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는 앞으로 뭐 먹고 살게 될까

10대와 40대의 진로탐색기

by 책다람쥐

| 진로의 날이 싫은 중학생 |

일 년에 한두 번쯤 머쓱해지는 시간. 외부 강사와 함께 교실에 있는 시간이다. 그날은 하루 종일 진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날이었고, 각 교실로 진로 강사님이 들어오셨다. 1교시에 들어간 5반에서는 '자기 이해'를 주제로 수업이 이루어졌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섞어가며 아이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강사님의 노련함 덕분인지, 1교시 특유의 비활성화(?) 상태 때문인지 돌발 행동을 보이는 학생 없이 한 시간이 잘 지나갔다. 2교시에는 9반에 들어갔는데 5반보다는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떠드는 학생들에게 눈짓을 했다. 잠깐 멈추는 듯하더니 이내 소리를 낮추어 다시 속닥거린다. 마치 '잡담은 계속 해야겠으나, 선생님이 주의를 주니 소리는 낮출게요' 정도로 선심을 쓰는 격이랄까. 앞에서 수업하는 강사님께 방해가 될까 봐 그 이상의 뭔가를 하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그 학생의 소곤거리는 소리를 덮어버리고도 남을, 화난 볼펜 소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지금 화가 났다'는 해석이 가능한 상태의 학생이었다.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고서 좀 전에 나누어준 활동지를 찢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볼펜으로 긁고 있었다. 가장 뒷자리에 앉은 학생이라 교실 뒤에 서 있던 내게 그 소리가 더 크게 들렸는지도 모른다. 살며시 학생에게 다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잘 안 되는 게 있어? 좀 도와줄까?"

"없어요"

"그럼, 뭐 화나는 일 있어?"

"오늘 하루 종일 이런 거 하는 거 너무 싫어요! 되고 싶은 거 없다고요! 쓸 것도 없는데, 이런 거 왜 자꾸 시키는지 모르겠어요. 아, 짜증 나게..."


너무 솔직한 대답에 잠깐 머뭇하긴 했지만, 뭔가 물어봤을 때 '몰라요', '그냥요'만 반복하며 숨 쉴 때마다 쌍시옷 소리를 내는 학생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화가 난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고맙기까지 했다. 중학교 교사가 만날 수 있는 학생들 중 굳이 분류하자면 유순한 편에 속하는 학생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생활을 시작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1학년. 딱히 되고 싶은 것도 없는데 활동지를 채우려니 막막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하루 종일 그와 관련된 수업이 있을 예정이라니 짜증도 났겠지. 학생의 답답함이 이해되었다.

"그래, 아직 하고 싶은 분야를 찾지 못해서 막막한 기분이구나. 이해가 된다. 그래도 1교시에 했던 내용 참고해서 조금이라도 호감이 가는 분야를 적어보면 어떨까?"

활동지를 긁어대던 볼펜을 멈추고 가만히 내 말을 듣고 있는 학생의 옆모습이 밤톨 같았다.



| 우리집에 있는 초등학생의 상황 |

밤톨 같았던 그 학생은 올해 2학년이 되었고, 나와 한솥밥을 먹는 딸아이는 6학년이 되었다. 깨어있는 시간의 절반을 놀이터에서 보내던 4학년 때와는 달리 5학년이 되면서부터는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의 중요성을 조금은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덕분에 5학년부터는 '잔소리'와 '대화'의 경계에 서서 아슬아슬하게 '대화'의 분량을 조금 더 뽑아내고 있다.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엄마 학교에는 커서 하고 싶은 게 없다는 애들도 많아. 너희반은 어때?"

"우리반에 그런 애는 없는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저번에 선생님이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 손들어보세요' 했을 때 아무도 손 안 들었어."

"에이~ 그건 그냥 손만 안 들었을 수도 있는 거잖아."

"아니야, '어른 되면 하루 종일 게임만 하고 싶어요' 하는 애도 포함하면 하고 싶은 거 전부 다 있어."

순간, '대화'에서 '잔소리' 쪽으로 급커브를 틀 뻔했다.


