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차이와 보이지 않는 벽 사이에서
일본에 넘어온 후 시간이 지나자, 겉으로는 꽤 자연스러워졌다.
전철 노선도 익숙해졌고, 행정 절차도 혼자 처리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크게 긴장하지 않게 되었다. 처음 일본에 왔을 때의 어색함은 많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이곳에 ‘적응’ 한 걸까, 아니면 아직도 ‘익숙해지는 중’일까.
외국인으로 산다는 건 거창한 차별을 매일 경험하는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절하고, 시스템은 공정하게 작동한다. 그래서 오히려 이 질문은 더 조용하게 다가온다.
작은 순간들 속에서.
“일본어 정말 잘하시네요.”
“문화 차이 힘들지 않으세요?”
대부분은 호의에서 나온 말이라는 걸 안다. 실제로 나를 배려해서 건네는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여러 번 듣다 보면 문득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언제쯤 ‘외국인인데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회사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
회의 자리에서 의견을 낼 때면, 나는 한 번 더 정리해서 말한다. 표현이 어색하지는 않은지, 뉘앙스가 잘 전달되는지 스스로 점검한다. 말이 끝난 뒤에도 잠깐 긴장이 남는다.
이 긴장은 능력의 부족 때문이라기보다는, ‘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의식하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에 가깝다.
혹시라도 실수가 곧 “역시 외국인이라서”라는 평가로 연결되지는 않을지, 괜한 걱정을 하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알고 있다.
그 생각 역시 내 안에서 만들어낸 불안일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동료들은 나를 팀원으로 대하고, 일의 결과로 평가한다. 큰 차별을 경험한 적은 없다. 그럼에도 가끔 느껴지는 작은 거리감은, 어쩌면 서로 다른 배경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간격일지도 모른다.
같은 교육과정을 거치고, 같은 드라마를 보고 자라고, 같은 사회적 사건을 공유하며 형성된 공통의 기억.
나는 그 출발선이 다르다. 그 차이는 노력으로 좁힐 수는 있어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처음에는 그 차이를 줄이기 위해 애썼다.
발음을 더 교정하고, 표현을 더 현지화하고, 업무 메일의 뉘앙스를 더 세심하게 다듬었다. 회의 전에는 관련 자료를 몇 번이고 읽으며 혹시 모를 오해의 여지를 줄이려 했다.
지금도 그 노력은 계속하고 있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더 이상 ‘완전히 같아지려고’ 애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외국인으로 산다는 건 어쩌면, 완전히 내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배경을 가진 채로 그 자리를 지키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일본에서 자랐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 회사의 일원이다.
두 사실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요즘 나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어차피 외국인이라면, 그 자리에서 최고가 되자.
‘외국인치고는 잘한다’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이 분야에서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
그래서 나는 더 준비한다.
업무에 필요한 숫자를 정확히 이해하고, 시장 흐름을 공부하고, 회의에서는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근거를 갖춘 제안을 하려고 한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정받기 위해서다.
외국인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안에서 어떤 태도로 일할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가끔은 여전히 작은 벽을 느낀다.
완전히 투명하지는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막 같은 것.
다만 이제는 그것을 부정하거나 과장하지 않는다. 벽이 있다고 해서 내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그 경계 위에 서 있었기 때문에 배운 것들도 있다.
두 문화를 비교하며 볼 수 있는 시각,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한 번 더 질문하는 습관, 다름을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생긴 사고의 유연함.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쉽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공평하다고만 말하고 싶지도 않다.
이곳에서 나는 분명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성장의 방향은, 누군가의 기준에 맞춰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방식으로 전문성을 쌓아가는 쪽에 가깝다.
지금의 나는 완벽한 내부자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 이 자리에서 책임을 맡고, 결과를 내고, 팀의 일부로 일하고 있다.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
그것은 벽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그 벽 앞에서 어떤 태도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오늘도 그 자리에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내 몫을 가장 잘 해내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