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지키는 디테일

나는 이 정도로 일관적일 수 있을까?

by 공명김

요즘 나는 어울리는 사람들이 많이 바뀌고 달라졌다. 어떤 친구들은 아예 연락을 안 하게 되고 또 새로운 사람들도 알게 되었다. 내 삶이 많이 정제되고 어떤 특정한 모양을 갖춰가는 듯하다. 이런 삶의 변화를 겪다 보니 나란 사람의 브랜딩이 바뀌고 있는 것 같아 예전 여행에서 느낀 점을 하나 꺼내보려고 한다.

2023년 샌프란시스코로 여행을 갔었다. 이때 디지털 노매드로 살기 시작하면서 첫 여행지로 샌프란시스코를 골랐다. 이유는 언젠가 실리콘벨리 회사에 취직하고 싶어 샌프란시스코는 어떤 느낌 일까 궁금해서 가보기로 했었다. 그리고 디자이너로써 너무 들어가고 싶은 애플 사옥으로 갔는데 정문은 굳게 잠겨있어 눈을 감고 출근하는 상상을 실컷 하고 바로 앞에 있는 애플스토어에 들어가 구경을 하였다.


우선 곧바로 문을 열고 애플스토어로 들어갔을 땐 여느 애플스토어랑 큰 차이가 있지는 않았으나 화장실에 가려고 계단을 마주친 순간 나는 계단이 너무 예뻐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나는 화장실 가는 것을 잊고 카메라를 꺼내 들고 계단만 30분 동안 찍고 있었다. 청소하시는 아줌마는 나를 이상하게 보셨지만 나는 그 계단의 단순한 모양과 거기에 비치는 빛에 매료되어서 계속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IMG_8866.JPG 이 코너를 꺾어 올라가면 청소하시는 아줌마가 나를 이상하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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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제품들은 데스크톱, 노트북, 핸드폰, 와치, 이어폰케이스 등등 모든 제품이 코너 부분에 다 같은 곡률을 가지고 있다. 그 곡률을 계단에도 적용시킨 것이다. 이런 디테일 때문에 디자이너들이 애플에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을 부분을 이렇게 잘 지켜내고 강력한 주관을 굽히지 않고 드러내고 있다. 이게 애플이 우리에게 말하는 약속 곧 브랜딩이다. 이 브랜딩에 취한 사람들이 골수팬이 되는 거고 이게 싫은 사람들은 안티팬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IMG_8902.JPG 계단뿐만이 아니라 유리와 지붕 그리고 곡률은 아니지만 정원에 심은 나무도 전부 흰색이다.


그럼 나로 다시 돌아와 보자. 나는 예전엔 굉장히 변화무쌍한 사람이었다. 이소룡의 주전자에 들어가면 주전자가 되고 찻잔에 들어가면 찻잔이 되는 물이 되라는 말에 이렇게 살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누구인지 몰라 심각한 정체성 혼란을 느낀 적이 있다. 물 같은 사람으로 살면서 사람들과 문제 없이 고루고루 다 친하게 지냈으나 결국 조금 굳어버린 나는 많은 사람들이 떠나게 되었다. 슬프기도 하지만 또 제 갈길 간다고 생각해서 괜찮고 요즘 진짜 나를 알아가는 것 같아서 기쁘다. 앞으로 나는 묘비에 어떤 문구를 세길지 계속 다듬어 가며 나를 브랜딩 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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