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 수익성 저하가 낳은 또 하나의 역설
의료서비스업이 과연 ‘산업’인 지 여부에 관하여는 끊임없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의료서비스업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에 따른 금전을 수령한다는 측면을 놓고 보면 누가 보더라도 산업성을 보유한다 할 것이지만, 의료서비스업 본연의 윤리성과 생명관련성을 고려하면 단순히 수많은 산업 중 하나의 유형으로 치부해버리기는 어려운 사정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의 정책 역시 역설적인 방향으로 제시되는 경우가 있는데, 특히 정부의 2014년 투자활성화대책이 발표된 후 그 후속 조치로 공개된 보건의료산업 정책에는 그러한 역설이 도드라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역설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이며,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을 해소하는 방법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 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만하다. 따라서 이하로는 우리 의료서비스업을 둘러싼 역설적인 상황을 살펴보고 그 해결책을 고민해보기로 한다.
의료서비스업의 공공성을 강조하고 산업적 발전을 통제하는 정책이 있는 반면, 때로는 국민의 귀를 의심할 정도로 의료서비스업의 산업화(또는 영리화)를 자극하는 정책들이 공개되곤 하는데, 국민들로서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하는 지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특히 보건복지부가 2014년부터 발표한 정책 중 “의료법인의 영리자법인 설립허용 정책”, “의료법인의 호텔사업허용 정책(이른바 ‘메디텔’)”,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범위확대 정책”,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허용 정책” 등은 의료서비스업의 수익성 강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들로서, 그 동안 의료서비스업의 공공성을 강조함에 따라 산업적 발전을 통제해오던 정부의 태도와는 매우 상반된 것들이라는 점에서 첫 번째 역설이 발생한다.
이와 같이 정부의 정책이 역설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이유는 의료기관의 수익성 저하와 직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민간의 수요를 발굴하고 이를 충족시킨 뒤 업무성과를 홍보함으로써 정부조직의 정당성을 인정받는 구조적 본능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의료서비스업의 산업성 강화정책이 입안된 것은 그 정책에 대한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라 할 것인데, 이러한 정책적 수요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는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된 의료기관 수익성 저하에 대한 불만과 이를 해결하라는 의료인들의 요구에서 비롯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정부가 제시한 해결방안에 따르면, 의료법인은 영리자법인을 설립하여 수익사업을 실시하고, 개원의는 의사-환자간 원격의료를 실시하여 원격지의 환자로부터 수익을 취득하며, 한의사는 의료기기를 이용하여 더 많은 질병의 영역에서 수익을 취득하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와 같은 정책은 상당수의 의료인들이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각 정책 발표 당시의 의료인단체를 통하여 드러난 바 있다. 결국 정부는 의료인의 정책수요를 달성시키기 위하여 의료인들이 반대하는 정책을 입안하였다는 점에서 두 번째 역설이 발생한다.
현재 국내 의료서비스업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의료기관의 수익성 저하의 원인은 소비자(환자)의 수요가 급격하게 줄었기 때문도 아니며, 의료서비스의 공급이 급격하게 늘었기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저출산 고령화 현상 및 국민의 건강에 대한 관심확대에 따라 국민들의 의료서비스 수요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뿐 아니라, 국내 의과대학의 정원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도 아닌 이상 의료서비스가 과잉공급 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결국 의료기관의 수익성 저하의 근본적 원인은 물가상승을 고려하지 않은 서비스대가(행위수가)의 가치하락에 있다고 봄이 타당하며, 이는 대부분의 의료인이 공감하고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행위수가의 가치가 하락하는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 중 구조적인 문제를 몇 가지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의약품 또는 의료기기는 시간이 경과됨에 따라 일정한 기준에 의하여 보험수가가 하락하지만, 이는 기술개발 및 신제품 출시에 따라 다시 수가를 상향시키고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고, 실제로 각 기업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수익성을 제고하고 있다. 그에 비하여 의료행위는 그 본질적 특성상 획기적인 의료기술(수술방법, 치료방법, 진단방법)이 개발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비록 획기적인 의료기술이 개발된다 하더라도 이는 대부분 새로운 의약품 또는 의료기기와 연관되어 있는 관계로, 이러한 의료기술개발에 따른 재산적 가치는 약제비수가 또는 치료재료수가에만 반영될 뿐 행위수가에는 반영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국 헬스케어산업의 성장에 따라 보건의료산업 전체의 재산적 가치가 상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재산적 가치가 행위수가가 아닌 치료재료 및 약제비수가에만 반영됨으로써 행위수가를 통해 수익을 취득하는 의료서비스공급자(의료기관)들은 이러한 재산적 가치의 분배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점에서 세 번째 역설이 발생한다.