자유학기 업무를 몇 년간 맡았었다. 모든 학교 업무가 그렇듯, 하고 싶어서 하는 업무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자유학기 도입 초기, 관련 공문에서 정말 자주 볼 수 있었던 표현은 '꿈과 끼'였다. '꿈과 끼'를 찾는다는 자유학기의 도입 취지는 이해하지만 쏟아지는 '꿈과 끼'의 압박 속에서 정말 질식할 뻔했다. 어떤 체험 활동을 통해 '꿈과 끼'가 찾아진다면야 업무를 추진하는 입장에서도 뿌듯할 텐데, 다수의 중1을 대상으로 하는 체험에는 너무 많은 한계가 있었다. 교사들조차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하는 시간도 있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관련 연수는 충분히 들었지만, 아직 자유학기제를 잘 몰라서 이렇게 불온한(?) 생각을 하나 싶어 '자유학기제'가 제목에 들어간 책은 모두 찾아서 읽어봤다. (과목별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연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원론적인 이야기나 자유학기 수업의 모범사례를 담은 책이 있었지만 내가 궁금한 부분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나는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제(Transition Year), 덴마크의 에프터스콜레(Efterskole), 스웨덴의 프라우(PRAO)가 학생들에게 주는 영향과 자유학기제가 학생들에게 주는 영향 사이에 공통점이 존재하는지가 궁금했다.

하고 싶은 게 없는데 진로 탐색 활동을 시켜서 짜증이 나는 우리 학교 학생, '어른 되면 하루 종일 게임만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던 딸아이 학교의 학생에게 자유학기제는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 꿈을 가지는 것에도 노력이 필요할까 |

딸아이와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이렇게 물어봤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당연히 노력이 필요하겠지. 그런데, 꿈을 가지는 것에도 노력이 필요할까?"

아이와 함께 하고 싶은 활동을 위한 밑밥 깔기였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슬쩍슬쩍 흘렸던 말을, 안 듣는 척하면서도 다 듣고 있었던 것인지 딸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가 그랬잖아.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고. 아무것도 안 하면서 어떻게 꿈을 가질 수 있겠어?"


이 말은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테다. 40대인 나도 아직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잘 모르니 말이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뀔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학생들과 함께 있는 것이 좋아서 일요일 저녁이면 월요일 아침을 기다렸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때가 구석기시대처럼 까마득하다. '어른 되면 하루 종일 게임만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아이와 '퇴직하고 하루 종일 책만 읽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내가 비슷하게 느껴진다면 지나친 걸까.


'꿈은 명사가 아닌 동사다', '꿈은 직업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와 같은 말을 왜 모르랴. 동시에 아이가 커서 뭐 먹고 살게 될지, 내가 학교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이른 퇴직을 하게 되면 뭐 먹고 살게 될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고 싶은 게 없다는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을 하며 읽어온 '진로 지도 관련' 책이 책장에 쌓여있다. '쳇, 뻔한 소리!'를 읊조리며 읽던 책을 내팽개치고 '진로 지도'와 전혀 관련이 없는 다른 책을 읽다가도 '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밑줄을 치곤 했다. 뻔한 소리와 밑줄을 오가며, 딸아이와 내가 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를 고민했다.


딸아이와 이야기를 하던 중 우리반 아이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네가 지금 여러 과목을 들으며 공부하는 것은 여러 구슬을 만드는 것과 비슷해. 나중에 어떤 목걸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네가 만들어놓은 구슬을 조합해서 목걸이를 만들게 되는 거지."

그렇다면 내가 가진 구슬은? 내가 가진 구슬로 새로운 목걸이를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너무 뻔한 구슬 밖에 없는데? 새로운 구슬을 채워넣고 싶다면 어떤 구슬이 좋을까?

평소에는 읽지 않던 분야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세상에 어떤 구슬이 존재하는지 조금 더 알고 싶었다. 다양한 일에 관련된 영상을 딸아이와 함께 봤다. 책과 영상을 통한 간접 경험 외 직접 경험이 가능한 범위를 고민해 보았다.


한동안 나의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던 이곳 브런치에, 지금부터는 한 집에 사는 10대와 40대가 앞으로 뭐 먹고 살지를 고민하며 새로운 구슬 만들기를 해나가는 여정을 기록해두려 한다.



00brendan-church-pKeF6Tt3c08-unsplash.jpg Photo by Brendan Church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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