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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석변호사 May 17. 2021

사랑은 민물장어처럼

이혼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드리는 작은 조언

https://news.virginia.edu/content/qa-professor-sets-record-straight-2020-divorce-rate



내가 주로 취급하는 분야는 의료분야(의료분쟁, 의료법 자문 등)이지만 의료분야 업무를 처리하다보면 매년 2~3건의 이혼 사건 의뢰를 받게된다. 나의 변호사경력이 올해로 10년째이니 이혼 사건 처리경험도 적지 않은바, 이제는 이혼 사건에 대하여 몇 마디 말씀을 남길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고 생각하기에, 오늘은 이혼을 고민하고 있는 분들께 작은 조언을 드리고자 한다.


사실 나 역시 이혼 가정에서 성장했기에(부모님은 중학교 1학년이 되던 해 여름에 이혼하셨다) 이혼 사건에 대해서 남다른 애착이 있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로스쿨 재학시절에는 졸업 후 이혼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자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의료 분야가 더 재미있어서(라고 쓰고 '어쩌다보니'라고 읽는다) 현재는 이혼사건 업무를 '부전공' 정도로 수행하고 있다.



1. 이혼은 상대방에 대한 응징의 수단이 될 수 없다.


영화 '해바라기'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가 있다.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게 세상 이치래더라. 지금부터 내가 벌을 줄테니 달게 받아라


배우자의 부정행위가 드러날 경우 다른 배우자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배신감에 빠지게 된다. 저 놈을 죽도록 때려서 해결될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정행위가 있기 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을 뿐더러, 겉으로는 용서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라도 마음 속 깊이 자리잡은 배신감은 해소되지 않는다. 배우자는 상대방에게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주어 응징을 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지고, 결국 상대방에게 가장 치명적이라고 생각되는 '이혼'의 카드를 내밀어 상대방이 무릎 꿇고 사죄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 더러운 관계를 청산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는 적절하지 않다. 모름지기 상대방에 대한 응징이라 함은 상대방에게만 고통이 가해져야 한다 할 것인데, 이혼에 따른 파급효과는 상대방 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미칠 뿐 아니라 때로는 본인에게 더 큰 고통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모습은 경제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아내가 부정행위를 저지른 남편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를 할 때 도드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혼을 하면서 재산분할과 위자료를 지급받으면 경제적으로 유리한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겠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겠으나, 상대방의 귀책사유가 아무리 크더라도 재판실무상 위자료가 4000만원 이상 인정되는 경우는 흔치 않고, 비록 재산분할을 받는다 하더라도 독립적인 경제능력을 갖추고 이혼 후에도 계속적인 경제활동을 하지 않은 이상 고여 있는 돈을 소진하는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재산분할금액이 수십억원에 이르는 경우는 논외로 한다).


그러면 상대방을 응징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실 분이 있을 것이라 본다. 이에 대하여 답변하자면, 송구스럽지만 상대방을 응징할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본디 혼인의 본질은 가족관계를 구성하는 것으로서 가족 내에서 구성원을 응징할 수 있는 궁극의 비기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이란, 폐쇄된 인적관계를 유지하며 끊임 없이 나를 깎고 자르는 노력을 통해 균형을 유지해 나가야하는 특수한 관계로서, 상급자의 지시를 어긴다 하여 해고를 할 수 있는 근로관계도 아니고, 상호간에 약속한 것을 위반하였다 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계약관계도 아니다. 허구헌날 학교에서 말썽을 피우는 자녀라 하여 부모-자식관계를 청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한 번만 더 주식투자를 하면 아버지로 보지 않겠다는 말을 어기고 또 다시 주식투자를 했다가 노후자금을 날려버린 아버지라 하여 부모-자식 관계를 청산할 수 있는 것도 아닌바, 이러한 가족관계의 특수성은 배우자 간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배우자의 잘못을 궁극적으로 응징할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그 수단으로서 이혼을 떠올리는 것 역시 옳지 않다. 나아가 섣불리 이혼을 결정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다음과 같이 더 존재한다.



