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수년간 살다 보니 '여기에 연고 만들고 싶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매력적인 도시라서, 파리지앵으로 자란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고, '여기 내 집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하는 '욕심'이 솟아났지요. 그만큼 파리는 전 세계 사람들의 로망이자 욕망의 대상이 되는 마성의 도시입니다.
눈호강 가능한 Musee de Nissime Comondo 코몽도 박물관
18세기에도 파리를 사랑하고, 욕망하며 이곳으로 이주해 파리지앵으로 살고 싶어 했던 한 부유한 가문이 있었습니다. 대단한 부를 누리며 살았던이 금융거부유태인 가정은 루브르 박물관에 많은 그림을 기증할 만큼 파리를 사랑했지만 파리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 가정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몽소 공원에서 파리 찐 부잣집의 생활상을 구경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뮤지움, Musee de Nissime Comondo를 소개합니다.
예루살렘 출신 유대인 은행가 가문인 Comondo는 터키 이스탄불에서 은행을 설립하여 많은 부를 축척한 뒤 18 세기에 파리로 이주합니다. 그 집안의 아들이자 부유한 은행가, 예술품 수집가였던 Moïse de Camondo는 유대인 출신인 명문가의 딸 Irène Cahen d'Anvers와 결혼합니다. Irene라는 인물의 초상화는 우리 모두가 한 번쯤 봤는데, 그녀가 바로 어린 시절 르누아르가 초상화를 그렸던 인물입니다. 르누아르의 유명한 '파랑 리본의 소녀'가 바로 Irene!
부모는 이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 르누아르를 멸시했데요. 그도 그럴 것이 얼굴보다 머리칼만 강조했으니까요.
마리 앙투아네트와 프랑스 왕가를 동경했던 모세 코몽도는 앙투아네트의 궁전이었던 트리아농을 본뜬 주택을 파리에 지어 그 안을 진귀한 가구들로 채웠습니다. 예술 작품과 가구부터 그릇들까지 놀라운 심미안을 가진 그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어린 시절의 사고로 그는 한쪽눈이 실명이었데요.
파리부유한 유태인 가문 남녀의 결혼. 두 살 터울로 태어난 아들과 딸.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하고 10년 만에 깨져버립니다. 이레인이 임시직으로 채용한 이태리 출신 마구간 관리인과 눈이 맞은 것.불륜은 저지른 그녀는 남편과 이혼하고 이태리 남자와재혼하여 아이들을 두고 떠납니다. (얼마나 멋졌길래 남편도 자식도 다 버리고 부잣집 마님이 집에서 일하던 일꾼을 따라 나선걸까요...?일면 이레인의 용기도 대단!)코몽도씨는 자녀들을 맡아 키우며 재혼하지 않고 홀로 쭉 살았다고 해요.
코몽도씨의 응접실이자 서재
다정했던 오누이 ㅡ 니심과 베아트릭스(코몽도씨의 자녀)
집안의 큰 슬픔은 자녀들이 장성한 뒤 찾아옵니다.사랑했던 아들 니심 코몽도는 프랑스 공군으로 입대하여 25세에 1차 대전에서 작전 중전사하고 맙니다.아들 니심에게가업을 물려주길 간절히 원했던 모세는 니심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아 은행을 닫고사업을 정리해 버렸습니다. 집안을 돌보는 집사 한 명과 그 큰 저택에서 평생 외롭게 살던 그는말년에 "이 집을 아들이 죽은 날의 상태 그대로 보존해 달라"는 유언과 함께 아들의 이름을 딴 Nissim Comondo Musée로 저택을 파리시에 기증했습니다.남은 재산은 유대인과 결혼하여 두 자녀를 키우고 있는 딸 베아트릭스에게 상속했지요.
말년의 모세 코몽도
코몽도 저택의 만찬장
그로부터 10년 뒤, 딸 베아트릭스의 가족들은 (남편과 두 아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에 끌려가서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코몽도 가문의 자녀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자, 남은 유산은 친모인 Irene가 받습니다. 그녀는 일치감치(?) 이혼하여 이탈리아 남편의 성으로 바꾸면서 기독교로 개종했기 때문에 유대인임을 들키지 않았고 나치 시절 남프랑스로 몸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파란 리본의 소녀는 91세까지 편안한 삶을 살다가 파리에서 운명합니다. (결과적으로...그 상간남과의 결혼이 그녀를 살린 거네요.)
모든 가구와 소품에 번호가 붙어있어요. 그림들까지도 그 자리에 그대로 두라는 코몽도씨의 유언에 따라 1917년의 그 상태가 유지되고 있어요.
'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 나오는 궁전처럼 코몽도 저택은 1917년 10시 10분에 시간이 멈추어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저택을 가득 채운 모든 찬란하고 진귀한 물건들은 사랑하는 아들이 죽던 그날 그 시간의 상태로 지금까지 그 자리에 있습니다.
10시 10분에 멈춘 시계. 왕족이나 로열티를 상징하는 시간이래요.
코몽도 박물관에서, 아내의 배신과 아들의 죽음을 온몸으로 겪으며 외롭게 살아간 모세 코몽도, 프랑스를 사랑하여 프랑스 공군에 자원 입대해 용맹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니심 코몽도의 삶의 흔적을 마주하다 보면, '엄청난 재산도 불행을 막아줄 수 없었구나' 싶고, 삶이란 무엇이며, 가정의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여러 씁쓸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파리를 사랑했던 코몽도 가문.그들은 파리에 푸르고 아름다운 몽소공원과 19세기 프랑스 장식 예술의 화려한 보고인 뮤지엄을 안겨주고 슬픈 이야기로만 남았습니다.
앙투아네트의 소품과 보바리 부인의 가구들.. 아름다운 이 저택을 파리시에 남기고 역사속으로 사라진 코몽도 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