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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항시인 Jul 26. 2024

나라가 날다! 한국엔 세종대왕, 프랑스엔 앙리 대왕

프랑스의 성군 앙리 4세 이야기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의 중요성 알고는 있었지만 요즘은 뼈에 사무치게 체험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온 나라가 혁명적인 영향을...! 그런 의미에서 "왕"에 대해 써봅다. 악하거나 무능력한 왕들 사이에서 보석같이 빛나는 , 나라에 날개를 달아 훨훨 날게 한, 하늘이 내린 왕의 이야기~


우리에게 성군 원탑 세종대왕이 계시듯 프랑스 역사 에도  대왕님이 계시니, 프랑스에서 가장 존경받는 왕 앙리 4세 (Henry IV)입니다.  정치, 군사, 경제, 민생, 외교 다방면으로 유능했던 왕이며 낭트칙령을 선포해 평화와 번영의 국가 전성기를 열고, 루이00세로 이어지는 프랑스 절대왕정 부르봉 왕조의 초석을 닦은 왕이에요. 파리엔 앙리 대왕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센강 퐁네프 다리 끝에 있는 앙리4세의 동상

"앙리 4"는  프랑스 학부모들의 로망이기도  이름! 프랑스의 통 있는 최고 명문고 이름이 "앙리 4세 고등학교" (Lycee de Henri IV)니다. 파리 5구에 위치한 이 학교 학군의 주택 가격은 매우 비싸고, 입학을 위한 인사청탁과 위장 전입이 난무한데요. 장 폴 샤르트르부터 이마뉴엘 마크롱 까지 프랑스에서 한가닥 하는 인물의 다수가 H4 출신이라 합니다.

앙리4세 고등학교.. 프랑스에도 학군. 명문고. 치열한 입시 경쟁이 있음

 프랑스 사람들의 존경과 추앙을 받는 왕 앙리 4세의 파란 만장한 삶을 소개합니다~.


프랑스 남부 지역 나바르의 개신교 왕자였던 헨리케는 신 구교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던 프랑스에서 카톨릭과 개신교의 대화합을 이루자는 카트린 메디치 왕비의 제안으로 카톨릭 왕녀와 결혼하게 됩니다. 노틀담 대성당에서의 결혼식을 위해 남부 위그노(개신교도) 지도자들은 모두 파리로 모였고 결혼식 날 저녁 위그노와 카톨릭들은 함께 큰 축하연을 즐깁니다.

생제르망 록세후아 성당. 이 성당의 종소리와 함께 학살이 시작

그러나 그다음 날 새벽 1572년 8월 24일. 카톨릭에 의한 개신교 대학살이 일어나 남부에서 결혼식 하객 으로 파리에 올라온 위그노가 전부 죽임을 당합니다. 파리에서만 이날 3천 명이 살해당해 센강이 그 피로 잠시 붉게 물들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바로 성 바톨로뮤 축일의 대학살입니다. 이 여파로 나라 전역에 위그노 학살이 번지면서 몇 달간 5만 명 이상의 위그노들이 죽었습니다.

프랑수아 뒤부아,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1572-1584년 사이, 호두나무에 유채, 93.5×154.1cm, Musée cantonal de Beaux-Arts de

젊은 위그노 왕자인 헨리케는 이후 천신만고 격변의 정치사 속에서 살아남아 앙리 3세의 죽음으로 왕실의 대가 끊기자  왕위를 물려받게 됐습니다. 그러나 개신교왕자가 카톨릭국 프랑스의 왕이 될 수 없다 해서 노틀담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거부했지요, 헨리케는 "카톨릭으로 개종하겠다!" 선언하여 파리 근교  샤르트르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치르고 앙리 4세로 등극합니다. (그는 정말 개종을 한 것일까요..? 왕이 되기 한 대의 앞에서 연기를 한 것일까요? 평생 개신교와 카톨릭 사이에서 모호한 입장을 취했던 그가 인간이 나눈 종교 분파 보다는 '사랑'이라는 교리의 본질에 집중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게 왕위에 오른 헨리케가 앙리 4세. 그는 정치 군사 외교, 전면에서 능력을 발휘하며 나라를 안정 시키고,  위그노의 신앙적 자유를 인정하는 낭트 칙령을 선포하여 오랜 신구교 갈등을 종식 시킵니다.  평화의 시대가 열려서 위그노들이 자유롭게 상공업 활동을  하자 새로운 산업들이 육성되어 왕실재정 상태가 크게 개선됩니다. 앙리4세는 농민의 세금을 줄이는 대신 귀족에게 세금을 부과하였고, 캐나다 퀘벡 식민지를 개척하는 등 전반적으로 나라를 발전 시켜 국가 전성기를 이끌어 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업적을 위그노 재상인 쉴리와 함께 이루었고, 유럽 대표 카톨릭 가문인 합스 부르크와 늘 대립했기에 그를 여전히 위그노 왕이라 믿은 한 카톨릭 광신도에 의해 57세에 암살당하고 맙니다.


 그의 사후에 아내인 마리 메디치가 섭정을 하며 절대 권력을 휘둘렀지요. (여자를 좋아해 많은 정부를 두었앙리 4세를 부인이 제거했다, 로마 카톨릭에서 암살했다는 등 여러 음모설이 있지만 암살의 배후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사후 낭트 칙령은 폐지되고 프랑스는 다시 위그노를 대대적으로 박해하고 죽이는 카톨릭 국가로 돌아갑니다.

앙리 4세 초상화.

프랑스 역사에서 딱 두 명인 ' 대왕' 칭호까지 받은 왕, 앙리 4세. "선한 왕"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그의 애민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건축물이 센강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퐁네프 다리입니다. 앙리 4세 시절 센강의 다리에는 집들이 빼곡하게 있어 환기가 잘 안 되었고, 마차와 사람들이 어지럽게 얽혀 통행했기 때문에 마차에 치여 죽는 서민들이 늘 있었다 합니다. 앙리 4세는 퐁네프를 집이 없는 다리로 만들 것을 지시했고, 최초로 보행도로를 만들어 보행자와 마차를 분리합니다.

앙리4세때 완공된 퐁네프 다리

"신이 허락하신다면, 짐은 왕국의 모든 국민들로 하여금 일요일이면 닭고기를 먹게 하겠다."

이는 국민을 부유하게 만들고자 했던 앙리 4세의 마음이 담긴 유명한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신이 허락하신다면" 이라는 표현이 울림을 주어요. "다 왕인 내가 한거라고!" 라며 치적 과시에 경도 되지 않은 신 앞에서의 겸손함이 드러납니다. 이 말은, 그의 치세 말기에 진짜로 실현되어서 지금까지도 프랑스에선 주말에는 닭고기 먹는 것이 전통 입니다. 프랑스를 상징하는 동물이 닭이 될만큼, 전 국민 1주 1 닭 먹이기의 꿈을 이룬 선왕!

세종대왕은 "밥은 백성의 하늘이다"라고 하셨데요. 앙리와 세종백성들 배고프지 않게 먹이고 싶어 했던 그 마음이, 대왕으로 남은 비결이였나 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앙리 4세 같은 선하고 지혜로우며 능력 있는 지도자가 간절합니다. 자기 권력을 휘두르며 특권을 누리고, 자기 배만 불리는 지도자가 아닌, 국민들 밥 먹고 살 수 있게 노력하는 최고지도자. 그런 리더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다음에 치킨 시키실 땐 앙리 4세를 떠올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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