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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석변호사 Oct 18. 2018

어느 우범소년 이야기

모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1.

작년부터 서울가정법원의 국선보조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선보조인이란, 가정법원에 송치된 소년보호사건(주로 보호소년이 소년분류심사원에 위탁된 경우)에 관하여 보호소년을 접견하고 가정환경을 조사해 법적 조언을 제공하는 인력을 말한다. 최근 수행했던 소년보호사건에 관하여 느낀바가 있어 잊기 전에 이를 남겨둔다.  




2.
한 소년에 관한 우범사건이 가정법원에 송치되었다. 보호처분을 신청한 사람은 다름 아닌 소년의 어머니. 소년의 어머니는 해당 소년이 학교를 자퇴한 후 집에서 가족들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부수고 있으며, 부모님 몰래 휴대폰 소액결제를 하는 등 비행을 저지르고 있어서 더 이상 함께 지낼 수 없으니, 자신의 아들을 소년원에 송치해달라는 취지로 신청서를 제출했다.




3.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조금 의아했던 것이, 소년이 부쉈다는 물건은 전기모기채와 방문짝(발로 걷어찼다고 함)이었고, 휴대폰 소액결제는 한달에 4~50만원 수준이었기에 누군가의 인신을 구속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성인의 경우에도 이 정도의 비행으로 실형을 선고받을리 만무한데, 다름아닌 부모가 아이를 소년원에 가두어달라고 신청하는 것이 어디를 보아도 이치에 맞지 않았다.




4.
해당 소년을 접견하기 위해 소년분류심사원을 방문했다. 학교를 자퇴한 경위를 물으니, 늦잠을 자다가 지각을 많이 해서 학년승급을 위한 수업시수가 부족했는데, 담임교사가 "퇴학할래? 자퇴할래?"라 묻기에 자퇴를 선택했다고 한다. 부모님이 깨워주시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니, 부모님은 본인이 어떻게 지내든 별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왜 가정 내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부수는 행동을 했냐고 물으니, 부모님은 어릴적부터 여동생에 대한 편애가 심했고 부모님의 관심을 받지 못한 것에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가끔씩 감정이 폭발할 때가 있다고 답했다.


왜 휴대폰 소액결제를 했냐고 물으니, 학교를 자퇴한 후로는 부모님이 용돈을 주시지 않는데 휴대폰 소액결제를 통해 문화상품권을 구입하고 그 문화상품권으로 교통카드를 충전해두면, 편의점에서 교통카드 잔액 중 일부를 환불하는 방법으로 현금을 마련할 수 있어서 그렇게 했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해서 어머니와 통화를 해보고 싶어 수차례 전화를 시도했지만 전화연결이 되지 않았고, 드디어 심문기일에 소년의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5.
판사님이 심문 중에 국선보조인의 의견을 묻기에, 소년에 대해 느꼈던 솔직한 심정을 진술했다.


"소년이 살아온 과정을 보면, 끊임없이 구석에 몰리는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학교는 소년에게 자퇴를 권했고, 가정은 소년을 외면했다. 개인적인 성장과정에서 느꼈던 고통을 돌이켜보면, 가장 아팠던 고통은 가족과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소년의 성장과정과 비행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되므로, 따끔한 처벌보다는 따뜻한 사랑을 주어 갱생의 기회를 주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판사님께서도 이미 심문기일 전에 처우를 결정하고 오셨는지, 해당 소년에게 보호위탁(가정)처분, 교육이수 등의 보호처분을 내리셨고, 소년은 소년분류심사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6.
그러나 그 어머니는 한동안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동안 소년이 저질렀던 다른 비행까지 진술한 뒤, 소년과 함께 살지 않는 것이 자신을 비롯한 딸(소년의 여동생)의 입장이라며, 왜 소년을 소년원에 보내지 않는지 따져물었다. 판사님께서는 소년을 소년원에 보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마음의 상처를 고려하고, 소년에게도 잘못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줌이 타당함을 간략하게 설명한 뒤, 심문을 마치고 소년을 가정으로 돌려보냈다. 소년이 법정을 퇴정한 뒤 나도 어딘지 모를 착잡한 마음으로 법정을 나섰다.




7.
아직 많은 경험은 아니지만 몇 건의 소년보호사건을 처리하며 느낀 점은, 모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요, 모든 부모가 부모로서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만일 가정 내에서 적절히 교육받거나 보호받지 못하는 소년이 있다면 사회가 그들을 교육하고 보호함이 바람직하겠으나, 이미 학교는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물들어 있고, 교육문화의 변화에 따라 교사의 학생에 대한 훈육권이 상당부분 제한되었기에,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소년들은 어디서도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실정이다.




8.
심문을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하는 차안에서 문득 생각했다. 과연 그 어머니는 소년에게 따뜻한 밥 한그릇을 내어주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심사원에 위탁되어 있는동안 고생했다며 흰 두부라도 한 모 내어주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갱생의 의지를 보이는 소년의 모습을 따뜻하게라도 바라봐 주었을까.


이 사건의 국선보조인으로서 솔직히 바랬던 것은, 소년이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가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었던 것 같다. 부디 더 상처받지 않고 건강하게 성장해서 너를 미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너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너의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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