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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다람쥐 Oct 17. 2021

책 20권을 넣은 캐리어를 끌고 호텔로 간 까닭은?

우리 둘만의 은밀한 독서캠프

"엄마, 사춘기가 뭐야?"


딸아이 입에서 이 질문이 나왔을 때, 내 손에 당혹감 탐지기가 있었다면? 만약 거짓말 탐지기와 비슷한 원리로 작동하는 당혹감 탐지기라는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여 그 순간 자율신경계의 변화를 감지해버렸다면? 아마도 번쩍이는 불빛과 함께 요란한 소리를 냈겠지. 휴, 정말 다행이다. 그런 물건을 집에 들이지 않은 덕분에 통제할 수 없는 땀 분비량과 상관없이,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할 수 있... 도록 시도는 해볼 수 있으니 말이다.


사춘기 아이들로 가득한 직장(중학교)을 다닌다는 이유로 사춘기라는 단어에 남다른 애정(?)이 있긴 하다. 그렇다고 해서 아홉 살 아이가 동화책을 읽다가 무심코 던진 질문에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는 듯 사춘기의 정의, 특징, 신체적 변화, 사춘기 뇌 발달의 특이점, 생애 주기상의 사춘기, 사춘기를 바람직하게 보내는 방법 등을 읊어댈 수는 없다. 사춘기 연구에 한 평생을 바친 학자가 자신의 연구를 집대성한 논문을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다. 최대한 간결하게 대답해야 한다. 


동시에, 최대한 가치중립적으로 대답할 필요도 있다. 사춘기 학생들과 지내온 20년 동안 켜켜이 쌓인 감정이 대답 속에 섞여 들어서는 안 된다. 내 표정과 목소리 톤에서 무언가(?)를 느낀 아이가 사춘기를 무시무시한 괴물 이름으로 여기거나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영화 제목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곤란하다. 반대로, 감동적인 성장을 이룩한 몇몇 학생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나를 본다면 사춘기를 오해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최대한 간결하고 가치중립적인 대답이 도대체 뭐냔 말이다. 이럴 때는 참고문헌이 필요하다. 아이가 보고 있던 동화책을 향해 목을 쭉 뺐다. 

"사춘기? 여기 그림 위에 잘 설명되어 있네.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시기."

역시, 동화책의 힘은 위대했다.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시기라니, 내가 본 사춘기에 대한 설명 중 가장 아홉 살 친화적이었다. 2차 성징의 발현 따위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 표현이다. 외워둬야지.



"자기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도 있어?"


아이가 물었다. 자기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도 있냐고. 내겐 외워두고 싶은 멋진 표현이었지만 우리 집에 살고 있는 아홉 살 어린이에게는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싶었나 보다. 우리 집 아홉 살 수준도 잘 모르면서 아홉 살 친화적 운운을 하다니. 나의 헛다리 짚기는 언제 어디서나 이렇게 빛을 발한다. 그래, 내가 헛다리는 좀 짚을지언정 부연 설명이 필요한 상황에서 그냥 넘어가는 사람은 아니지. 흠흠, 목을 가다듬으며 부연 설명에 시동을 거는 나를 보며 아이가 황급히 말했다.

"어? 이제 놀이터 갈 시간이네?" 

엄마가 자세를 고쳐 앉는 걸로 봐서 생각보다 설명이 길어질 수도 있다고 판단한 아이는 신속한 대사 처리를 통해 놀이터 도착 시각 지연이라는 엄청난 위기를 모면했다. 놀이터를 향한 그녀의 진심은 익히 알고 있는 바, 나도 순순히 운동화를 신는 수밖에.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자기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도 있어? 나는 000인데!'라고 당당하게 자기 이름을 말하는 아홉 살 아이가 열다섯 살에는 자기를 어떻게 설명하게 될지. 그리고 나는 과연 딸아이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지. 앞으로 아이의 생각 주머니는 수시로 업데이트될 텐데, 버전 업그레이드를 놓친 내가 한참 지난 갱신 날짜를 부여잡고 '내가 알던 내 딸이 아니야'를 신파조로 말하게 되진 않을지.




아이를 알기 위해 필요한 것은 대화다. 나는 아이와 대화하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이 닦았어?', '가방 챙겼어?' 등 구두口頭 체크리스트가 대화로 위장하기 위해 호시탐탐 내 혀끝을 맴돌았지만, 그 녀석을 대화로 승격시켜줄 순 없었다. 내가 아이에게 건네는 말 중 구두 체크리스트를 빼면? 실없는 소리가 조금 남긴 했다. 하지만 이걸로 나의 로망을 실현할 수 있을까? 대화 가능한 엄마가 되고 싶다는 로망을?


그래서 아이가 읽는 책을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아이와 같은 책을 읽다 보면 실없는 소리를 하다가도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대화가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서. 그렇게 몇 년간, 내 책 사이에 아이 책도 조금씩 끼워가며 읽어왔다. 책 읽기의 즐거움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껴지는 시기에는 '독서 캠프'에도 참여하면서 말이다.



"우리, 독서 캠프 갈래?"


독서 캠프? 구립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캠프인가? 아니면 시교육청 행사? 아니다. 이 독서 캠프의 주최 측은 나다. 


생일 케이크에 꽂히는 초의 개수가 많아짐에 따라 아이의 세계는 확장되었다. 그 속에서 책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았다. 책 보다 재미있는 영상과 디지털 기기가 기세를 떨쳤기 때문이다. 나 역시 문제가 많았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볼 때는 신경 쓰이지 않던 집안일이 책을 읽는 순간에는 엄청난 방해꾼 역할을 했다. 책장을 넘기다가 밀린 빨래가 떠오르고, 겨우 집중을 좀 하는가 싶으면 바닥에 쌓인 먼지가 '청소부터 하는 게 어때?'하고 말을 걸어왔다. 그래서 내가 주최 측이 되어 독서캠프를 만들어버렸다. 

독서 캠프 주최 측에서 배부한 실천기록장 - "책과 나 사이, 방해받지 않는 그 시간의 즐거움!"


눈을 돌려도 해야 할 집안일이 보이지 않는 곳이 캠프 장소가 되어야만 했다. 여행지가 아닌 우리 지역의 호텔을 난생처음으로 예약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아이는 친구의 문자 메시지와 아이패드의 유혹으로부터, 나는 스마트폰과 집안일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나 책에 몰입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이 캠프의 기획 의도다. 주최 측에서는 타이머도 준비했다. 타이머가 알려주는 한 시간 동안 서로 이야기도 하지 않기로 했다. 당연히 스마트폰도 꺼둔다. 한 시간이 지나면 간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간식 타임을 마치면 다시 한 시간을 시작한다. 


힘든 훈련이 아니라 다음 독서 캠프가 기다려지는 경험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다행히 내 바람은 이루어졌다.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라기보다 가져간 간식이 맛있었고, 같이 뒹굴거린 시간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단 두 명이 참여한 독서 캠프. 

체크아웃 시간이 가까워지자 캠프 참여자 둘 중 어려 보이는 참여자가 나이 많은 참여자(아마도 주최 측)에게 이렇게 물었다.


"우리, 다음 독서 캠프에는 무슨 간식 가지고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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