2. 이혼 후의 삶을 낙관해서는 안된다


연애시절 교제하던 상대방과 헤어질 경우 친구들이 주로 하는 위로의 대사가 있다.


똥차 가고 벤츠 온다더라.


연애관계라면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혼인관계 해소 이후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중년에 이혼을 한 뒤 주위를 둘러보면 이미 이혼을 했거나 혼인을 하지 못할 정도로 매력이 없는 사람 뿐이라는 가십거리 같은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혼 후에 벤츠같은 배우자가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애초에 벤츠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혼 후에 벤츠같은 사람을 찾을 수 없는 이유는 애초에 벤츠 같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품격 레스토랑에서 값비싼 음식을 먹은 사람의 똥냄새는 삼겹살에 소주를 들이킨 사람의 똥냄새와 별반 다르지 않다. 대중 앞에서 매너 있는 모습과 중후한 매력을 뽐내는 남성이 과연 가족들에게도 그러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를 장담하기는 어렵다(그렇다면 평생 점잖고 매력있는 모습으로만 지낸다는 것인데, 그 사람은 감정이 없는 인간이거나 AI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주말에 집 방안에서 게임이나 하고 자빠져 있는 남편이 주말마다 부지런하게 골프를 치러 돌아다니며 뭇 여성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남편보다 못난 사람이라 단정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가치평가의 기준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바, 사람의 품성과 배우자로서의 적격성에 대한 평가기준은 더 모호한 것으로서 무엇이 똥차이고 무엇이 벤츠인지 구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이혼 후에 아무리 못난 사람을 만나더라도 현재 배우자 보다는 나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은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할 것이다.


정리하면, 이혼은 배우자에 대한 응징의 수단이 될 수 없으며 이혼 후의 삶을 막연히 낙관해서도 안된다 할 것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이혼하고자 하는 의뢰인을 막지 않는 편이다.



3. 자의식을 파멸시키는 관계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가족이란 고정된 인적관계를 유지하며 끊임 없이 나를 깎고 자르는 노력을 통해 균형을 유지해 나가는 특수한 관계라 할 것인바, 내가 처절하게 스스로를 깎고 자르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음에도 상대방은 이에 상응하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다면 그 관계는 시간이 갈 수록 어느 한 쪽을 파멸시킬 수밖에 없다. 어떠한 관계에서든지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각자의 '자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가족으로 얽혀 있는 관계라 하더라도, 상대방의 처우가 나 자신을 파멸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가혹한 것이라면 그 가족관계는 청산하는 것이 적절하. 무엇도 나 자신을 대체할 수 없으며 본인의 자의식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것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비록 형식적으로는 타인의 존재가 군림할 수는 있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도 자의식이 파괴될 수준이 되어서는 안된다).


오랜 시간 가정 내에서 신체적, 정신적 폭력에 시달리거나, 다양한 유형의 정신적 강박에 시달려온 부부 일방의 말을 들어보면 이미 정서적 그로기 상태에 빠져 어떻게 대응을 해야하는지 조차 자주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 모습이 관찰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사례는 이혼의 타이밍이 지연된 경우로서 가능한 신속하게 혼인관계를 청산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이혼 후의 경제적 곤란? 이혼 후의 정서적 공허감? 그런 것은 자의식을 보호해야 한다는 근원적 요소에 비하여 미약한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발견하였다면 제일 먼저 시행해야 할 것 심폐소생술인 것처럼, 자의식이 파멸되어 가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취해야 할 조치는 자의식을 갉아먹는 원인을 제거하는 것인바, 만일 그 원인이 배우자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이혼이 최선의 조치라는 것이다.



4. 생명과 신체를 위협하는 관계


학교폭력을 예로 들어본다. 허구헌날 빵셔틀을 시키며 자신의 말에 복종하지 않는 동급생을 폭행하거나 갖은 폭언으로 인격을 짖밟는 이른바 '일진'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담임선생님이 앞으로 남은 학기동안, 아니 남은 평생동안 그 일진과 같은 공간에서 밥을 먹고 평생의 짝으로 지낼 것을 지시한다면 어떨까? 당연히 지옥같은 미래를 걱정하며 정신적 고통을 호소할 것에 나아가 동거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를테면, 전학 등)을 찾을 것이 당연하다.


