본가에서는 피곤을 이기지 못한 채 긴긴 잠을 자고 내려오는 내가 안쓰럽기도 하고,


코로나19로 예정에 없던 엄마의 은퇴가 당겨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대부분의 시간을 세컨하우스에서 보내며 인생 2막을 즐기고 계신다. 바쁘다 바빠를 입에 달고 살 정도로 시골살이를 마음에 들어 하시는 걸 보면 이것인 유전인가.



게다가 나의 시골살이 메이트와는 올해 결혼을 했다.


2년 전에 썼던 글을 다시 보니 깊은 결혼에 대한 고민이 묻어있다.


나와 시골살이 메이트는 앞으로 과연 어떤 형태로 살아가게 될까? 

시골은 나의 생각을 변화시켜 결혼이라는 제도로 기꺼이 뛰어들게 할 변수가 될 수 있을까?


이렇게 제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본질적 의미를 찾다 결국 도달한 결혼은

생각보다(?) 나를 크게 변화시키지 않았다.

정안수를 대신한 식장

삶의 근원적인 부분을 뿌리째 뒤흔들어 놓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하기 전에도 후에도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실체 없는 공포로 지레 겁먹었던 것에 비해 일상은 몹시 평온하다.


정안수만 떠놓고 마을회관에서 식을 하려 했던 우리는 부모님의 역성(시골로 올 때도 무덤덤하던 양가 부모님들은 결혼식에 대해서는 확고하셨다)에 적당한 타협점으로 교외 레스토랑에서 가까운 사람들을 불러 야외 결혼식을 올렸다. 


 ※ 기회가 되면 식에 대해 말하고 싶기도 한데, 

당초 아주 작고 귀여웠던 계획은 생각보다 제대로 치러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도시에 잘 있던 가족들도 불러 모으고, 안 한다고 노래를 부르던 결혼도 하게 하고

시골은 낙원인가? _ 일장일단이 있다. 


청년인 내가 보기에 시골생활의 가장 큰 단점은

시골 텃세에 대한 인식, 또는 경제적인 문제, 인구의 유출 뭐 이런 것보다는


가장 큰 단점은 '두려움'에 있는 듯하다. 

바로 도태에 대한 두려움


도시에서 멀어지면서, 

문명에 도태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이 별안간 벼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례로 최근 오랜 친구의 집들이에 갔다가 

서울 신축 대단지 아파트 규모와 시설에 놀라버리고 하루정도 얼떨떨한 충격에 빠졌다. 

도시는 내가 떠난 지 불과 몇 년 만에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문물의 스펀지처럼 새로운 시스템을 빨아드리고 있는데 

이렇게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이 결국 나만이 제 자리에 머무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가.


단순히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말로는 형용되지 않는 한계


이것은 현실이다. 정작 도시에 있는 이들은 내부에 있기 때문에 체감하지 못할

그 회오리 같은 변화의 속도에, 외부에 머무르다 잠시 방문하는 나 같은 임시 방문객은 전율이 오른다. 


간혹 평화로운 주말 쇼핑을 하기 위해 특정 매장을 가거나,

문득 공연이 보고 싶어 지더라도 가능하지 않다.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수도권에만 있는 매장과 공연장은 미리 스케줄을 조정해 휴일을 빼고, 

여행처럼 시골을 벗어나야 가능한 일이다. 

즉흥적으로 가까이 손 닿는 가까운 거리에서, 

원하는 매장을 찾아가고 공연을 보러 버스에 오르는 것은 여기서는 불가능하다.


다행히 나와 시골살이 메이트는, 생각보다 그런 일상이 불편하지 않다.

앞서 말한 벼락같은 불안감이 찾아왔다가도 도시에서의 생활이 하루 이틀 길어지면 

어느새 공기가 버겁고 시골이 그리워 지기 때문이다. 


기가 빨려 말수가 줄고, 눈꺼풀이 무겁다가 고속도로가 도시의 건물들을 벗어나 

논밭과 산을 보여주면 그제야 겨우 생기가 돌아온다.


문명의 장점을 포기하고, 시골의 단점을 감수하면서도 나는 초록 생기를 택한다.


시골이 더 좋은 지, 도시가 더 좋은 지 비교 우위의 무제가 아니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타고난 적성의 문제다.


 시골의 삶이 행복한 이가 있고

 도시의 삶이 행복한 이가 있고. 


이 타고난 적성을 일찍이 찾아서 다행이라고 생각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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