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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다람쥐 Oct 15. 2021

너도 중학생이 된다고? 정말?

#1

서른 명 남짓한 중학생의 정수리와 손을 45분 동안 뚫어지게 쳐다보는 일.

내 직장에서는 그 일을 '시험감독'이라 부른다.


중간고사였나, 기말고사였나.

한 학생이 열심히 문제를 푼 뒤, 시험지에 표시해둔 답을 답안지(OMR 카드)로 옮기려는 순간이었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시험지 아래 깔려있던 답안지가 시험지 위로 올라왔다. 컴퓨터용 수성 사인펜이 제법 빠른 속도로 움직였고, OMR 카드의 이곳저곳이 짤막한 검은 선으로 장식되었다.


사인펜을 쥐고 있는 손 위로는 교복 소매가 보인다. 이상하다. 이 광경을 어제 본 것 같다. 어제라고? 오늘이 시험 첫날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 본 광경이다. 어제도 나는 내 시야를 꽉 채운 사인펜, 손, 소매를 보고 있었다. 아, 맞다. 어제 내가 보고 있던 소매에는 공룡 그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소매 아래로 보이던 손은 오늘 보고 있는 손보다 훨씬 작고 통통했다.


영화에서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기 위해 쓰는 장면이 있지 않은가. 소품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데, 아역 배우가 성인 배우로 스르륵 바뀌는 장면. 사인펜이라는 소품을 응시하다 보니 어제 본 장면과 지금 보고 있는 장면이 스르륵 겹쳐진 것이다. 교복을 입고 사인펜을 쥔 중학생의 손 클로즈업 장면이 공룡 내복을 입고 사인펜을 쥔 유치원생 딸아이의 손 클로즈업 장면으로 말이다.



#2

한번 겹쳐진 장면은 또 다른 장면 전환을 계속해서 불러왔다. 그날 이후 학생들을 볼 때마다 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그려지던 그들의 유아기. 급식을 먹는 A를 보면 아기식탁의자에 앉아 오물오물 이유식을 먹었을 A의 유아기가 떠올랐고, 한글날 기념 백일장에서 원고지를 빼곡하게 채워가고 있는 B를 보면 곰인형처럼 앉아 한글 자모음 자석을 냉장고에 붙이고 있는 B의 유아기가 그려졌다. 180cm가 넘는 키에 거뭇거뭇한 인중을 가진 C도 앙증맞은 율동과 함께 '곰 세 마리'를 부르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거친 욕과 패드립을 일삼는 D도 한때는... 잠깐, 며칠 전 내 속을 뒤집어 놨던 D? 사물함에 숨겨놓은 담배를 들켰으나 절대 담배를 핀 적은 없다고 나를 한 대 치기라도 할 듯 큰소리를 내다가 소변검사 키트를 꺼내놓으니 그제야 꼬리를 내렸던 D의 유아기?


D에 이르러 잠깐 머뭇하긴 했지만, D라고 유아기 때부터 패드립을 하고 담배를 피웠을 리는 없다. D도 보드라운 입술을 움직여 이유식을 먹고, 뽀로로 매트 위에서 놀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기차놀이를 하며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칙칙폭폭'을 말하는 아이를 D의 부모님은 마냥 귀엽게 바라보셨겠지. 내가 유치원생 딸아이를 볼 때 느끼는 감정 그대로.


응? 내가 유치원생 딸아이를 볼 때 느끼는 감정 그대로? 이번에는 D의 부모님과 내가 겹쳐져버렸다. 며칠 전 교무실로 찾아온 D 어머니의 모습이 중학생이 된 딸아이의 담임선생님을 만나는 내 모습으로 스르륵.


너도 언젠가는 중학생이 된다고? 정말?



#3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나도 그쯤은 알고 있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내 아이도 언젠가는 중학생이 된다니. 출근하면 매일 만나게 되는 학생들과 외적, 내적으로 비슷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니.


내가 서른이 되던 해,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서른은 참아줄 수 있어. 그래도 마흔은 되지 마. 내 딸이 마흔이 된다면, 으... 생각만 해도..."

부모님 말씀을 어길 수는 없다. 이건 효도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한 나는 '올해의 진상 민원인'으로 꼽히는 기염을 토하며 마흔을 건너뛰고 마흔 하나가 되는 합법적 절차를 알려달라고 주민센터에 끈질기게 문의를 한 결과, 결국 서른아홉에서 곧바로 마흔 하나가 될… 리가 있나.


그래서 아이에게 절대 중학생 같은 건 되지 말라고 할 수가 없다. 13살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17살이 되는 방법을 찾으려면 천 년 묵은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할 때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이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아이가 천 년 묵은 이무기를 찾아보겠다고 나설 때 맛있는 간식을 싸주며 잘 다녀오라고 배웅할 자신이 없으니까.


나는 진상 민원인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아이는 이무기를 찾으러 떠나지 않은 덕분에 우리 둘은 착실하게 나이를 먹었다. 나는 마흔을 넘은 지 벌써 몇 년, 아이는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생이 된 지 벌써 몇 년이니 말이다. (마흔이 되었을 때 친정엄마 눈치를 살폈지만, 십 년 전에 했던 농담을 모조리 기억하는 분은 아니었다.)



#4

아이가 유치원생일 때부터 중학생이 된 아이의 모습을 열심히 그려봤다는 말은 학부모 상담주간에 듣게 되는 우리반 학부모님들의 모든 이야기에 아이와 나를 대입해봤다는 말로도 바꿀 수 있다. 아이에게 중학생이 되지 말라는 말은 할 수 없기에, 중학생 학부모가 될 마음의 준비만큼은 착실하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일요일 밤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나는 월요일 아침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단 말이야!'를 외치는 나에게 '마음의 준비'란 결코 완성 상태에 이를 수 없는 불가능의 영역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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