배우자에게 신체적 폭력을 가하거나 정신적 가혹행위를 자행하는 부부관계가 적지 않다. 과거에 비하여 신체적 폭력을 가하는 남편이 줄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존재하며, 나아가 정서적 가혹행위를 가하는 사례는 과거에 비하여 더 많아졌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가해자는 남녀 모두 포함된다). 이러한 혼인관계는 평생 일진과 함께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서적 가혹행위를 일컬어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수준은 아니니 심각하게 볼 것은 아니라고 평가절하하는 시각도 있겠으나, 정서적 가혹행위로 인하여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이 발생함에 따라 생명을 잃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의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와 같이 신체적, 정신적 가해를 통하여 배우자 일방의 생명과 신체가 위협받고 있다면, 신속하게 이혼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세상에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위협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할 것이며, 어떠한 방법을 사용해서든 스스로를 지켜내야 하기 때문이다.



5. 자녀의 성장을 위해서 이혼하기 어렵다면

 

이상과 같이 이혼해야 할 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 미성년 자녀가 있기 때문이다. 배우자로부터 신체와 생명에 위협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넣어도 안아플 내 자녀들이 이혼 후에 받게될 상처 또는 세간의 불편한 시각으로 인하여 비뚤어지거나 올바르게 성장하지 못할 것이 걱정되어, 내가 조금 더 버티면 되지 않겠냐는 부모로서의 희생정신으로 꾸역꾸역 살아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혼하더라도 자녀는 잘 성장할 것이며 더 이상 이혼이 특별한 이슈도 아니므로 자녀 성장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섞인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실제로 이혼을 할 경우 많은 자녀들이 혼란에 빠지고 비뚤어지는 등 정서적 성장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내가 현재까지 변호사로서 진행했던 소년보호사건의 90% 이상은 부모가 이혼한 상태였다).


그러나 위와 같이 반드시 이혼을 해야 할 사정(자의식 파멸, 생명 또는 신체의 위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하지 않은 결과 당신이 자의식을 상실하거나 생명 또는 건강을 잃게 되어 발생할 수 있는 파급효과를 생각해보면, 이혼한 뒤에 자녀에게 발생할 수 있는 파급효과에 비하여 훨씬 심각하고 치명적일 것이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개인적인 경험을 언급하자면, 내 인생 중 가장 중요한 분기점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 부모님의 이혼을 말하는 편이다. 이혼은 이혼결정일 단 하루에만 벌어지는 일시적 이벤트가 아니다. 이혼에 이르기까지 가족 내에는 수 많은 갈등이 지속되는바, 그 과정 속에서 자녀들은 많은 정서적 혼란과 고통을 겪게되며 이는 자녀의 성장과정에 부정적 효과를 유발한다. 나도 이러한 정서적 혼란 속에 성장하였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불안감이 해소되었던 것은 부모님의 이혼시점부터였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살게된 부모님은 더 이상 서로 눈앞에서 혐오감을 표출하거나 물리적 다툼을 하지 않게 되었는바, 비록 반쪽짜리 안정이기는 하지만 더 이상 불안감이 커지는 결과는 막을 수 있었고, 그 결과 나는 지금 미력이나마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변호사로 성장하여 이 글을 쓰고 있다. 만일 부모님이 이혼하지 않고 계속 그 상태로 혼인관계를 유지하셨다면 단언컨대 나는 결코 변호사로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6. 정리


글이 길어 정리해드리고자 한다(이혼에 관하여는 이보다 몇 배의 분량으로 일필휘지 할 자신이 있지만 너무 긴 글은 외면받을테니 여기까지만 각설한다).


1) 배우자에 대한 응징의 수단으로 이혼을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결론이다.


2) 이혼 후의 삶을 낙관해서는 안된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혼인관계가 자의식을 파멸시키거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면 가능한 신속하게 혼인관계를 해소할 것을 권한다.


4) 위 3)과 같은 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성년 자녀의 성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이혼을 하지 않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관련 문의 : 정현석 변호사 (법무법인 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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