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으로 일본 취업에 도전했다

by 레실

“왜 일본에서 일하고 싶으신가요?”


취업활동을 하며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다. 기업마다 표현은 달랐지만 결국 묻는 건 하나였다. 왜 굳이 일본인가. 왜 한국이 아닌가. 당신은 이곳에서 무엇을 하려는가.

처음에는 모범 답안을 준비했다. 일본 시장의 성장 가능성, 유학을 통해 배운 점, 양국을 잇는 가교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 말로 하면 그럴듯했다. 하지만 같은 질문을 열 번째쯤 받았을 때, 나는 깨달았다. 이 질문은 지식이나 준비성보다도 태도를 보고 있다는 것을. 내가 이 사회에서 오래 일할 사람인지, 아니면 잠시 스쳐 지나갈 사람인지 확인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일본에서 대학을 다녔다. 유학을 결심했을 때만 해도 취업까지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저 다른 언어로 생각해보고 싶었고, 다른 문화 속에서 나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졸업이 가까워지자 선택은 현실이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가 안정적인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일본에서 취업이라는 또 다른 도전을 할 것인가.

나는 남기로 했다. 그 선택이 나를 얼마나 자주 흔들어 놓을지 모른 채.


취업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나는 100곳이 넘는 기업에 지원했다. 설명회 일정이 겹치면 아침에는 오사카, 오후에는 교토로 이동했다. 검은 리쿠르트 슈트를 입고 같은 지하철을 타는 학생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 모두가 비슷해 보이면서도 나만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외국인이었다. 그 사실은 이력서의 한 줄로도 충분히 드러났다.


자기소개서를 쓰는 시간은 길고 고독했다. 일본어로 나를 설명한다는 건 단순히 번역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험을 일본 기업의 가치관에 맞춰 재구성해야 했다. 직설적인 표현은 줄이고, 팀워크와 배려를 강조했다. 문장 끝의 뉘앙스 하나에도 신경을 썼다. ‘〜したいです’와 ‘〜したいと考えております’ 사이에서 몇 분씩 고민했다. 그렇게 완성한 문장을 제출 버튼과 함께 보내고 나면, 잠시 공허함이 밀려왔다.

메일함에 도착한 불합격 통지는 생각보다 담담했다. 정중했고, 형식적이었다. 하지만 화면을 닫고 나면 마음은 전혀 담담하지 않았다. 특히 1차 면접까지 갔다가 떨어졌을 때는 더 그랬다. 면접관의 표정, 고개를 끄덕이던 순간, 마지막에 웃으며 인사하던 장면이 계속 떠올랐다. ‘잘 본 것 같았는데’라는 생각은 언제나 나를 더 흔들어 놓았다.


어느 날은 이런 질문을 받았다. “외국인으로서 일본 기업에서 일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까요?” 겉으로는 걱정해주는 말처럼 들렸지만, 나는 그 안에 또 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고 느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 문화 차이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 차이를 이해하고 배우는 과정 자체가 저를 성장시켰다고.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으로는 ‘내가 증명해야 할 건 아직도 많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최종 면접에서 떨어진 날은 아직도 기억난다. 집에 돌아오는 길, 전철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이 유난히 작아 보였다. 합격에 가까워졌다는 기대만큼 실망도 컸다. 그날은 노트북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 날, 다시 열었다. 멈추는 순간 정말 끝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취업활동을 하며 점점 조심스러워졌다.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했고, 웃는 타이밍까지 계산했다. 동시에 집요해졌다. 기업의 중기 경영 계획을 읽고, 최근 실적 발표 자료를 정리했다. OB 방문에서는 “왜 이 회사에 남으셨나요?”라는 질문을 꼭 던졌다. 그들의 답변 속에서 내가 들어갈 자리를 상상했다.

결국 15곳에서 합격을 받았다. 결과만 보면 충분히 감사한 숫자였다. 하지만 합격 전화를 받고도 나는 쉽게 안도하지 못했다. 기쁨 뒤에 곧바로 찾아온 건 책임감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도전하는 학생’이 아니라 ‘성과를 내야 하는 직원’이 된다. 그리고 나는 외국인이다. 이 사실은 나를 자주 긴장시켰다.


돌이켜보면 취업활동은 나를 시험하는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왜 일본인가”라는 질문에 수십 번 답하는 동안, 나는 점점 나 자신의 이유를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나는 단순히 일본 기업에 들어가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두 문화 사이를 이해하는 사람으로 일하고 싶었다. 경계를 넘는 경험을 경력으로 이어가고 싶었다.


100번이 넘는 지원과 15번의 최종합격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이곳에서 일하겠다고 선택한 흔적이고, 포기하지 않았던 시간의 증거다. 취업활동은 나를 작게 만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깊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며 나는 깨달았다. 선택받기 위해 애쓰던 순간들이 결국은 나 스스로를 선택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이 시간들은 어쩌면 나를 가장 단단하게 만든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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