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지도, 답답하지도 않아요. 걱정하지 말아요."
연휴가 끝나고 상담실에 앉아 선생님을 어떤 얼굴로 마주 보아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질 않았다.
보름 만이었다. 이해받지 못한다는 절망감과 모두가 나를 싫어한다는 느낌을 떨치지 못한 채 시작했던 긴 연휴였다.
그 공백기간이 걱정했던 것보다는 괜찮았던 것 같기도 하고 , 반면에 상당히 힘들었던 것도 맞다.
무슨 말을 할지 머릿속으로 생각을 했으나 항상 앉으면 딴소리를 하기 십상이라
이번에도 그랬다
연휴를 어떻게 보냈는지를 잠깐 늘어놓다가 자연스레
가족에 대한 분노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실은 그것보다 여전히 이해받을 수 없다는 것에서 오는 절망, 선생님도 내가 싫을 거라는 감정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는 걸 토해내고 싶었는데.
선생님은 물어보셨다.
상담의 방향이 어떻게 되면 좋을지를
우리가 지금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나는 그저 선택하고 싶은 것뿐인데.
항상 두 손에 쥐고 있는 삶과 죽음 중 하나를 온전히 내려놓고 싶다고,
잘 모르겠다는 물음표 투성이 안에서 찾은 유일한 것.
예전과 지금, 여전히 같은 말을 하는 나를 본다.
이와 동시에 비교적 최근에야 직면하게 된 가족에 대한 분노는 일종의 처리해야 할 하나의 현실적인 문제라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선생님은 연휴 때 이 시간에 대해 고민이 많으셨다고 했는데 그 안에서 답을 찾지는 못하신 듯했다
나조차 내게 필요한 도움이 뭔지도 모르겠는걸
울음을 참느라 말을 하는 게 쉽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면서 말을 이어가기 위해 겨우겨우 눌러 담아 선생님도 내가 싫을 거 같다는 걸 꺼낼 수 있었다.
"제가 답답하고 지겨울 것 같아요."
"그냥, 짐짝처럼요."
선생님은 듣고 싶은 말이 있는 건지를 물어보셨고 그건 아니라고 대답했다
'어차피 선생님은 역할이 있으시니까 싫어도 싫다고 못하실 거니까'
대신 조금은 후련하다고 했다
잘했다고 하셨지만 이 또한 잘 모르겠다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싫을 것 같아서
생각하는 거보다 상대방은 말을 할 때 별로 그렇지 않다고 별 의미 없이 행동하고 말하는 게 대부분이라는 이야기를 하셨지만 솔직히 별로 와닿지 않았다
편향적으로 나를 싫어한다기보다, 내가 싫을 만해서 싫은 게 당연할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말하고 행동할 때 무의식적으로 감정이나 생각이 다 들어가게 되어있으니까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시간이 꽤 지났고 상담시간 내내 들리던 빗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너무 울어서 어떻게 집에 가냐고 하시며
선생님은 내게 지겹지도, 답답하지도 않으니 걱정 말라고 하셨다
"지겹지도, 답답하지도 않아요. 걱정하지 말아요."
그런데 왜 나는, 여전히 그게 아닐 것 같은 걸까
상담실에서 나와 걸어가는 길
눈물로 시야가 흐릿한 건지 비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쏟아지는 비에 발목까지 내려온 치마가 젖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