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하루가 조용히 흘러간다.
큰 소리도 없고, 누가 화를 내는 일도 거의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퇴근할 즈음이면 늘 피곤하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오늘 하루 뭐가 힘들었는지 곰곰이 떠올려 봐도
딱 집어 말할 수 있는 장면은 없다.
그저 계속해서 참고, 맞추고, 스스로를 누른 하루였을 뿐이다.
일본 직장생활이 고된 이유는
업무량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힘든 건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 문화다.
회의에서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큰 반대도, 날카로운 질문도 없다.
그래서 결정된 줄 알았던 일들이
며칠 뒤 아무렇지 않게 뒤집힌다.
“그건 그렇게까지 확정된 건 아니었어요.”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정해진 걸까 생각하게 된다.
칭찬도, 지적도 조심스럽다.
그래서 내가 잘하고 있는지 늘 불안하다.
문제가 생겨도
“조금 아쉽네요”
“다음엔 더 신경 써주세요”
같은 말로 포장된다.
그 말의 온도를 정확히 읽지 못하면
괜히 혼자 더 긴장하고,
괜히 혼자 더 자책하게 된다.
외국인으로 일하다 보면
이 고됨은 조금 더 진해진다.
회의에서 설명은 종종 생략된다.
“이건 다들 아는 이야기라서요.”
라는 말과 함께.
하지만 그 ‘다들’에는
가끔 내가 빠져 있다.
묻자니 흐름을 끊는 것 같고
안 묻자니 모르는 사람이 된다.
결국 집에 와서 다시 자료를 찾아보고,
혼자서 빈칸을 메운다.
가장 힘든 순간은
실수를 했을 때다.
“왜 몰랐어요?”
라는 질문을 들으면
설명받지 못했다는 사실보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한 박자 늦게 이해한 것 같다는 자책이 먼저 든다.
괜히 더 조심하게 되고
괜히 더 완벽하려 애쓰게 된다.
실수 하나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외국인이라서’로 해석될까 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이곳에서 버티고 있다.
일본 회사는 느리지만
시스템은 안정적이고
그 안정감 속에서
나를 돌아볼 여유를 준다.
그래서 나는
퇴근 후 글을 쓰고
주말엔 부업을 준비하고
조용히 다음 단계를 생각한다.
회사 안에서의 나만이 아니라
회사 밖의 나를
조금씩 키워가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만약 일본에서 일하며
이유 없이 지쳐 있다면
스스로에게 너무 냉정해지지 않았으면 한다.
말하지 않아서 괜찮아 보일 뿐,
이곳의 직장생활은
충분히 고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고됨을 느끼는 당신은
약한 게 아니라
그만큼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