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이었을지도 모를 선택
“저 해외로 유학 보내주세요!”
나는 중학생 시절부터 부모님께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지금 돌아보면, 가고 싶었던 나라가 분명히 정해져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곳에서 무엇을 이루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해외에서 유학을 하며 다양한 언어를 익히고, 더 많은 기회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사로잡혀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아버지에게 병이 생기면서 내 생각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나는 의과대학 진학을 목표로 삼았다. 고등학교 기숙사에 입주해 매일 자정까지 자습을 이어갔고, 치열하게 공부했다. 입학 후 처음 치렀던 중간고사에서 곤두박질쳤던 성적도 점차 올라갔다. 마치 꿈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등학교 3학년 가을, 9월 모의고사에서 종합 1.5등급에 가까운 성적을 받았다. 아버지께는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의과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조심스러운 자랑을 건넸다.
2016년 11월 4일 오후 세 시쯤, 교실에서 자습을 하고 있던 나에게 엄마로부터 한 통의 문자가 도착했다.
“지금 바로 XX병원으로 와.”
나는 그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이유를 묻지도 않은 채 학교를 뛰쳐나왔다. 설명할 수 없는 불안함을 안은 채 택시에 올라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병상에 누워 계신 아버지와, 슬픈 표정으로 그 곁에 서 계신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는 조용히 말씀하셨다.
“얼마 못 버티실 것 같아.”
그렇게 내가 병원에 도착한 지 두 시간쯤 지났을 때, 아버지는 끝내 아픔과 고통을 내려놓고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나의 꿈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일본 유학을 선택하던 순간을 떠올리면, 그 결정이 얼마나 큰 용기였는지는 이제야 조금 실감이 난다. 당시의 나는 확신도 없었고, 한국에서의 입시 실패라는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도망치듯 일본으로 향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구체적인 계획보다는,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고 증명해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에 의지한 선택이었다.
처음 일본에 도착했을 때 느낀 감정은 설렘보다는 낯섦에 가까웠다. 배운 적은 있었지만, 생활 속 일본어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편의점에서 주문하는 일부터 행정 서류를 처리하는 일, 짧은 대화 하나까지도 매번 긴장과 실수의 연속이었다.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유학’이라는 단어가 결코 낭만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불편함은 기준이 되었고, 두려움은 익숙함으로 바뀌었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나를 빠르게 성장시키기보다는, 서서히 단단하게 만들었다.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법,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속도로 버티는 법을 배웠다. 한국에 있었다면 굳이 마주하지 않아도 되었을 감정과 상황들이 이곳에서는 나를 피할 수 없이 단련시켰다.
돌이켜보면 일본 유학은 성공을 보장하는 선택은 아니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선택이 나에게 도망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패해도 환경 탓을 하기 어려웠고, 잘해도 온전히 내 몫이었다. 그래서 이 선택은 더욱 값지게 남았다.
지금도 가끔 묻는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더 편했을까.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이렇게 답할 수 있다. 일본 유학은 나를 특별하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나를 나답게 살아가게 만든 결정이었다고.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도, 그 선택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