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물가상승 등을 고려하여 행위수가를 상향조정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가장 자연스럽다 하겠으나, 구조적 특성상 이러한 조치가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데 가장 큰 문제가 있다. 대통령선거가 이루어질 때마다 대부분의 대통령 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우는 것 중 하나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라 할 것인데(건강보험 보장성 축소를 주장하는 대통령 후보는 아무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함께 건강보험료 상향조정을 주장하는 대통령 후보는 없었다. 특히 국민건강보험재정은 국민들의 보험료와 국가보조금으로 구성된다 할 것인데, 이미 대한민국 정부는 이른바 큰 정부를 지향하고 있는 관계로 국가기반산업에 사용할 재정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건강보험료 상향 없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추진하고자 하는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나아가 건강보험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는 방법에는 1) 건강보험재정을 추가로 확보하는 방법, 2) 건강보험지출을 억제하는 방법이 있고, 이 중 건강보험재정을 추가로 확보하는 방법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국민들로부터 징수하는 건강보험료를 상향조정하거나 조세징수를 늘려 국가보조금을 상향해야 하는데, 국민들의 지지를 통해 정치적 기반을 쌓는 의회와 그의 견제를 받는 행정기관으로서는 그 누구도 이와 같이 국민들의 공분을 사게 될 방법을 이용할 수 없다. 결국 정부는 건강보험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건강보험지출을 억제하는 방법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건강보험지출항목은 크게 행위수가, 약제비수가, 치료재료수가로 나뉘므로 건강보험지출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 항목에 대한 지출을 억제해야한다 할 것인데, 이 중 약제 및 치료재료는 유형의 상품으로서 생산원가와 제품개발비용 등에 관한 정보가 구체적인 수치로서 나타나 있으므로 이에 대한 가치를 산정하는 과정이 비교적 명확한데 비하여, 행위수가는 상품이 아닌 서비스(용역)인 관계로 각 행위의 가치를 얼마로 산정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 지에 대한 근거가 불명확하다. 따라서 정부는 약제비수가 또는 치료재료수가를 억제하는 것보다 행위수가를 억제하는 것이 비난의 여지가 적다할 것이며, 이러한 구조적 특성이 반영되어 향후에도 건강보험재정 건전성에 대한 위험론이 등장할 때마다 행위수가의 실질적 가치는 점점 하락할 것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네 번째 역설이 발생한다.
다만 이와 같이 행위수가의 가치하락에 따라 의료기관의 수익성이 저하되는 것이 단지 의료서비스업의 불황이라는 특정 산업군의 재무적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의료서비스업은 그간 정부와 시민단체가 강조해왔던 것처럼 대한민국 국민의 보건위생과 직결되는 산업으로서 의료서비스업의 건전성이 저해될 경우 대한민국 국민의 보건위생의 건전성도 함께 저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급여대상 진료만으로는 의료기관 운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신의료기술을 제공하고 고가의 치료비를 지급받았다는 이유로 보건당국에 적발되어 요양급여비용환수처분을 받거나, 의료기관 간 과도한 경쟁으로 말미암아 각종 조악한 블로그에 의료법상 금지된 치료후기들을 게재한 것이 적발되어 형사처벌을 받거나, 비의료인과 결탁하여 환자들을 알선 받은 후 이에 따른 수익을 배분하다가 사무장병원으로 적발되어 거액의 요양급여비용환수처분을 받거나, 환자들의 보험사기행위를 원조하고 요양급여비용을 취득하기 위하여 허위의 입원환자를 등록한 것이 적발되어 사기죄로 기소되는 등의 사례들이 증가하고 있는 바, 이러한 적발사례가 증가 할수록 국민과 의료인 사이의 신뢰관계는 깨어지고 이로서 국민의 보건위생 역시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최근의 정부정책은 의료인의 수익성 강화에 관한 정책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국민의 보건위생 확보라는 의료법의 근본적인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할 위험성이 있다는 점에서 다섯 번째 역설이 발생한다.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를 해결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그 중 최고의 방법은 해당 문제를 발생시킨 근원을 제거하는 것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만일 정부가 발표한 산업성강화 정책의 목적이 의료기관의 수익성 저하를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수익성 악화의 원인을 발본색원하는 것이 적절하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의료기관 수익성 악화의 근본적인 원인은 행위수가 가치의 실질적 하락에 있으며, 행위수가의 가치는 정부가 이를 인위적으로 상향조정하지 않는 한 자연적으로 상향될 수 없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의료서비스업의 총체적 문제를 해결하는 근원적인 해결책은 행위수가 상향조정이라는 점에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만일 이를 위해서 건강보험료를 상향해야한다면 이를 감수해야할 것이며, 급여항목을 축소해야한다면 급여타당성이 낮은 항목 선별하여 보장성범위축소를 고려하는 것이 타당하다. 부디 장기적으로 의료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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